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난 올리브는 없어”…존재의 의미와 이해의 힘[북적book적]

김초엽 신간 ‘태양 아래 올리브’
의심을 넘어선 믿음과 이해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얄미운 올리브. 그렇지만 태어나보니 이곳인 올리브 입장도 있지 않나?”

김초엽의 세 번째 장편소설 ‘태양 아래 올리브’에서 주인공 이레는 낯선 땅에 뿌리내린 올리브나무를 보고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자랐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올리브의 입장을 떠올린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태어나보니 그곳이었고, 어차피 태어났으니까 살아갈 뿐인 올리브.

올리브나무를 처음 봤을 때는 몰랐지만 알 수 없는 동질감은 이레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사고 이전의 기억을 잃고,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 헤매다 어렵게 뿌리내린 자기 같아서.

이레는 푸른아녜스 수녀회의 ‘베로니카 수녀’가 되어 기후 재난 현장을 누비고 있다. 신에 대한 믿음으로 봉사하며 사는 그의 삶은 어린 시절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났던 준의 소식이 날아들면서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무렵 과학기술 정책 매거진의 에디터이자 익명 채널 ‘미놋’을 운영하는 솔민에게는 푸른아녜스 수녀회를 취재하라는 수상한 전화가 걸려 오고, 이레 앞에는 그의 과거를 알고 있는 듯한 낯선 이들이 나타난다. 서로 무관해 보이던 사건들은 점차 같은 비밀을 가리킨다.

8년 만에 만난 이레와 솔민은 결국 준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국경을 넘어 쫓고 쫓기며 이어지는 이야기는 로드 무비를 연상케 한다. 이해하기 힘든 세상에서 신을 믿는 이레와 과학적 의심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하는 솔민은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긴 여정을 함께 헤쳐나간다.

정반대의 두 사람은 위태로운 상황에서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준다. 여행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이레와 솔민은 어느새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며 서로를 구한다.

고난 끝에 다다른 길 끝에서 두 사람은 달라진 모습의 준과 예상치 못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사라진 과거를 말끔히 복원할 답이 아니라 존재에 대해 되묻게 하는 심연이 나타난다.

책에서 의식은 자신을 이루는 물질에서 벗어날 수 없고, 시간을 건너뛸 수도 없다. 살아낸 시간 동안 쌓인 기억과 감각, 사랑과 고통이 한 존재의 생을 이룬다. 그렇게 형성된 의식은 재현될 수도, 복제될 수도 없는 유일한 정체성이다.

이는 영혼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영혼은 물질을 벗어나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가 몸과 시간에 새긴 흔적일까. 어느 쪽이든 영혼은 타인에게 온전히 증명될 수 없다. 작가는 “증명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끝내 그 목소리를 믿기로 선택하는 일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다”고 밝힌다. 믿음은 불확실한 것을 사실로 단정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으로 고통받는 존재의 말을 듣는 선택으로 그려진다.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이레는 준의 삶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인다. 책은 공상과학(SF)에서 출발해 스릴러를 거쳐 철학적 질문에 도달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를 둘러싼 사람과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생은 단 한 번뿐인 연산이다. 마음은 시간에 붙들려 있고, 시간은 매 순간 우리에게 되돌릴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는 구절처럼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용기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