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교수’ 이소연
비행기 통근하는 워킹맘 피아니스트
동생은 ‘서방님’ 부른 가수 이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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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겸 변호사 이소은의 언니인 피아니스트 이소연 [Lisa Marie Mazzucco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하는 장거리 통근길. 가족을 분주하게 챙기고 나선 하루는 줄리아드 음악원의 문을 열며 시작된다. 전 세계 음악 영재들의 ‘음악적 자아’를 깨우고, 홀로 건반 앞에 앉아 고독한 타건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아시아계 여성 최초’의 미국 줄리아드 피아노과 교수. 1905년 개교 이래 117년간 엠마누엘 엑스, 세르게이 바바얀, 스티븐 허프, 제롬 로웬탈 등 서구 남성 거장들이 주류를 형성해온 일종의 ‘금녀의 집’이었다. 지난 2022년 이 견고한 유리천장을 깬 그의 이름 뒤엔 역사성을 담아낸 명성이 따라오나, 정작 한국 무대에선 많이 오르내리지 않았다.
피아니스트 이소연은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연주는 저와 인연이 없다고 생각해왔다”며 “한국은 제게 이 세계의 어느 곳보다도 깊은 인연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데도 연이 닿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그가 마침내 한국에 온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은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Hic et Nunc! Music Festival)을 통해 리사이틀(9월 2일, 예술의전당)을 갖고 한국 관객과 만난다.
이소연은 “매운맛을 좋아하고, 헤어질 때마다 울고, 주고 싶어 안달하고, 정에 목말라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진하게 가지고 있다”며 “그동안 기회가 되지 않았던 인연의 아쉬움을 덜어내는 편안하고 감사한 무대”라고 했다.
이소연의 이름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력 중 하나는 ‘줄리아드’다. 세계적인 남성 피아니스트들이 교수진으로 포진한 줄리아드 음대가 117년 만에 임용한 아시아계 최초의 여성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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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줄리아드 음대 피아노과 최초 아시아계 여성 교수인 이소연 [본인 제공] |
지난 4년을 돌아보며 이소연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도전적인 시간이었다”며 “출퇴근, 학생 지도, 연주, 가족의 곁을 지키는 것까지 전적인 집중력을 요구하지만 이 모든 일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주기도 한다”고 했다.
그가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잘 치는 법’이 아닌 ‘자기만의 음악을 갖는 법’이다. 이소연은 “학생들이 음악을 전에 경험해 보지 않은, 각성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시각을 열어 주려고 한다”며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스승으로서 건네는 가르침은 자기를 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콘서트에서 듣고 싶은 연주자는 나와 똑같이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상상력과 예술성, 무엇보다도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해석하고 전달하는 연주자니까요. 학생이 자신만의 음악을 설득력 있게 펼쳐 나가며 참된 자기 모습에 도달하도록 돕고자 노력해요.”
그는 줄리아드 음악원에선 “뛰어난 예술가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간으로서 다음 세대를 형성할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양성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스마트폰과 유튜브로 온갖 음악 정보와 거장의 연주를 만날 수 있다. 학교에선 이러한 환경에 놓인 학생들에게 더 치열하고 집요한 자기 훈련을 강조한다.
이소연은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음원과 악보를 쉽게 구하고 무한한 채널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열려 있지만 방대한 정보로 인한 방해 요소도 존재한다”며 “연주 스타일 면에서는 대체로 서양권 연주자들이 자율적 개성을, 동양권 연주자들이 정교한 테크닉과 깊은 정서를 보여주는데, 독창적인 예술성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자기 훈련과 의도적인 연습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일상과 예술은 분리되지 않는다. 이소연은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마음 다해 성실히 수행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고 습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은사인 거장 제롬 로웬탈 교수의 가르침은 그의 음악관을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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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이소연 [Lisa Marie Mazzucco 제공] |
“선생님께선 커리어란 생이 끝날 즈음 비로소 정의되며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의 총합이라고 하셨어요. 음악적 테크닉뿐만 아니라 문학, 가족, 자연에서의 경험 등 삶의 전반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결국 연주자로서의 깊이를 만들죠. 그 과정에서 수련은 일종의 연금술 같아 결국 삶에서 원하는 가치에 도달하게 해줘요.”
