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이스피싱범들, 상품권이 막히자 출금 못 막는 ‘외화계좌’로 튀었다…자금세탁 새 먹잇감

[보이스피싱과의 전쟁]
상품권 조이자 외화계좌로 튄 피싱범죄
지급정지 제한되는 외화계좌 ‘구멍’ 노려
“외화 거래실적 쌓아야 대출” 신종수법 주의
“외화계좌 조속히 지급정지 시스템 정비해야”


[챗GPT를 이용해 제작함]


[헤럴드경제=유혜림·이영기 기자] 금융감독원이 상품권을 이용한 자금세탁을 막기 위해 판매 한도를 낮추자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외화계좌’를 새로운 통로로 삼기 시작했다. 원화계좌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확인되면 금융회사가 지급정지 조치를 할 수 있지만 외화계좌는 전산상 즉각 묶기 어렵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외화계좌 역시 원화계좌처럼 신속한 지급정지가 가능하도록 사각지대를 조속히 메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급정지 못하는 ‘외화계좌’ 노렸다=1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울산 울주경찰서는 지난 13일 검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협박 전화를 받고 외화계좌로 2억6000만원을 송금한 40대 여성 A씨의 신고를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피싱 조직은 A씨에게 범죄에 연루돼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겁을 준 뒤 외부와 연락을 끊도록 압박했다. 이어 A씨를 울산의 한 에어비앤비 숙소에 홀로 머물게 하는 이른바 ‘셀프 감금’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후 범죄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절차인 것처럼 속여 A씨가 보유한 주식을 처분하고 현금 등 자금을 한데 모으도록 지시했다.

A씨는 주식 매도 등을 통해 마련한 2억6000만원을 피싱 조직이 지시한 외화계좌로 송금했다. 수상한 거래 동향을 포착한 ○은행 직원이 송금 목적을 묻자 A씨는 “사촌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국내에 있는 친척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준다면서 원화가 아닌 외화계좌로 거액을 송금한 점을 미심쩍게 여긴 은행 직원은 A씨의 거래 동향을 계속 주시했다. 이후 불과 10여분 사이 A씨가 3000만원가량을 대출받고 약 590만원의 주식 매도자금까지 확보하는 등 추가 자금을 마련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러자 피해 확산을 우려한 은행 직원은 A씨가 보이스피싱 피해자임에도 자금이 더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A씨 계좌부터 우선 차단했다. 은행마다 외화계좌의 지급정지 가능 여부가 제각각인 만큼, 지급정지가 어려운 다른 은행 계좌로 추가 송금되기 전에 자금 흐름부터 끊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또 거래 내역을 재차 살펴보는 과정에서 중고 휴대전화를 구입한 흔적도 발견해 A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고, ‘셀프 감금’ 상태임을 확인했다. 은행 직원의 설득 끝에 A씨가 경찰 출동을 요청했고, 출동한 경찰은 A씨를 숙소에서 보호해 경찰서로 이동시켰다.

▶“대출 받으려면 달러 거래실적 필요” 신종수법=최근 들어 외화계좌를 이용해 피해금을 빼돌리는 보이스피싱 의심 거래가 부쩍 기승을 부리고 있다.

외화계좌 대포통장으로 불과 1시간 사이 수천만원의 자금이 10여 차례 잇따라 들어왔다가 10분도 지나지 않아 달러 등으로 환전돼 빠져나가는 식이다. 최근 3년간 외화계좌를 악용한 은행권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입금 건수는 총 165건인데, 지난주 들어선 의심 사례가 평소보다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은 상품권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자금세탁을 막는 조치가 강화되면서 외화계좌가 새로운 우회로로 떠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최근 금융감독원은 대형마트 등 상품권 발행사와 협의해 무인 키오스크의 상품권 구매 한도를 종전 1회 500만원에서 1일·1회 100만원으로 대폭 낮춘 바 있다.

이에 피싱 조직들은 일부 은행들이 지급정지 전산 시스템상 외화계좌를 선택할 수 없는 공백을 노리고 몰려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은행 상당수의 지급정지 전산 시스템이 원화계좌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자금세탁 등 명백한 범죄 의심 정황이 포착되거나 피해자의 긴급 신고가 접수되더라도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른 지급정지 조치를 즉각 내리기 어려운 것이다.

지난 6월 금감원이 은행권의 외화계좌 실태 점검에 나섰지만, 여전히 은행마다 외화계좌에서 조회할 수 있는 정보나 지급정지 대응 수준이 제각각인 것으로 파악된다.

사기 수법도 외화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들의 허점을 파고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출이 필요한 소비자에게 “신용등급을 높이려면 외화 거래실적을 만들어야 한다”며 외화계좌를 개설하거나 다른 사람 명의 외화계좌로 돈을 보내도록 유도하는 수법이 쓰이고 있다. 외화 거래를 반복하면 금융거래 실적이 쌓여 신용도가 올라간다고 속이는 식이다.

당국이 관련 전산 시스템을 정비하고 피해금 환급 과정의 실무 기준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외화계좌는 피해금 환급 과정에서도 환율 변동에 따라 채권 소멸 금액이 달라지는 데다 환전 수수료를 누가 부담할지도 명확하지 않아 현장에서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또 금융소비자들은 대출 실행이나 신용등급 상향 등을 빌미로 타인 명의 외화계좌에 거액 송금을 요구할 경우 보이스피싱을 의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