“국내에선 날 인정했지만, 자신이 없었다”…촉망받던 피아니스트가 지휘자가 된 까닭 [인터뷰]

조누리 독일 마이닝겐 주립극장 상임지휘자
23년 만에 스승 유미정 KNSO 대표와 재회
피아니스트에서 오페라 코치, 지휘자로 변신


조누리 지휘자 [조누리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조누리는 꽤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다. 단국대 피아노과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썩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스승인 유미정 교수를 만나고 나선 그의 ‘피아노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눈에 띄지 않던 평범한 학생은 학년 수석, 전체 수석을 거머쥐더니 졸업 수석까지 했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보증수표’인 금호 영아티스트 타이틀도 얻었다.

“잘해 나가고 있었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피아니스트로 ‘전성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시기에 그는 돌연 다른 길을 택했다. 독일에서의 유학 생활이 결정적 이유였다. 세계 각국에서 ‘유망주’들이 모두 몰린 그곳에서 자신의 ‘피아니스트로서 경쟁력’을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성취는 있었지만, 그는 냉정하게 다음 스텝을 생각했다. 조누리는 “‘이대로 계속하는 것보다 조금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걸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반짝이는 재능을 캐낸 스승의 기억은 다르다. 유미정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KNSO) 대표이사는 지난 2003년 제자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오전 6시 30분이면 무조건 학교에 도착해 연습했던 성실한 학생”이라고 했다.

사실 조누리는 어릴 적부터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학생은 아니었다. 유 대표는 “나와의 수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한 과제를 주면 거절하지 않고 완성해 왔다”고 떠올렸다. 국내 주요 대학 출신과 유학파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금호 영아티스트 오디션에서 “엄청난 경쟁을 뚫고 단독으로 리사이틀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조누리 뿐 아니라 스승의 기쁨이기도 했다.

유학 기간 스승과 연락이 뜸해진 사이 조누리는 돌연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자기만의 또 다른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우회로를 택했다. 결실은 있었다. 그토록 깐깐한 독일 오페라 극장에서 단원들의 투표로 오페라 코치에서 수석급 상임지휘자로 승진한 것이다. 음악감독을 보조하며 오페라 코치를 겸하는 자리다.

최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아카데미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조누리 독일 마이닝겐 주립극장 상임지휘자는 “한국에서 지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방법을 몰랐다”며 “고대하며 기다렸던, 처음으로 서게 된 고국 무대”라고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조누리 지휘자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새벽 6시 30분의 연습생…‘전성기’ 문턱서 과감한 우회로


“독일에서 많은 단체를 지휘해 봤지만 아카데미 단원들의 반응 속도가 그 어느 곳보다 빠르던데요. (웃음)”

포디움에 선 조누리의 손끝이 허공을 가르자, 베토벤 교향곡 7번의 리듬이 힘차게 터져 나왔다. 청년 교육 단원들은 눈을 빛내며 지휘자의 손끝을 좇았고, 지휘자는 단원들의 반응을 세심히 살피며 명쾌한 손짓으로 템포와 호흡을 조율해 나갔다.

유학 이후 독일에서 터전을 잡은 지 10여년. 그의 첫 공식 무대는 KNSO아카데미의 연습실이었다. 올해 국립심포니 대표이사로 취임한 대학 시절 은사의 러브콜로 성사된 기회였다.

유 대표는 “국립심포니 아카데미는 연주 단체가 아닌 청년 연주자를 길러내는 교육 단체”라며 “여러 지휘자가 3시간씩 3회에 걸쳐 리딩 수업을 진행하는데, 단원들이 오페라를 전문적으로 훈련받을 기회는 드물어 학생들에게 폭넓은 교육의 장을 열어주고자 수업을 맡기게 됐다”고 했다.

벅찬 마음으로 진행한 첫 수업은 베토벤으로 포문을 열었다. 조누리는 “기쁨과 환희가 끝 간 데까지 치닫는 7번 교향곡을 통해 단원들을 독려하고 싶었다”고 한다.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도 아카데미를 통해 함께 만든 음악이다.

세 번의 수업이 조누리에게 값진 것은 진로에 대한 치열한 선택의 결과로 얻은 자리였기 때문이다.

사실 지휘자로 전향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유학 시절 피아니스트로 걷는 길에 찾아온 큰 벽을 더 크게 느낀 것은 ‘경제적 자립’이 그에겐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빨리 자기 길을 개척하고 홀로서야 한다는 생각이 조누리의 시야를 확장했다.

그 무렵 독일에서 ‘오페라 코치’ 전문 양성 과정을 듣게 됐다. 성악가의 노래와 음악적 해석을 돕고, 피아노로 오페라 전체를 이해해야 하는 직업이다. 피아니스트인 자신에게 완전히 낯선 길은 아닐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조누리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보다는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한 번’ 해보고, 맞지 않으면 다시 피아노로 돌아가자는 생각이었다. 오페라 코치 과정에서 지휘 수업을 받으며 그의 음악 인생에 결정적 전환점이 찾아왔다.

