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투자이행 속도에 불만”…트럼프, 경제·안보 현안 연계 [한미훈련 축소 지시 파장]

북에 대화 손짓, 한국엔 ‘안보 청구서’
UFS 대폭 축소, 김정은 협상 테이블 유인용
한국정부 이란전 지원 거절 노골적 불만 제기

안보 거래대상으로 활용…트럼프식 동맹관
한미동맹·억지력 훼손우려…미 정치권도 비판

한·미 정례 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 훈련이 진행중인 가운데 18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부대가 적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연습은 유사시 한반도 방어를 위한 연합 군사훈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시간) 한미연합훈련 대폭 축소를 지시했다고 밝혔으며, 미국 국방부는 지시 이행을 위해 노력 중이라는 성명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훈련 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평택=임세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는 대화의 손을 내밀면서 동맹국인 한국에는 안보 ‘청구서’를 꺼내 들었다. 김 위원장과의 관계가 “매우 좋다”며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지시한 반면, 한국의 이란전 지원 거절에는 “그렇다면 우리는 왜 당신들을 돕느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러시아 파병으로 현대전 경험까지 쌓은 상황에서 나온 조치여서 한미동맹의 억지력과 신뢰성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미 통상 협상과 투자 부담 등 경제 현안이 산적한 한국으로서는 트럼프발(發) 불확실성이 안보 영역까지 전방위로 번지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연합 군사훈련 축소 지시에는 한국과의 경제 현안에 대한 불만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7일(현지시간) 한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지렛대를 활용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경제와 안보 현안을 연계하는 그의 협상 방식을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이 관세 협상에서 약속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이행이 예상보다 더디고, 쿠팡에 62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 대해서도 불만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대폭 축소(substantially reduce)”하라고 지시했다. 올해 하반기 한미 연합연습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Ulchi Freedom Shield)’ 시작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나온 지시였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8년 만에 또 한미훈련 축소 카드를 꺼내 들었다”며 “70년 한미동맹에 또 다른 타격”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핵무기고를 확대하고 러시아와 상호방위조약까지 체결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북한을 “위협적이지 않고 존중한다”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미 간 접촉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17일 백악관에서 ‘김 위원장이 대화 제안에 응답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그가 응답했다(Yeah, he has)”고 답했다. 북미 대화가 현재 어느 단계에 있느냐는 질문에는 “매우 긍정적(very positive)”이라고 말했다. 다만 응답 시점이나 경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훈련 축소 지시를 “김정은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라며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평가했다. 다만 북한이 곧바로 호응할 가능성은 낮게 봤다. 차 석좌는 CSIS 긴급 화상 좌담회에서 북한이 “당장 반응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시간을 두고 조금 더 기다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위원장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한 만큼 서둘러 미국의 제안에 응하기보다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향후 “미국이나 일본과 대화할 기회를 볼 것”이라는 분석이다.

차 석좌는 북한이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 시절과 달리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주요 무기 시험을 자제하고 있다는 점도 거론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 시기를 항상 비교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북한이 당시와 같은 속도로 무력시위를 하지 않는 것을 일종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차 석좌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합훈련 축소 지시’ 배경에 이란전쟁이 있을 수 있다고도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는 이란 관련 뉴스가 헤드라인에서 사라지길 바라는 것 같다”며 “언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란 문제에 지쳤고 지루해하며 명확한 해결책이나 쉬운 답이 없기 때문에 다른 주제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차 석좌는 한국의 이란전 지원 거절이 훈련 축소의 핵심 배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문제와 관련해 많은 동맹국에 불만을 품고 있고 한국이 유일한 건 아니다”라며 “한국을 겨냥해 한마디 쏘아붙인 것은 맞지만 이번 결정의 큰 동기는 아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 정치권에서는 훈련 축소가 동맹의 군사적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나왔다. 공화당 소속 톰 틸리스 상원의원은 엑스(X)에 “특별한 군사역량을 갖춘 한국은 70년 넘게 미국의 굳건한 군사동맹이었다”며 연합훈련 축소를 비판했다. 상원 군사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잭 리드 의원도 이번 결정을 “또 다른 무분별한 결정”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독재자에게 아부하려고 연합훈련을 축소하거나 자신이 시작한 전쟁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한국을 벌한다면 동맹과 적국 모두 미국의 공약이 협상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서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