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달러’ 예상 빗나간 국제유가…‘버티기’가 눌렀다

150달러 우려와 달리 유가 80달러
중국 등 원유 구매 대폭 줄인 효과
세계 최대 수입국 중국 500만배럴 감소
 IEA도 “세계 수요 하루 160만배럴 줄것”
지난 3월 인도 구자라트주 문드라항에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온 인도의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시발릭호가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

이란 전쟁 장기화로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봉쇄 상태지만 국제유가는 최근 80달러대로 내려왔다. 지난달 미국과 이란의 충돌 재개 직후에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오히려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 등 세계 각국이 원유 구매를 대폭 줄이면서 수요를 낮춘 영향이 컸다. 고유가가 세계 석유 소비까지 위축시키면서 원유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

13일(현지시간) ICE선물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2.15% 내린 배럴당 87.07달러에 마감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2.43% 하락한 배럴당 81.25달러를 기록했다. 국제유가는 지난 5월 이후 대체로 배럴당 100달러 안팎에서 움직인 뒤 최근 80달러대로 내려왔다.

1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국제유가가 예상보다 안정된 핵심 배경으로 중국의 원유 구매 전략을 꼽았다. 중국은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 이전 하루 약 1200만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던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다. 그러나 S&P글로벌에 따르면 5월 이후 중국의 해상 원유 수입량은 하루 약 500만배럴 감소했다.

통상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주요 수입국들이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유가가 더 오르지만 중국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비싼 원유를 추가로 사들이는 대신 수입을 줄이고 기존에 쌓아둔 재고를 사용한 것이다. 중국의 구매 감소로 애초 중국으로 향했을 원유가 국제시장에 남으면서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 압력도 낮아졌다.

원자재 데이터업체 케플러의 매트 스미스 애널리스트는 “중국은 높은 가격에 원유를 사지 않고 가격이 정상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구매 감소가 공급 측면에서 유가를 눌렀다면 최근에는 수요 감소까지 가세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8월 석유시장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석유 수요가 하루 16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전망보다 감소 폭을 하루 51만배럴 확대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수송 차질로 연료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가 예상보다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공급은 줄었지만 중국이 구매를 줄인 데다 높은 연료 가격으로 세계 소비까지 감소하면서 애초 예상했던 극단적인 원유 부족 상황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는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본격화했던 지난 3월 시장 전망과는 크게 다르다. 당시 에너지시장 조사업체 라이스타드에너지는 이란 사태가 4개월가량 이어질 경우 브렌트유가 배럴당 13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국 시장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차질이 장기화하면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다만 에너지 공급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문제의 중심이 원유에서 휘발유와 항공유,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등 석유제품으로 옮겨가고 있다. 원유가 있어도 이를 휘발유나 항공유로 만드는 정유시설의 생산 여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정유능력을 가진 중국은 석유제품 수출을 규제하고 있고 중동 정유시설도 호르무즈 해협의 혼란으로 제품 수출에 차질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러시아 정유시설 가동에도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역시 추가 생산 여력이 많지 않다. 미국 정유소 가동률은 이미 96%에 달한다. 주요 정유시설이 몰린 멕시코만 지역이 허리케인 시즌에 들어간 상황에서 기상 악화로 시설 가동까지 중단될 경우 휘발유와 항공유 공급 부족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원유 가격은 중국의 구매 축소와 세계 수요 감소로 안정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실제 사용하는 석유제품의 공급난은 오히려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서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