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비’ 기도하던 경남, 역대급 폭우에 망연자실…극한 기상 ‘양극화’ [세상&]

경남 거제 한때 시간당 124㎜ 호우 ‘역대 최고’
지난달 중부는 폭우·남부는 가뭄…강수 양극화
중대본 폭염·풍수해 동시 가동 2년 새 4배 증가


17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옥포동 한 차도가 범람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가뭄에 시달리던 경남에 200년에 한 번꼴로 나타날 수준의 극한호우가 쏟아졌다. 폭염과 가뭄, 기록적 폭우가 짧은 시간 간격으로 이어지면서 극단적인 기상이 일상화하고 있다.

18일 기상청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15일 0시부터 이날 오전 5시까지 경남 거제에는 956.1㎜, 통영에는 766.9㎜의 비가 내렸다.

특히 짧은 시간에 쏟아진 비의 강도가 기록적이었다. 거제에서는 한때 시간당 124.5㎜, 통영에서는 97.4㎜의 비가 내려 두 지역 모두 관측 이래 1시간 최다 강수량 기록을 경신했다. 기상청은 1시간 최다 강수량을 기준으로 이번 폭우가 거제에서는 200년에 한 번, 통영에서는 100년에 한 번 발생할 수준의 강우 강도라고 분석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경남 지역은 가뭄에 시달렸다. 지난달 경남은 강수량이 68.0mm로 평년(304.7mm)의 21.9% 수준으로 역대 가장 적었다. 기상청 수문기상가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경남의 누적 강수량은 586.7㎜로 평년의 약 60% 수준에 그쳤다. 농업용 저수율은 33.3%까지 떨어졌다.

연일 이어진 폭염과 가뭄으로 농업·생활용수 부족이 심화하자 소방청은 지난 11일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하고 전국의 소방력을 경남에 투입했다. 가뭄으로 국가소방동원령이 발령된 것은 지난해 8월 강원 강릉에 이어 두 번째였다.

17일 새벽(01~04시) 지상 바람과 한 시간 누적 강수량 분포도 [기상청 제공]


하지만 엿새 뒤인 17일에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소방청은 집중호우 피해가 발생한 거제에 소방력을 추가 지원하기 위해 국가소방동원령을 3차까지 발령했다. 가뭄으로 물을 확보하기 위해 소방력을 동원했던 경남에 며칠 만에 폭우 대응을 위한 소방력이 다시 투입된 셈이다.

집중호우로 남부지방에서는 주택·도로 침수, 수목 전도 등 2574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이 가운데 경남이 2342건으로 가장 많았고 광주·전남 144건, 부산 67건, 울산 20건 등이었다.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17일 오전 4시42분께 거제시 옥포동 한 아파트 인근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아파트 1층이 매몰되면서 20대 남성이 숨지고 50대 여성 등 2명이 다쳤다. 같은 날 오전 5시3분께 통영시 산양읍 곤리도에서도 산사태가 발생해 60대 여성이 매몰됐다가 소방당국과 해경의 구조 작업 끝에 약 1시간30분 만에 구조됐다.

기상청은 이날도 제주와 경상권 남해안을 중심으로 시간당 10㎜ 안팎의 비가 내리고 있으며 오전까지 경남권과 전남 남해안 등에 60㎜ 안팎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많은 비로 지반이 약해진 만큼 산사태와 토사 유출 등 추가 피해에도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지역별 양극화도 뚜렷…“복합재난 대응 필요”


최근 우리나라 날씨 변화 [제미나이로 제작]


이번 극한호우는 단순히 많은 수증기가 유입된 데 그치지 않고 여러 기상 조건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당시 강수량 70㎜ 이상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남풍 계열 하층제트를 타고 남해안으로 유입됐다. 여기에 상층 기압골과 하층의 강한 수렴이 결합하면서 저기압이 발달했다.

특히 동쪽에 자리 잡은 강한 고기압이 저기압의 이동을 늦추면서 비구름이 남해안에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혔다. 거제 주변의 해안선과 지형도 중규모저기압 발달에 유리하게 작용하면서 강수가 좁은 지역에 집중됐다.

최근에는 이처럼 강수의 지역별 편차가 커지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기상청이 발표한 ‘2026년 7월 기후 특성’에 따르면 지난달에도 중부지방은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반면 남부지방은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는 등 지역별 기후 양극화가 뚜렷했다.

극단적인 기후가 이어지며 폭염과 집중호우·태풍에 동시 대응해야 하는 날도 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0~2025년 폭염과 풍수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이 동시에 운영된 날은 총 13일이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은 두 중대본이 동시에 가동된 날이 없었다. 하지만 2023년 2일, 2024년 3일, 지난해 8일로 매해 증가하는 추세다. 2년 만에 폭염과 풍수해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날이 4배로 늘어날 만큼 기후 변화 영향이 커졌다.

이와 관련해 기상청은 지난해 발간한 ‘2025 이상기후 보고서’를 통해 폭염과 가뭄, 산불 등 기후 재난이 복합재난 형태로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며 과학적인 감시 체계와 기후 변화에 따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