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역 3번 출구로 오세요” 병원의 은밀한 안내…무좀치료로 보험금 2600만원 탔다

금감원 보험사기 병원 집중조사 배경
병원 자보 치료비 과장청구 6.8배
미적발 포함 사기 규모 9조원 추산
내부자 제보 토대로 혐의병원 압축
병원을 ‘제3자 리스크’로 규정 통제


한 의원은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도수치료를 1만원에 받을 수 있다”는 문자 광고를 보냈다. 보건소 계도를 받자 이번에는 광고에서 병원 이름을 지우고 지하철역 출구 번호만 남겼다. 연락해 오는 환자에게만 상호를 알려주는 식이다. 이 의원에서 한 40대 여성은 발톱무좀 치료 명목으로 180여회 진료를 받으며 2600여만원의 실손보험금을 청구했다. 본인 부담은 회당 1만원이었다.

과잉 발톱무좀 치료로 수천만원 보험금을 청구하는 병원 등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올해 하반기 집중 조사에 나선다.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박성준 기자] 살을 빼려고 맞은 주사가 진료기록에는 통증치료로, 모발이식이 무좀치료로 적히는 일은 이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환자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서류다. 그렇게 새어나간 보험금은 결국 가입자 전체의 보험료로 돌아온다. 보험사기의 주도권이 병원 쪽으로 기울면서 금융감독원이 올해 하반기 조사 역량을 병원에 집중한다.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찬진 원장 취임 1주년 성과·향후 계획을 통해 하반기 중 보험사기 혐의병원에 대한 집중 조사에 나선다. 조사 대상은 보험사기 특별 신고·포상 기간에 접수된 병원 내부자 제보를 토대로 추린다. 신고 기간은 경찰청 특별단속 종료일에 맞춰 10월 말까지 연장됐고, 대상도 실손보험에서 자동차보험까지 넓어졌다. 신고 대상 병·의원에는 한방병원과 한의원도 들어간다.

금감원은 병원과 정비업체처럼 보험금 규모를 실질적으로 정하는 제3자가 영리 목적으로 과잉 진료를 유도하거나 비용을 올리는 행위를 ‘제3자 리스크’로 규정하고 차단 지침을 마련한다.

그동안 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2021년 9434억원에서 지난해 1조1571억원까지 해마다 늘었다. 그런데 유형별로 뜯어보면 병원이 자동차보험 치료비를 부풀려 청구한 유형이 2024년 40억원에서 지난해 273억원으로 6.8배 뛰었다. 적발 인원도 627명에서 3246명으로 5.2배 늘었다. 같은 서류 조작 유형인 진단서 위변조와 입원수술비 과다 청구가 14%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이마저도 걸린 것만 세운 숫자다. 금융위원회는 적발되지 않은 몫까지 고려한 국내 보험사기 규모를 약 9조원으로 추산했다. 적발액의 여덟 배에 가깝다. 병원이 개입한 사기는 진료기록 자체가 조작되기 때문에 서류만 보는 심사로는 걸러내기 어렵다. 이번 조사가 내부자 제보를 출발점으로 삼는 이유다.

병원이 환자를 부른다


금감원이 공개한 사례에서 보면 지난해 한 한방병원 원장은 보험설계사에게 “이번 달 소개 환자가 6분이라, 백화점 상품권 5만원권 6장 보내드렸습니다”, “미리 진료기록 작성해 놓게 환자 정보 알려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환자가 병원 문을 열기도 전에 기록부터 만들어두겠다는 뜻이다. 설계사는 상품권과 함께 공진단과 무료진료권을 받았다.

브로커는 환자에게 의사를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만으로 입원할 수 있고, 입원해야 합의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부추긴다. 입원하면 공진단과 경옥고, 미리 지어둔 첩약도 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배달 중 가벼운 후미추돌 사고를 당했던 이 환자는 14일간 입원한 것으로 처리된 채 자유롭게 드나들며 배달 일을 계속했다. 병원은 외출 기록을 사실과 다르게 적었다.

실손보험도 출발점은 같다. 의사가 진료실에서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먼저 묻고 허위 청구를 권유하는 행위는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상 처벌 대상이다. 특별 신고 기간에 접수된 제보를 보면 한 의원은 환자에게 비만치료제를 주고도 다른 질환을 치료한 것처럼 진료기록부를 꾸몄다. 보험에 들기 전에 미리 치료받게 한 뒤 면책기간이 지나면 청구할 수 있도록 허위 진단서를 발급한 의원도 있었다.

