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울고 웃은 2010년대…미·유럽서 반등 기회
‘명실상부 큰손’ 미 수출액, 지난해 3조원대 돌파
에이피알·구다이, 인디 브랜드서 연매출 1조 성장
“정부 차원 화장품 기초연구·인재양성 지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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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진 기자] K-뷰티 시장이 제2의 부흥기를 맞았다. 아시아를 벗어나 미주, 유럽, 중동 등 세계 곳곳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스킨케어뿐 아니라 헤어, 색조, 디바이스로 제품군도 다변화했다. K-뷰티 양대 산맥인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에 더해 에이피알, 구다이글로벌 등 신흥 강자들이 탄생하며 경쟁 구도도 다채로워졌다.
14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5년 2조9300억원이었던 한국 화장품의 해외 수출액은 2025년 17조2000억원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수출 규모는 미국(약 15조3600억원)을 앞섰다. 프랑스(약 34조5600억원)에 이은 세계 2위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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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 DB] |
K-뷰티 산업의 첫 부흥기는 2010년대, 한국을 찾은 중국 따이공(代工·보따리상)들이 이끌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이들은 면세점에서 국산 화장품을 대량 구매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LG생활건강의 ‘더 후’가 대표적인 수혜 브랜드다. 당시 면세점에서는 바닥에 캐리어를 펼치고 한국 화장품을 담는 따이공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2014년 방한에서 더 후 제품을 구매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2015년 설화수는 단일 화장품 브랜드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이듬해 더 후도 매출 1조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다. 아모레퍼시픽홀딩스는 2016년 연결 기준 매출 6조6975억원, 영업이익 1조828억원의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같은 해 LG생활건강(음료 부문 제외·이하 동일)은 매출 4조7500억원, 영업이익 7650억원의 실적을 냈다. 전년 대비 각각 17.3%, 32.8% 증가했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후폭풍에 부딪혔다. 당시 중국 정부는 화장품 품질 관리를 강화하고, 한국 단체관광을 금지하는 보복성 정책을 시행했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이 줄면서 매출은 급락했다. 아모레퍼시픽홀딩스 매출은 2017년 6조290억원으로 10%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32.4% 줄어든 7315억원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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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가속했다. 아모레퍼시픽홀딩스는 2020년 매출 4조9301억원, 영업이익 1506억원까지 실적이 악화했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정부가 실시한 강력한 방역 정책은 유연한 전략으로 사드 고비를 넘겼던 LG생활건강에도 위기를 안겼다. 2021년 6조4996억원에 달했던 LG생활건강 매출은 이듬해 5조4216억원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조849억원에서 4989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수출 실적마저 흔들렸다. 한국 화장품의 대중국 수출액은 2021년 6조9000억원으로 정점을 찍고 2025년 2조8000억원까지 급감했다.
반전의 기회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K-팝 스타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은 데 이어,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면서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특히 미국 시장 내 성장을 발판 삼아 인접한 중남미에서도 성장의 씨앗이 움텄다.
뷰티 업계는 미주 지역 매출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시기로 2023년 전후를 꼽는다. 실제 아모레퍼시픽의 미주 지역 매출은 2020년 766억원에서 2022년 1814억원, 2023년 2867억원으로 급성장했다. 2024년에는 5246억원으로 83% 급증했다. LG생활건강의 북미 지역 매출도 2022년 5775억원에서 2023년 6413억으로 늘었다. 중남미 매출은 같은 기간 48억원에서 133억원대로 177% 이상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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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장품의 대미 수출액도 2023년부터 급증했다. 2020년 9000억원이었던 대미 수출액은 2023년 1조7000억원 수준으로 늘었고, 2024년 2조7000억원, 2025년 3조1000억원으로 매년 앞자리를 갈아치웠다. 2025년 대미 수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중국(2조8000억원)을 넘어 K-뷰티 시장의 ‘큰손’ 자리에 올랐다.
