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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하영[왼쪽. 본인 인스타그램]과 1918년 12월10일자 ‘매일신보’에 있는 안상호 가족 모습. [국립중앙도서관 자료 갈무리] |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가담한 조선인 구연수의 소개로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다는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14일 일요신문에 따르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이정은 책임연구원은 2007년 발표한 논문 ‘최초의 근대 개업의 안상호의 생애와 활동’에서 이 같이 밝혔다.
안상호는 일본 도쿄의 의친왕 이강 저택을 드나들며 그곳에서 사무를 보던 일본인 가와구치 이소코를 알게 됐고, 당시 일본 망명 중이던 구연수의 소개를 통해 결혼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연수(1866~1925)는 무과에 급제한 군인 출신 관료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돼 있는 등 ‘친일 명단’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인물이다.
그는 1895년 을미사변 당시 일본 자객들의 궁궐 진입과 명성황후 시해 과정에 관여한 조선인 협조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파 99인’에는 구연수가 명성황후 시신 소각을 감독한 인물로 서술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연수는 을미사변 이후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1907년 귀국한 뒤 일진회 평의원 등을 지냈으며, 이후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에서 경찰 관련 직책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연수의 장인은 송병준으로 이완용과 함께 대표적인 친일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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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연수 |
당시 일제는 조선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의 결혼을 의미하는 ‘선부일처(鮮夫日妻)’를 통해 조선과 일본이 하나라는 ‘내선일체’ 정책을 추진했는데, 구연수의 소개로 결혼한 안상호는 그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 안상호는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매운 음식은 조금도 못 먹는다”, “자녀들은 집에서 전적으로 일본어만 사용하며, 조선말은 전혀 하지 못한다. (자녀들은) 완전히 일본인 가정으로 키우고 있다“, ”조선 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배우 하영은 최근 TV 방송 등에서 자신의 집안이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했다가, 증조부가 ‘친일 논란’이 있는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져 지탄을 받고 있다. 한국인 최초의 근대적 개업의인 안상호는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에 가입한 사실, 독립운동가의 공격을 받은 이완용을 치료한 사실, 안중근 의사가 살해한 이토 히로부미의 추모준비위원회에 이름을 올린 사실 등이 확인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