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차기 피해자의 울분…‘비싼 돈 들여 변호사·탐정’ 피해자 ‘셀프 수사’ 강요하는 새 형사소송법 [세상&]

檢 보완수사권 폐지에 커지는 우려 목소리
“미흡한 경찰 수사를 견제하고 수정 못해”
“비싼 변호사 선임해야 유리한 수사될 것”
범죄 피해자, ‘누굴 위한 법이냐’ 거센 비판


2022년 부산에서 30대 남성 이모씨가 돌려차기로 김진주 씨의 머리를 가격해 쓰러뜨린 후 폭행해 의식을 잃게 하고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로 끌고 가 성폭행을 시도했다. 검찰의 보완수사로 이씨의 혐의가 강간살인 미수로 변경돼 최종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경찰은 이씨를 중상해 혐의로만 송치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아린 기자] “경찰도 검찰도 완벽하지 않은데 수사권한이 한 기관에 집중되면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가 줄어듭니다. 견제가 사라진 자리에서 피해자는 수사를 독점한 기관이 내린 판단을 되돌릴 방법이 없습니다.”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범죄 피해자가 바라본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 토론회에서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가명) 씨는 검사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형소법 개정을 앞두고 자신이 “보완수사권이 살아있을 때 피해를 당한 운 좋은 피해자”라며 이같이 말했다.

2022년 5월 부산에서 30대 남성 이모씨는 귀가하던 김씨를 따라가 돌려차기로 머리를 쳐 쓰러뜨린 뒤 발로 밟아 의식을 잃게 하고 감시 카메라 사각지대로 끌고 가 성폭행을 시도하다 도주했다. 경찰은 전치 16주 진단의 부상을 입고 기억을 잃은 채 입원한 김씨를 상대로 ‘성범죄를 당한 것 같냐’고 묻고는 그가 ‘아마 아닐 것 같다’고 답하자 단순 상해로 수사를 종결했다. 경찰은 범행 당시 피해자가 입고 있던 속옷과 바지를 확보하고도 감식하지 않았다.

이후 검찰이 경찰 수사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김씨의 바지 안쪽에서 피의자의 DNA가 검출됐다. 검찰은 이씨의 피의사실을 상해에서 강간 등 살인미수로 바로잡아 기소했다. 법원은 지난 2월 경찰이 성범죄 혐의를 놓치는 등 미흡하게 수사했다면서 국가가 피해자에게 15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도 경찰의 부실수사를 인정한 것이다.

김씨는 “검찰이 집념으로 보완수사하지 않았다면 나는 성범죄를 당한 사실을 영원히 알지 못했을 것이며, 가해자의 형량도 훨씬 가벼웠을 것이고 어쩌면 이미 출소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보완수사권이 폐지되고 나면 나와 달리 앞으로의 피해자들에겐 부실수사가 보완될 기회가 사라진다”고 우려했다. 경찰 수사에서 사실관계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을 경우 검찰 수사라는 두 번째 기회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 홍기원·곽상언·박희승 의원이 지난달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범죄피해자가 바라보는 바람직한 형사소송법 개정방향 토론회’에 참석해 범죄 피해자의 사례 증언을 듣고 있다. [연합]


‘수사의 민영화 될 것’ 우려 목소리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없게 되면 범죄 피해의 실체를 제대로 규명하기 어려워질 거란 지적에 형소법 개정을 추진한 더불어민주당은 ‘피해자의 수사 참여 확대’를 대책으로 내세웠다. 민주당 의원들은 피해자가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요청하거나(제245조의12) 수사가 지연되거나 위법할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제245조의11) 등 권리 보호를 강화했다면서 “검찰 수사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접근은 결국 초기 수사 단계에서부터 변호사 선임이 필수적인 환경을 조성하면서 ‘형사사법의 민영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말한다.

장애인인권법센터 대표 김예원 변호사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에서 “수사기록을 열람할 수 있게 해 주면 피해자가 수사의 오류를 찾아낼 수 있을 거란 전제부터 비현실적”이라며 “기록을 보고 법적 문제를 찾아내려면 상당한 법 지식과 시간, 체력이 필요한데 결국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피해자와 그렇지 못한 피해자 사이의 격차만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국가가 수사의 적정성을 스스로 점검해야 할 의무를 피해자가 대신 할 수는 없다”며 “수사기관이 해야 할 일을 피해자에게 떠넘기고 피해자가 직접 문제를 찾아내 알린 사건만 다시 살펴보겠다는 건 보호가 아니라 책임 전가다”라고 했다.

형소법 속 ‘피해자 입틀막’ 조항도 논란


개정 형소법에 신설된 수사기록 열람·등사에 관한 조항은 오히려 피해자의 문제 제기를 제약해 논란이 되고 있다. 피해자가 수사기록을 통해 확인한 문제점을 언론에 제보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피해자는 기록 열람을 통해 알게 된 수사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형소법 개정 전에는 피해자가 수사기록에서 경찰의 부당한 수사 정황을 발견할 경우 언론에 알려 공론화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그러려면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피해자가 신청한다고 수사기록을 열람·등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경찰이나 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한해 허가되기 때문이다. 형소법 개정 전에는 목적에 구애받지 않고 수사기록에 대한 열람·등사가 가능했다.

민주당은 형소법 개정으로 피해자의 참여·접근권을 확대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기록 접근 여부가 결정되고, 수사에 문제가 있어도 외부에 알리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 셈이다.

국무조정실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경찰 수사의 부당함을 외부에 알리지 못하게 봉쇄하는 피해자 언론 제보 방지법”이라며 “현행 제도에서 피해자나 대리인은 언론 제보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러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 3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형사소송법 개정 국민보고회에서 ‘훨씬 좋아진 형사소송법’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이상섭 기자


“진실 밝힐 부담 피해자에 떠넘겨”


형소법 개정에 대한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개정법 통과 전후에 발표된 다수 여론조사에서 보완수사권 폐지 반대가 찬성보다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수사를 개시부터 종결까지 전담하는 구조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자 민주당에서는 경찰서마다 변호사를 상주하게 하거나(박주민 의원) 피해자가 국선변호사를 이용하게 하겠다는(서영교 의원) 식의 보완책을 제시했다.

이를 두고 한 변호사는 “수사에서 검사가 하던 역할을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정작 검찰은 해체하고 경찰에 변호사들을 대거 투입하겠다고 하니 엄청난 세금 낭비이자 형사사법 서비스 외주화”라고 비판했다.

2009년 6월 경기 성남에서 일어난 황산테러 사건 피해자이자 범죄피해자통합지원센터 실장인 박선영 씨는 국회 토론회에서 “여당은 검사가 수사를 못하게 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부담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선 국민 권익을 위한 개정이라고 주장한다”며 “피해자가 직접 증거를 찾고 사비를 들여 변호사를 선임하고 탐정을 고용하며 스스로 수사의 빈틈을 메워야 하는 형사사법제도가 국가가 책임을 다하는 제도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국가는 국민에게 사적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 대신 범죄를 수사·처벌하겠다고 약속하며 형벌권을 독점했다”며 “이는 다시 말해 국가가 억울한 피해자나 피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