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와 안창호가 냉면 대결을?…독립투사들의 ‘소울푸드’[미담:味談]

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사진=도산 안창호 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캡처,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총성이 터지는 긴박한 투쟁을 하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위안을 주는 게 있었으니, 바로 음식이었다. 당연하게도 독립운동가들 역시 음식 앞에선 평범한 한 사람이었으며, 맛있는 음식은 그들에게 큰 행복이었다. 음식은 때로는 머나먼 타지에서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백범 김구.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백범 김구는 냉면을 참 좋아했다고 한다. 김구가 상하이에 망명해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때였다. 암살의 위험 속에서도 정차 검표원인 지인의 청첩을 받고 축하 목적으로 방문해 냉면 한 그릇을 급히 먹고 오기도 했다.

1948년에는 분단을 막기 위해 김일성과 담판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김구는 숙소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마다하고 평양의 맛집 냉면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당시 수행원 선우진의 회고를 인용한 자료에는 김구가 평양냉면집에서 냉면을 먹으며 주인에게 형편을 물었다는 내용도 나온다.

평안남도 출신인 도산 안창호 역시 냉면을 좋아하기로 유명했다. 일제에 체포돼 복역 중, 냉면을 좋아하는 안창호를 위해 간수가 냉면을 시켜줬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안창호와 김구가 만나면, 냉면을 각자 두 그릇씩 비우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으로보면 대식가들의 냉면 대결이 아니었을까.

독립운동가와 냉면과 얽힌 이야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독립운동가 이탁(李鐸)은 광동군관학교를 수료하고 만주 봉천(현 선양)을 거쳐 국내로 잠입한 다음, 평안남도 평원군 숙천읍 동부지역에 냉면집을 구입해 국내연락처로 삼았다.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는 1941년 중국으로 건너가 서주에서 냉면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독립운동 터전에서 먹은 음식들


[사진=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협회, 게티이미지뱅크]


독립운동가들의 음식에는 당시 활동 지역의 음식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중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음식을 먹었고, 미국의 한인 노동자들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안중근 의사와 관련이 있는 음식으로는 ‘하얼빈 꿔바로우’가 있다. 얇게 저며 튀긴 돼지고기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입힌 꿔바로우는 하얼빈을 지금도 대표하는 요리다. 사실 꿔바로우는 안중근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라거나, 행복한 추억이 있는 음식은 아니다. 그가 하얼빈에서 의거를 준비할 당시, 자주 먹은 음식이 꿔바로우였다. 올해 청와대에서는 안중근 의사 순국을 기리며, 청와대 특식으로 이 하얼빈 꿔바로우를 내놓기도 했다.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지복영은 중국식 파전인 ‘총요우빙(葱油饼)’을 즐겨 먹었다. 총요우빙은 밀가루 반죽에 쪽파와 기름을 넣고 여러 겹으로 접어 구워내는 음식이다. 지복영은 1924년 일제의 감시를 피해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고, 이후 중국에서 생활했다. 중국어를 잘해 중국인 행세를 하며 생활하기도 했을 정도로 중국 문화와 가까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렇기에 총요우빙은 지복영에게 낯선 타국의 음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밥상 위의 독립운동가, 안혜순


[이미지=전북동부보훈지청]


독립운동가의 밥상을 책임졌던 이가 있다. 문일민 선생의 부인이었던 안혜순 선생이었다. 안혜순 선생은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오빠와 함께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1928년 중국 베이징에서 문일민과 결혼하여 상하이에 거주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한 남편을 도왔다.

그는 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식사를 마련하는 일을 도맡았다. 안혜순 선생의 음식 솜씨는 썩 좋았는지, 안창호는 “안 여사의 음식 솜씨가 최고”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안혜순 선생은 윤봉길 의사의 폭탄이 담긴 도시락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1932년 4월 28일 훙커우공원 의거를 앞두고 백범 김구는 안혜순 선생에게 도시락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의거 당일 도시락 하나에는 밥과 반찬을 담지 말라는 지시가 전해졌다. 그 도시락에는 윤의사가 일본 상하이 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등에게 던질 폭탄이 담겼던 것이다.

안혜순 선생을 단순히 밥 짓는 이로 봐서는 안 된다. 그는 엄연히 독립운동가들을 후방에서 도운 또 한명의 독립운동가였다. 국가보훈처는 안혜순을 “독립운동가의 가족을 살리고, 고난에 처한 우리 민족을 살리는 실천적 투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전선에서 싸운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