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회사채 폭증·중동발 인플레 불안도 겹쳐
일·영·중 등 줄이탈…6월 외국인 보유 감소
장기금리↑ 증시 압박…기업조달비 상승 우려
미국 30년물 국채금리가 5.3%를 넘어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 확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붐에 따른 기술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급증, 일본·중국 등 주요 해외 보유국들의 미 국채 이탈 가중이 초장기 국채금리를 밀어 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이날 미국과 이란 간 60일 휴전 합의가 별다른 성과 없이 만료되며 국제유가가 급등,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운 것도 장기금리를 밀어 올린 요인으로 꼽힌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날 3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전장보다 5bp(1bp=0.01%포인트) 오른 5.31%를 기록했다. 지난 13일 미 재무부가 실시한 250억달러 규모의 30년물 국채 신규 발행 입찰에서 2001년 이후 최고 금리(5.22%)가 나온 데 이어 매도세가 이어진 결과다.
배경에는 미국의 국가부채 증가와 이를 메우기 위한 대규모 국채 발행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투자자들이 미 정부의 재정 부담과 물가 위험을 반영해 장기 국채에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면서 채권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르고 있다. 최근 발표된 7월 고용 지표 부진과 소매 판매 감소로 연준의 단기 기준금리 추가 인상 압력은 다소 완화됐지만, 3%를 웃도는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시장에 부담이다.
미국의 재정 악화 속도는 가파르다. 2026회계연도 재정적자는 7월까지 누적으로 이미 전년도 연간 적자(1조7750억달러)를 넘어섰다. 피치는 미국의 재정적자가 2026~2027년 GDP 대비 7.4%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대규모 적자를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초장기물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AI 투자 붐도 국채시장에는 또 다른 부담이다. 데이터센터 건설 등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기술기업들이 회사채 발행과 대출을 크게 늘리고 있다. 올해 데이터센터 관련 자금조달액은 2690억달러로, 이미 지난해 연간 규모의 두 배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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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미국 정부와 기술기업이 장기 투자자금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더 높은 금리를 주는 민간 회사채와 미 국채를 비교하게 되면서 국채 수요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즈의 안슐 프라단은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재정 지출 감소, AI 관련 채권 발행 속도 둔화, 미 재무부의 발행 전략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통적인 장기 국채 매수 세력의 수요 약화도 금리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특히 일본 국채 장기금리가 30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오르면서, 그동안 초저금리를 피해 미 국채 등 해외자산을 사들였던 일본 기관투자가들이 자국 채권으로 자금을 되돌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장기금리는 전날 한때 2.93%까지 뛰며 30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환헤지 비용까지 감안하면 미국 초장기 국채의 상대적 매력이 크게 낮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JP모건은 그간 일본 투자자들의 미 국채 매수가 미 장기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요인이었지만, 이제는 반대 방향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미 국채의 최대 해외 보유국인 만큼, 대규모 자금 환류가 아니더라도 신규 매수나 만기 자금 재투자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국채 수급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실제 보유 통계에서도 이런 흐름이 감지된다. 이날 미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외국인의 미 국채 보유량은 9조2990억달러로 5월(9조3710억달러)보다 줄었다. 하지만 전년 동기 대비로는 2.3% 증가했다. 1위 보유국 일본은 6월 1조1160억달러로 5월(1조1430억달러) 대비 2.3% 감소했고, 2위 영국은 9399억달러로 1% 줄었다. 영국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주요 국채 보관 허브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영국의 자금 흐름은 헤지펀드들의 투자 포지션을 가늠하는 지표로 평가된다.
3위 중국의 감소세는 더 뚜렷하다. 중국의 6월 미 국채 보유액은 6334억달러로 5월(6593억달러)보다 4% 줄었고, 전년 동기 대비로는 13% 이상 감소했다. 이는 2008년 9월(6182억달러) 이후 최저 수준이다.
한편 단기물인 2년물 국채금리는 최근 하락세다. 생산자물가지수(PPI)와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약하게 나오면서 연준의 조기 추가 금리 인상 전망이 후퇴했기 때문이다. 단기물 금리는 내려가고 초장기물 금리는 오르는 이른바 ‘트위스트 스티프닝’이 나타나는 배경이다.
여기에 쉽게 해결되지 않는 중동 정세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날 미국과 이란간 60일 휴전 합의가 만료된 가운데 양측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했다.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앞서 언급한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 우려가 맞물리면서, 국채 금리를 한층 더 강하게 밀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의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은 단순한 금리 변동을 넘어 주식·채권·환율 등 주요 자산시장 전반의 가격을 끌어내릴 수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국채금리 급등으로 3대 주요 지수가 일제히 하락하는 등 그 여파가 주식시장으로 곧바로 번졌다. 장기 국채금리가 오르면 주식의 미래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할 때 적용하는 할인율이 높아진다. 특히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가 주가에 많이 반영된 기술주와 AI 관련주처럼 밸류에이션이 높은 종목일수록 금리 상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제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72.63포인트(0.51%) 내린 5만3459.78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40.70포인트(0.52%) 하락한 7745.06,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는 84.25포인트(0.32%) 떨어진 2만6644.91에 각각 마감했다.
채권시장에는 더욱 직접적인 충격이 우려된다. 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기존에 발행된 장기 국채 가격이 떨어진다. 특히 30년물처럼 만기가 긴 채권은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민감도가 높아 손실 폭도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
부동산 시장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장기 국채금리 상승은 주택담보대출과 기업 대출 등 장기 차입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택 구매력과 기업의 투자 여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정목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