그렇게 채워진 병실의 수준은 법정에서 드러난다. 한 손해보험사가 다툰 사건에서는 주차된 차량의 사이드미러를 스친 사고로 일가족 세 명이 나란히 4일씩 입원했다. 세 살 아이도 포함됐다. 법원은 이 사고로 상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치료비·휴업손해를 인정하지 않고 위자료 15만원씩만 인정했다.


병원이 서류를 만든다


서류는 진료 전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 한방병원은 교통사고 환자에게 통증 정도를 0점부터 10점까지 고르게 하는 문진표에서 0점부터 4점까지를 아예 지워버렸다. 0점은 통증이 없다는 뜻이고, 4점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수준이다. 이 구간이 사라지면 환자는 아무리 가벼운 통증이어도 5점 이상을 고를 수밖에 없다. 이 점수는 진료비를 청구할 때 “통증이 심한 환자”라는 근거가 되고, 입원과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의 정당성이 된다. 통원으로 끝날 환자가 입원으로 넘어가면서 치료비는 몇 배로 불어난다.

지난해 적발된 한 병원장의 경우 실손보험금을 타 낼 목적으로 아예 의료기관을 세웠다. 병원 안에는 ▷자금팀 ▷알선상담팀 ▷보험팀 ▷처방팀이 따로 있었다. 상담팀 브로커가 “미용시술을 받아도 보험금이 나온다”며 환자를 모으면, 손해사정사가 포함된 보험팀이 실손보험 적용 항목에 맞춰 허위 진료기록부를 작성했다. 약사가 있는 처방팀은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거짓 청구했고, 자금팀은 계좌를 관리하며 인센티브를 나눠줬다. 모발이식과 필러 등 고가 시술을 받은 환자 1105명이 통증 치료를 받은 것처럼 꾸며 40억원을 챙겼다.

막히면 다른 문을 연다


규제를 적용해도 보험사기 우회 수법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도수치료 등 3개 항목을 관리급여로 지정하면서 회당 20만~30만원이던 도수치료 수가는 7만원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그러자 의료기관들은 아직 관리 대상이 아닌 신장분사치료·체외충격파 등으로 옮겨 실손보험 한도에 맞춰 가격을 다시 매기고 있다. 수천원이면 가능하던 치료를 수십 배로 부풀린 청구도 확인된다.

금감원은 지난 6월 체외충격파 치료의 분쟁조정 기준을 마련했고, 5월 출시된 5세대 실손보험은 비중증 비급여의 자기부담률을 30%에서 50%로 올렸다. 다만 새 항목이 등장하는 속도를 제도가 따라잡기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서류만 봐선 잡히지 않는다


집중 조사가 예고됐지만, 금감원은 수사권이 없다. 혐의 자료를 모아 경찰에 넘기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다. 이번 발표에 담긴 민생 특별사법경찰 도입 계획도 직무 범위가 대부업법과 채권추심법 추가에 그쳐 보험사기는 빠졌다.

그러는 새 서류를 걸러내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한 20대는 병원에서 발급받은 입·퇴원확인서를 생성형 인공지능(AI)에 올려 입원 기간을 늘린 뒤 1년간 11개 보험사에 반복 청구해 1억5000만원을 챙겼다. 법원은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했다. AI를 이용한 보험사기가 재판까지 간 초기 사례다.

과거에는 영수증을 오려 붙이거나 편집 프로그램을 쓰면 글꼴과 자간이 어긋나 흔적이 남았다. 생성형 AI는 이미지를 통째로 새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런 단서가 남지 않는다. 그나마 위조 파일을 그대로 올리면 조작 여부를 따져볼 여지가 있지만, 종이로 출력해 사진으로 찍어 청구 앱에 올리면 그마저 사라진다. 보험사가 받아보는 것은 결국 사진 한 장이다.

보험금 심사는 병원이 발급한 서류가 사실이라는 전제에서 이뤄지지만, 이런 전제가 무너지면 서류 안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금융위는 지난 6월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참여하는 AI 기반 보험사기 방지 체계 구축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TF는 내달 구축 방안을 내놓고 10월부터 법령 개정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