‘삶의 총합’에서 가장 큰 쉼터가 돼주는 것은 가족이다. 1990년대 후반 16세에 데뷔, ‘서방님’ ‘작별’을 히트시킨 ‘소녀 가수’이자 현재 미국에서 국제 변호사로 활약 중인 이소은이 그의 동생이다. 자매는 전혀 다른 장르와 직업을 선택했지만 서로의 예술적 감각과 가치를 공유한다. 이소연은 동생을 “동료나 친구처럼 이야기할 수 있고, 공연 무대에서 안정이 필요할 때 조건 없이 응원하고 격려하는 상대”라고 했다.
“삶의 모습은 다르지만 예술적 감각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어요. 각자의 전문적인 영역을 넘어 서로에게 배우기도 하고, 가끔은 여느 자매처럼 찬기류와 고온다습한 공기가 만난 듯이 폭우를 쏟아내기도 하죠.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주고받는 동반자예요.”
이번 리사이틀은 이소연의 삶과 예술 세계를 유기적인 파노라마로 관통한다. 드뷔시의 ‘회화적 선율’로 문을 연 뒤, 슈만과 프로코피예프를 지나 라벨로 내딛는다. 특히 아시아 초연 무대는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다. 줄리아드 동문이자 절친한 작곡가 파올라 프레스티니(Paola Prestini)의 신작 ‘어머니 달의 노래(Song of the Mother Moon)’이다. 프레데릭 제프스키, 파올라 프레스티니,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 알렉산더 괴르, 가브리엘라 레나 프랑크, 김택수 등 동시대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위촉해 세계 초연한 그에게 이 곡은 더 특별하다. ‘엄마이자 예술가’로 살아가는 프레스티니와 이소연이 삶의 궤적을 나누며 태어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곡의 시작과 끝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화려한 음의 세례로 장식돼요. 작품 본문은 평화롭고 정적인 자장가 선율과 열정적이면서도 격정적인 모티브가 끊임없이 교차하며 진행되죠. 아이와 온전히 함께하는 따뜻한 순간과 예술가로서 겪는 치열한 내면의 갈등 사이를 쉼 없이 오가는 일상의 급격한 변화를 담아냈어요.”
리사이틀 전 살롱 콘서트는 그의 인문학적 확장을 반영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테마로 19세기 말 프랑스 벨 에포크의 정취를 재현한다. 레날도 안, 포레, 드뷔시의 선율이 문학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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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이소연 [Lisa Marie Mazzucco 제공] |
무대와 학교, 가정의 세 축을 지탱하며 쉼 없이 달려온 그가 삶의 나침반으로 삼은 원칙은 ‘안주하지 않는 치열함’이다.
이소연이 유학을 떠난 20여년 전과 비교하면 세계 클래식계에서 한국의 음악가들의 위상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주요 콩쿠르를 휩쓸며 이름을 날리고 한국을 넘어 세계의 스타 음악가로 자리하고 있다. 나움버그 국제 피아노 콩쿠르, 콘서트 아티스트 길드 국제 콩쿠르를 석권하며 기량을 증명한 그는 “(한국 후배들의) 놀라운 재능과 예술성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큐멘터리 감독 켄 번스(Ken Burns)가 브랜다이스대학교(Brandeis University) 학위수여식에서 했던 말을 통해 예술의 본연을 되새긴다.
“지나친 전문주의에 빠지지 말고 여러분의 모든 역량을 두루 다듬으세요. 그것이 우리를 더 건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성공이 곧 탁월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매일 기억하세요.”
그는 ‘성공’ 자체를 최종 목표로 삼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소연은 “보람은 있지만 힘들고도 예측할 수 없는 여정에서 우리는 노력을 통해 탁월함을 먼저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할 따름“이라며 “정형화된 기계적인 메커니즘보다 진정한 예술적 교감을 우선시하여 그들만이 지니고 있는 음악성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도전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피아니스트인 남편 란 단크와 두 대의 피아노 프로젝트와 세계 유수 무대에서의 도전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서의 공연 이후엔 남편과 작곡가 첸 이에게 공독 위촉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미래를 향하여’를 세계 초연한다. 바르톡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두 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계속 연주하고, 워싱턴 의회 도서관에서 쳄린스키가 편곡한 말러 교향곡 6번 연주도 계획돼 있다.
그는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진다는 확신으로 성실히 연주하고 가르치며 계속 성장하고자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