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는 왜 ‘4중 상장’에 도전하나…아메리카 드림의 ‘미스테리’ [홍길용의 화식열전](909회)

[요약] SK하이닉스의 미국 손자회사 솔리다임(Solidigm)이 프리IPO를 추진하며 나스닥 상장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성사될 경우 SK그룹은 전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4중 상장(㈜SK-SK스퀘어-SK하이닉스-솔리다임)’ 구조를 형성하게 됩니다. 중복 상장 논란 속에서도 SK가 이 카드를 꺼내든 배경과 자본시장적 함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최태원 회장의 반도체 경제적 이해관계 확대: 모법인인 NPS(SK hynix NAND Product Solutions)에 ㈜SK,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이 함께 출자하는 구조를 통해 최 회장의 NPS에 대한 간접 지분율은 기존 1.15%에서 약 2% 수준으로 상승합니다.
② ‘HBM 이상의 성장세’ eSSD의 폭발적 가치: AI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으로 eSSD 중심의 솔리다임은 흑자전환에 성공했으며, 고부가가치 솔루션 기업으로서 모기업인 SK하이닉스보다 더 높은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③ 주주 간 부가가치 배분 딜레마: 솔리다임의 외부 주주 유치 및 상장은 낸드 공급가 산정, R&D 비용 분담, 지적재산권(IP) 귀속 등 ‘SK하이닉스 주주 대 솔리다임 주주 간 이익 배분’이라는 새로운 지배구조 이슈를 낳게 됩니다.
④ 미국 AI 생태계 거점화 및 자본 조달: SK그룹에게는 글로벌 빅테크(SI)와 금융사(FI)를 우군으로 확보해 ‘투자-공동개발-장기구매’ 생태계를 구축하고, NPS를 중심으로 ‘제2·제3의 솔리다임’을 육성하려는 글로벌 확장 전략의 시험대입니다.


SK하이닉스가 중복 상장 논란의 한가운데 섰다. 미국 소재 손자회사 솔리다임(Solidigm)이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를 추진하면서다. 나스닥 상장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SK그룹은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는 공식 입장이다. 공시의 언어로 보면 부인은 아니다.

SK그룹은 이미 ㈜SK-SK스퀘어-SK하이닉스로 이어지는 3중 상장 구조를 갖고 있다. 솔리다임까지 상장하면 국내 최초이자 글로벌 기업에서도 찾기 힘든 4중 상장 구조가 된다. 중복 상장 논란으로 SK온 기업공개(IPO)가 연기된 기억이 있는 SK다. 심지어 재편되는 SK하이닉스 미국 법인들의 지배구조도 수수께끼다. 객관적 평가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왜 다시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선택지를 꺼내려 할까?

[참고]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 낸드 프로덕트 솔루션(SK hynix NAND Product Solutions Corp., 이하 NPS)의 영업을 양수하면서 올해 설립됐다. 솔리다임은 ‘솔리드 스테이트 스토리지(solid state storage)의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낸드(NAND)를 바탕으로 한 기업용 SSD(eSSD)에 특화된 회사다.


▶ 최태원 회장 반도체 경제적 지분율 상승

SK가 NPS 자체를 상장하지 않고 솔리다임이라는 자회사를 굳이 만든 이유를 가장 먼저 눈여겨봐야 한다. 낸드(NAND) 플래시 반도체 연구개발 및 판매라는 본업을 솔리다임에 넘긴 NPS는 AI 투자와 관련 솔루션 사업을 위한 법인으로 전환했다. SK하이닉스는 이 법인에 2030년까지 최대 100억달러를 출자하는 계획도 세웠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나 소프트뱅크의 마사요시 손처럼 최태원 회장도 AI와 관련된 글로벌 투자를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일종의 AI 투자 지주회사인 셈이다.

