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 보내는 대화 제스처”…미 전문가들, 한미훈련 축소엔 ‘엇갈린 평가’

“트럼프, 1기 미완의 북미 직접외교 재개 모색”
“2018년에도 실수, 2026년엔 더 큰 실수”…대북 억지력 약화 우려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모리스타운 공항에서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며 손짓하고 있다. [AP]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 규모를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한 것을 두고 미국 전문가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직접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제스처라는 데 무게를 뒀다. 다만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군사 역량을 강화한 상황에서 훈련 축소가 한미 연합 대비 태세와 대북 억지력만 약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17일(현지시간)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국내 언론의 서면 질의 답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외교적 교류를 다시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 대사 대리도 “정확한 계기를 알기는 어렵지만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관계를 맺기 위한 일종의 제스처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한미 연합훈련 규모를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연합훈련이 북한에 부적절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는 김 위원장이 자신의 대화 요청에 이미 응답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응답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다. 그가 응답했다”고 밝혔고, 현재 상황을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김 위원장이 언제,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응답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을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 마무리하지 못했던 북미 정상외교를 다시 추진하려는 신호로 해석했다.

에마 챈릿-에이버리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치·안보국장은 “이번 발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때 미완의 과제로 남았던 김 위원장과의 직접 외교로 복귀를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 의장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또 한 차례 정상외교를 추진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아 왔다”고 말했다.

다만 실제 북미 대화가 성사될지는 북한의 태도에 달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크로닌 의장은 “미국은 일관된 외교 전략이 부족하고 북한은 진지한 외교에 나설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챈릿-에이버리 국장 역시 “문제는 최근 몇 년 동안 영향력을 더욱 강화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하는 데 별다른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대화가 본격화할 경우 한국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두고는 전망이 엇갈렸다.

랩슨 전 대사 대리는 “2018년 북미 대화에서도 한국의 참여가 당연시됐던 것은 아니다”며 “이번에도 한국이 협상 과정에서 주변화되거나 아예 배제되더라도 김 위원장은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여 석좌는 이재명 대통령의 종전 논의 제안과 트럼프 대통령의 연합훈련 축소 지시를 대북 외교에 유연성을 부여할 수 있는 “상호 보완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시점에서 이 대통령의 제의가 그다지 큰 영향력을 미치지는 않을 것 같고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소통할 수 있다”면서도 “한반도 대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있어 서울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광복절 경축사에서 “오래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당사자들 간의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훈련 축소 지시가 실제 이행될 경우 한미 연합 대비 태세와 대북 억지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수 전문가 사이에서 제기됐다.

특히 과거와 달리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실전 경험과 군사 기술을 축적했다는 점이 위험 요인으로 지목됐다.

여 석좌는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 경험을 통해 새로운 정밀타격 및 드론 전술을 습득한 것으로 보인다며 “군사훈련이 축소되면 미군과 한국군은 북한의 잠재적인 적대 행위에 대응할 대비 태세가 약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크로닌 의장은 “핵심적인 동맹 연합훈련을 약화하기로 한 결정은 김 위원장의 셈법을 바꾸지 못하면서 억지력과 대비 태세만 훼손한다”며 “대화는 좋지만 우리는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크 몽고메리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확보한 기술과 장비로 더욱 강력한 군사력을 갖게 된 상황에서 연합훈련을 줄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미 해군 소장 출신인 몽고메리 연구원은 “이것은 2018년에도 실수였지만 2026년에는 더 큰 실수”라고 비판했다. 훈련 축소가 북한과 중국을 억지하는 미국의 능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안보 파트너라는 확신을 동맹국에 주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챈릿-에이버리 국장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위협적이지 않은 국가’로 묘사한 데 대해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꾸준히 고도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해왔다는 점에서 “동맹국들에 우려스러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반론도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 연합훈련을 당장 대폭 축소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늦은 만큼 단기적인 대비 태세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랩슨 전 대사 대리는 17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는 연합훈련을 대폭 축소하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가 너무 늦게 나왔다면서 “단기적으로 전반적인 동맹 대비 태세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연합훈련을 취소·축소했던 사례를 들어 당시 결정이 대비 태세에 미친 영향 역시 상대적으로 미미했다고 평가했다.

이란 전쟁 등으로 미국의 군사 자원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는 한미 연합훈련을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제니퍼 카바나그 디펜스 프라이어리티스 군사분석국장은 CNN에 “미국이 자원과 대비 태세 모두 부족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의 양자 훈련은 미국의 자원과 대비 태세를 불필요하게 소모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훈련 축소와 동시에 한국의 이란전 지원 거부를 문제 삼은 점에도 주목했다.

랩슨 전 대사 대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이란전 지원 문제에 불만을 표출한 데 대해 “그가 동맹을 거래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직접 대화 재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한미 연합훈련 축소가 실제 북미 협상을 끌어내는 카드가 될지, 대북 억지력만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지를 놓고 미국 내 논쟁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