뷰티 본고장인 유럽 시장 내 존재감도 커졌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유럽 화장품 수출액은 15억9623만달러(약 2조2600억원)를 기록하며 미국을 앞질렀다. 식약처가 집계한 지난해 화장품 수출 상위 10개국에는 폴란드(9위)가 포함됐다. 폴란드 수출액은 2024년 1억3000만달러에서 지난해 2억8000만달러로 115% 늘었다. 영국은 11위까지 올라섰고, 프랑스도 순위권에 신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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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디큐브 아마존 주력 제품 [에이피알 제공] |
이 시기 주인공은 인디 브랜드들이다. 틱톡,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을 통해 빠르게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으로 미국 시장에 침투했다. 과거 K-뷰티 브랜드가 중국 등에서 현지 오프라인 매장을 내며 진출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그 당시 미국은 셀레나 고메즈, 헤일리 비버 등 유명 스타들이 뷰티 브랜드를 연달아 론칭하면서 뷰티 채널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던 시기였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에이피알이다. 에이피알은 설립 5년 만인 2019년 미국, 중국, 유럽 등 해외 시장에 눈을 돌렸다. 공격적인 온라인 마케팅과 자사몰 유입 전략을 실시한 결과 2년 만에 해외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이후 해외 오프라인으로 판매 채널을 확장하며 지난해 매출 1조5273억원을 달성했다. 이 중 80%인 1조2258억원이 해외에서 발생했다. 해외 매출 가운데 미국은 37%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올해 2분기 지역별 해외 매출을 살펴보면 미국(49%), 유럽(19%), 아시아(16%) 순으로 나타났다.
아모레퍼시픽의 ‘코스알엑스’도 성공적인 인디 브랜드 인수 사례다. 아모레퍼시픽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9351억원을 투입해 코스알엑스를 인수했다. 코스알엑스는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아모레퍼시픽 실전 개선을 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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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다이글로벌의 대표 브랜드 ‘조선미녀’ [조선미녀 홈페이지] |
해외에서 인기를 얻은 인디 브랜드가 국내로 역수입되는 사례도 있었다. 2016년 설립된 구다이글로벌이 2019년 인수한 ‘조선미녀’다. K-뷰티에 한방을 결합한 조선미녀는 해외 시장에서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구다이글로벌은 조선미녀를 시작으로 티르티르, 스킨푸드, 라카코스메틱, 스킨1004(크레이버코퍼레이션), 라운드랩(서린컴퍼니) 등을 인수하며 ‘한국의 로레알’로 성장했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조4717억원, 영업이익 2734억원을 기록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진출했을 당시 성장기였던 중국 뷰티 시장과 달리, 미국·유럽 시장은 이미 성숙한 단계라 성장의 여지가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현지 시장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한 온라인 중심의 전략과 좋은 품질이 시너지를 내며 성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K-뷰티 브랜드는 현재 중동과 아프리카, 인도 등 세계 각지로 판로를 확장하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한국 화장품 수출국은 2024년 172개국에서 2025년 202개국으로 늘었다.
K-뷰티 열풍이 일시적 현상을 넘어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 강화가 과제로 꼽힌다. 수출국만큼이나 다양해진 소비자의 니즈를 해소하고, 늘어난 경쟁사와 차별화할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해외 시장에서 K-뷰티 브랜드 대부분은 중저가 라인에 포진해 있다. 아래로는 중국의 저가 브랜드가, 위로는 로레알·시세이도 등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에 막힌 형국이다.
국내 주요 업체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를 살펴보면 대부분 3%대에 머물러 있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기준 매출액의 3.7%인 1579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사용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매출액의 3.17%인 1348억원이다. 애경산업은 171억원으로 매출액의 2.6%다. 이는 글로벌 경쟁사의 4~5%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K-뷰티 역량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주덕 서울사이버대 뷰티산업학과 석좌교수는 “K-뷰티 산업은 그동안 문화산업의 성장과 함께 스스로 컸다”며 “이제는 기초연구부터 인재양성까지 전반에 걸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화장품은 다른 산업과 외국에 비해서도 많은 규제를 받고 있다”며 “식약처가 규제를 일부 완화한다면 산업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늘어나는 ‘짝퉁’도 극복해야 할 문제다. 에이피알은 최근 자사 브랜드 메디큐브의 중국산 가품 문제와 관련해 자사 홈페이지에 정식 안내문을 게재했다. K-뷰티 가품들은 아마존, 라자다, 알리익스프레스 등 해외 이커머스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4년 한국 기업 지재권 침해 위조 상품 규모는 97억달러(약 14조6000억원)로, 화장품 비중은 3위인 10%를 차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