모기업인 SK하이닉스 외에 그룹 지주사인 ㈜SK, 계열사인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도 NPS에 출자한다.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출자 구조다. 공정거래법(18조)에서는 지주사는 자회사 외에 다른 계열사들이 지분투자를 할 수 없고, 자회사는 손자회사 외에 다른 계열사 주식을 소유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같은 금지 규정은 국내 법인에만 해당된다. NPS는 해외법인이라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SK그룹 내 시가총액 3위 규모로 보이는 NPS와 최태원 회장과의 경제적 이해관계도 이번 지배구조 개편으로 달라진다.

현재 ‘최태원-㈜SK-SK스퀘어-SK하이닉스-NPS’로 이어지는 경로에서 최 회장의 NPS에 대한 간접 경제적 지분율은 약 1.15%다. ㈜SK가 NPS에 2억5000만달러를 출자하면 새로운 경로를 통해 약 0.4%포인트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추가된다. ‘최태원-㈜SK-SK텔레콤-NPS’와 ‘최태원-㈜SK-SK이노베이션-NPS’라는 경로를 통해서도 각각 약 0.32%포인트, 0.13%포인트가 더해진다. 단순 계산하면 NPS에 대한 최 회장의 간접 경제적 이해관계가 기존 1.15%에서 약 2%로 높아지는 셈이다.

SK하이닉스에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던 반도체 사업의 경제적 과실에 새로운 구조에서는 최 회장이 더 가까워지게 된다. 이것만이 목적이라면 여기까지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의문이 남는다. 솔리다임은 왜 굳이 외부주주를 받아들이고 상장하려 할까?

▶ 하이닉스와 공조, ‘황금알’ 낳기 시작한 솔리다임

솔리다임이 상장되면 NPS와 새로 들어오는 외부주주의 이해관계가 갈릴 수 있다. 외부주주가 지분을 가져가는 만큼 솔리다임의 미래 이익 가운데 SK 측에 귀속되는 몫도 줄어든다. 그럼에도 상장을 검토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다시 솔리다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솔리다임으로 이전된 사업은 2023년만 해도 낸드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매출 3조109억원, 순손실 4조343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2024년 매출 8조8488억원, 순이익 8307억원으로 반전을 이뤘다. 2025년에는 매출 9조1751억원, 순이익 1조3915억원으로 더 좋아졌다.

앞으로 더 좋아질 가능성도 크다.

전문기관 가트너(Gartner) 전망에 따르면 글로벌 낸드 시장은 2025년 약 680억달러에서 2027년 3410억달러로 약 5배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연평균성장률(CAGR)은 123.7%다. 같은 기간 HBM 시장의 예상 성장률은 60.5%다. 전망대로라면 낸드가 HBM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성장하는 셈이다.

낸드 중에서도 솔리다임의 주력인 eSSD는 전망이 더 밝다. AI시대에는 반도체를 싸고 많이 만드는 것만큼 고객의 데이터센터에 맞춰 제품을 설계하고 최적화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낸드를 만들면 솔리다임은 이를 기업 고객이 원하는 SSD로 완성해 판매한다.

eSSD는 낸드 칩을 여러 개 모아놓은 단순한 저장장치가 아니다. 첨단 오류정정 기능과 정전방지 기능, 고성능 컨트롤러(controller) 등이 필요하다. 솔리다임은 이 과정에서 상당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솔리다임 주주는 SK하이닉스에서 낸드를 싸게 살수록 좋다. 반대로 SK하이닉스 주주는 솔리다임에 낸드를 비싸게 팔수록 좋다. 지금은 사실상 한 주머니의 문제지만 솔리다임에 외부주주가 들어오는 순간 이해관계가 갈린다.