“피아노를 칠 땐 건반으로 음악을 표현했지만, 지휘를 하니 제 손짓과 표정, 몸의 제스처를 통해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빚어져 나왔어요. 생소하면서도 너무나 매력적이었어요.”

혼자 음악을 만들어내는 피아노 연주자로 있을 때는 몰랐던 자신의 성향도 알게 됐다. 그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더라”며 “성악가, 합창단, 오케스트라, 연출자와 함께 부딪히며 소통하는 협업이 잘 맞고, 더 열심히 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유 대표는 제자의 선택에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다가 보컬 코치 공부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놀라웠지만 정말 기뻤다”며 “본인이 혹독하게 연마했던 피아노가 새로운 음악적 도약의 탄탄한 발판이 돼줬다”고 격려를 보냈다.

국림심포니오케스트라 아카데미와 만난 조누리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브람스의 극장까지 ‘계단식 성장’…자부심 높은 단원들 마음 얻어


드레스덴 젬퍼 오퍼에서 오페라 코치를 시작한 것이 2016년. 조누리는 독일 오페라 하우스의 현장에서 한 계단씩 차근차근 밟아 올라갔다. 브레멘 극장에서 6년간 몸담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프로 지휘 무대에 데뷔했다. 그가 안착한 곳은 유서 깊은 마이닝겐 주립극장이다.

마이닝겐은 한스 폰 뷜로가 상임지휘자로 재직했고, 1885년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가 자신의 교향곡 4번 마단조를 직접 지휘해 세계 초연한 역사적인 극장이다. 이곳의 단원들 역시 까다롭고 악단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높기로 유명하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키릴 페트렌코의 전 직장이기도 하다.

조누리는 마이닝겐에서 2년간 오페라 코치를 해오다 이달 승진했다. 승격 과정도 이례적이었다. “보통은 상주지휘자(카펠마이스터) 오디션을 따로 여는데, 저희는 거의 1년 가까이 오디션을 했는데도 적임자를 못 찾았어요. 그러다 단원들이 투표를 해서 저를 승격시키자고 한 거예요.”

조누리가 보는 마이닝겐은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성 안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극장이다. 특히 브람스와의 관계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는 마이닝겐과 브람스의 관계를 ‘상생’으로 요약한다.

”따뜻하고 묵직한 질감을 지닌 브람스 사운드의 전통을 고유의 음색으로 계승하는 악단이라고 생각해요. 위대한 작곡가가 자기 작품을 기꺼이 초연하게 할 만큼 극장의 수준과 전통이 검증된 곳이죠. 그러면서도 동시에 새로움을 요구해요.”

‘전통과 혁신’의 공존을 요구하기에 원래 하던 음악대로 하면 ‘새로울 게 없다’고, 새로운 것은 너무 허무맹랑하면 안 된다. 깐깐한 단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지휘자라야 이들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조누리의 이번 승격은 까다로운 마이닝겐 단원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그는 “2년 동안 나를 지켜본 사람들이 내린 판단이라 더 감사했다”고 돌아봤다.

그가 지휘자로서 자기 길을 닦아갈 수 있었던 것은 피아노 전공 시절 배운 탄탄한 기본기 덕분에 가능했다. 조누리는 “지휘자는 구조적으로 볼 수 있는 눈과 상상력이 중요하다”며 “대학 시절 스승에게 배운 유산이 지휘를 통해 확장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유미정) 교수님께선 악보에 드러나지 않은 선율과 화성의 결, 음악의 구조와 세부를 깊이 듣는 법을 강조했다”며 “이러한 배움이 오케스트라 총보를 분석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 완벽하게 분석한 뒤에도 ‘작곡가가 왜 이 음을 썼을까’를 상상한다”고 했다.

조누리의 음악 인생은 한 번도 직선으로 가지 않았다. 피아노에서 오페라 코치로, 오페라 코치에서 지휘자로. 한때 자신이 선택한 우회로가 결국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이 됐다. 이제 조누리는 마이닝겐의 상주지휘자로 첫 시즌을 맞는다. 예정된 공연만 32회. 오페라 코치로 시작해 부지휘자를 거쳐 2년 만에 포디움의 중심에 선 그에게 이번 시즌은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또 다른 출발점이다.

”베토벤을 공부할 때면 독일의 흐린 날씨 사이로 갑자기 햇살이 비치는 장면을 떠올리곤 해요. 단원들에겐 ‘예상치 못하게 끼어드는 느낌’이라는 음악의 언어로 전달하죠. 구조적으로 악보를 읽되, 구조적인 것에만 매달리면 학문에 지나지 않으니 예술적인 것도 있어야 하죠. 그 두 가지를 항상 함께 가져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공부할 때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