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속에서 태어난 천사…故 공도연 할머니, 시신 기증으로 마지막 봉사

공도연 할머니의 생전 모습. [의령군 제공]


“가난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의 아픔과 시련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없는 자의 비애감을 내 이웃들은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한평생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온 故 공도연 할머니가 시신 기증으로, 마지막 봉사를 마쳤다.

17일 의령군에 따르면, 공 할머니와 남편 고(故) 박효진씨는 지난 14일 진주시 안락공원에서 나란히 화장됐다.

공 할머니는 2023년 9월 8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시신을 경상국립대 의대에 기증했다. 이후 의학교육과 연구에 활용된 뒤 화장에 이르기까지 약 3년의 시간이 흘렀다. 1년 전 먼저 하늘로 간 남편 박효진 씨도 시신을 기증했다.

할머니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았다. 17살 천막집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해 밥동냥을 해야 할 만큼 궁핍했다. 남의 밭에서 품앗이를 하고 봇집 장수에 밤에는 뜨개질까지 하며 몸부림치며 살았다.

살림이 좀 나아진 30대부터 공 할머니는 봉사에 나섰다.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새마을부녀회장을 맡아 마을 내 30가구를 이끌고 농한기 소득 증대를 위한 사업에 뛰어들었다. ‘쌀을 절약하자’는 절미(節米) 운동을 이끌며 마을 수입을 늘렸다. 사비를 털어 마을 간이 상수도 설치와 지붕 개량 사업을 도왔다. 마을 주민들은 공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1976년 송산국민학교에 ‘사랑의 어머니’ 동상을 세워 화답했다.

1985년에는 의료 시설이 없어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해 대지 225㎡를 직접 사들여 군에 기탁해 송산보건진료소를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공 할머니는 50년 세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불우이웃 돕기 성금 기부, 쌀 지원 등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모두 자비로 했다고 한다. 긴 세월 누적돼 금액으로는 환산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예순을 넘어서는 경로 봉사에 주력했다. 노인 복지 시설을 찾아 매년 직접 농사지은 쌀로 떡국을 끓여 대접했다. 폐지와 공병을 판 돈으로 노인회에 전달했다. 여든이 넘어서는 35㎏에 불과한 노쇠한 몸으로 리어카를 끌며 나물과 고물을 내다 판 돈을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모든 정부에서 60여 차례 표창을 받았다. 지난 2020년에는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훈했다. 국민훈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적을 세워 국민의 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되는 포상이다.

공 할머니는 일찌감치 사후 장기기증을 결정했다고 한다. 고인이 남긴 낡은 봉사 일기장에는 평생을 지탱해 온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기장엔 “가난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의 아픔과 시련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중략) 없는 자의 비애감을 내 이웃들은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고 써 있다.

3년 전 공 할머니의 별세 소식은 뒤늦게 주민들에게 알려졌다. 주민들은 “진정 천사가 하늘나라로 갔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오태완 의령군수는 “공 할머니는 평생 이웃을 위한 나눔을 삶으로 보여주시고 마지막까지 봉사로 삶을 완성하신 분”이라며 “고인이 보여준 한결같은 이웃 사랑은 우리 사회가 오래 기억해야 할 참된 봉사의 모습이다. 의령군민과 함께 그 뜻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