AI와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는 수년에 걸친 투자계획을 세운다. 솔리다임이 장기공급계약(LTA) 중심의 사업구조를 갖추게 되면 실적 변동성이 완화될 수 있다. 경기에 따라 투자 부담과 제품가격 변동 위험이 큰 범용 반도체 회사, 즉 SK하이닉스보다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가령 시장이 SK하이닉스의 낸드 이익 1조원에는 5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하고, eSSD로 판매하는 솔리다임의 이익 1조원에는 10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똑같은 낸드에서 출발한 1조원의 이익인데 어느 회사 장부에 찍히느냐에 따라 시장에서 5조원이 될 수도, 10조원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솔리다임이 상장하면 단순한 내부거래의 문제가 아니다. SK하이닉스 주주와 솔리다임 주주 사이에 경제적 과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이는 SK하이닉스와 솔리다임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를 어느 회사에 얼마나 남길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SK하이닉스보다 솔리다임이 최 회장과 더 가깝다.

※ 챗GPT의 도움으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 솔리다임, 하이닉스보다 더 비싸질 수

프리IPO가 신주 발행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나 NPS의 돈을 쓰지 않고 외부자본으로 상당한 투자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돈보다 중요한 것도 얻을 수도 있다. 미국의 주요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나 AI 인프라 업체를 전략적 투자자(SI)로 끌어들이면 단순히 eSSD를 사고파는 관계를 넘어 ‘투자→공동개발→장기구매’로 관계를 묶을 수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재무적 투자자(FI)로 들어온다면 향후 AI 데이터센터 투자와 기업 인수 때 중요한 자금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SK그룹 전체로 보면 더 큰 그림도 가능하다. SK그룹은 반도체와 텔레콤 정도를 제외하면 경영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다. 사업 영역도 상당 부분 국내에 집중돼 있다. 급성장하는 AI 시장에서 반도체를 넘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사업 영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NPS에는 SK하이닉스가 최대 100억달러를 출자할 예정이다. 여기에 ㈜SK와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의 자본도 들어간다. 솔리다임이라는 캐시카우를 거느린 NPS가 미국 AI 생태계에서 투자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다.

NPS의 투자가 성공하면 그 다음도 가능하다. 투자한 AI 사업 가운데 크게 성장하는 사업이 나오면 현물출자나 물적분할 등을 통해 별도 회사로 키우고 외부자본을 유치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제2, 제3의 솔리다임도 만들 수 있다. 솔리다임을 상장하는 편이 NPS에 더 이롭다. NPS의 이익은 ‘그’의 이익이기도 하다.

국내 대기업이 미국 증시에 계열사를 직접 상장한 사례는 아직 찾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솔리다임의 프리IPO와 나스닥 상장은 단순히 자회사 하나를 상장시키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SK가 미국에서 AI 사업을 확장하는 새로운 기업·자본전략의 첫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나스닥에는 한국처럼 중복상장 자체를 금지하는 별도의 규제가 없다. SK가 추진한다면 길은 열려 있다. 성공하면 SK그룹에 새로운 지배구조 지도가 펼치질 수 있다. 국내 다른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이정표가 될만하다. 다만 SK가 그리는 그림이 만에하나 주주에게 불리한 것은 아닌 지 따져보는 절차는 필요해 보인다. 그러자고 상법에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를 새롭게 정했으니.

[참고] SK하이닉스는 2020년 인텔의 낸드 플래시 및 스토리지 사업 인수를 결정했다. 인수대금은 두 차례에 걸쳐 총 88억4400만달러였다. 중국 다롄의 낸드 생산시설뿐 아니라 낸드·SSD 관련 지식재산권(IP)과 연구개발 인력까지 인수했다. SK는 인수한 사업에서 생산 기능은 중국 다롄에, 연구개발과 판매 기능은 미국법인 SK하이닉스 낸드 프로덕트 솔루션(SK hynix NAND Product Solutions Corp., 이하 NPS)에 뒀다.
NPS는 지난 3월 신설한 솔리다임에 낸드·SSD의 판매 및 연구개발 사업과 관련된 자산과 계약, 권리, 인력 등을 넘겼다. 양도가액은 약 15조4000억원이다. NPS는 현금 대신 그 가치에 해당하는 솔리다임 신주를 받았다. 솔리다임은 NPS의 100% 자회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