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유물 아닌 ‘민중 저항 상징’…“국가유산 의미 재평가돼야” [독립의 상징, 진관사 태극기]

사찰 발견 유일 일제강점기 태극기
백초월 스님, 독립운동 이끌며 사용
비밀결사단체 ‘일심회’ 창립해 활동
본엄스님 “항일 현장에서 실제 쓰여
역사·문화적 가치 커 국보자격 충분”


본엄스님이 13일 오전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진관사 태극기 영인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진관사 태극기가 국보로 지정돼 사람들에게 자유와 평화가 어떻게 지켜졌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잘 지켜갈 것인지 일깨우는 하나의 국가 상징물이 되길 바랍니다.”

서울시 은평구 산기슭에 있는 천년 고찰 진관사. 지난 2009년 5월 26일, 부속 건물인 칠성각을 해체·복원하던 중 내부 불단 안쪽 벽체에서 예상 밖의 물건이 발견된다. 흰 한지에 싸인 도시락 모양의 보따리였다.

당시 주지였던 계호스님(현 회주)과 총무였던 법해스님(현 주지)이 열어 보니 태극기가 보였고, 다시 태극기를 펼쳐보니 신문 19점이 있었다. ‘태극기’라는 시가 실린 ‘독립신문’과 독립운동의 첫째 날(1919년 3월 1일) 사진이 담긴 ‘신대한’,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등 다섯 종류의 신문이었다. 1919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무려 9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2021년 보물 제2142호로 지정된 ‘진관사 태극기’의 국보 승격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등과 함께 사상 최초의 국보 태극기가 탄생할지 주목되는 가운데,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진관사 템플스테이 국장 본엄스님을 진관사에서 만나 태극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찰 유일 일제강점기 태극기…불교 독립운동 증거=‘진관사 태극기’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일제강점기의 태극기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서울의 많은 절 중에서도 왜 하필 진관사에서 태극기가 나온 것일까.

본엄스님은 그 이유를 지역적 특성에서 찾았다. 스님은 “진관사는 예전에 마포 나루터에 포교당을 두고 있었다. 강길로 연결되는 위치로, 항일 운동 군자금을 모아서 전달하고 각종 자료와 소식을 서로 전달하는 곳이었다”며 “진관사 태극기 안에서 발견된 19점의 신문은 보통 사람들은 갖기 어렵고,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직들 정도만 가질 수 있었던 자료였다. 진관사가 중점이 되고 포교당이 일종의 분점 역할을 하며 스님들 간의 연결에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진관사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호국 도량’이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스님은 “진관사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때도 나라의 안녕을 위해 ‘국행수륙재’를 지내던 도량이었다”며 “도량 자체에 나라를 위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가 어려움 처했을 때 스님들이 많이 앞에 나서서 독립운동을 한 것 같다”는 설명이다.

특히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각은 6·25전쟁으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됐을 때 살아남은 작은 전각이다. 스님이 불단 밑에 들어가 벽을 뜯고 태극기를 숨긴 뒤 다시 흙칠을 했다. 여기에 다른 전각과 달리 도배도 돼 있었다는 점에서 태극기를 보전해 독립을 향한 마음을 후대에 전달하려던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칠성각 자체가 전통 불교와 토속 불교가 섞여 있는 곳으로, 수행하는 스님들이 독립운동에 나선 사실과도 겹친다.

이처럼 ‘진관사 태극기’는 기독교나 천주교뿐 아니라 불교도 독립운동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유물이라고 볼 수 있다.

본엄스님이 진관사 칠성각에서 태극기 발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백초월 스님이 제작한 걸로 추정…독립운동 주도=‘진관사 태극기’를 벽 속에 숨긴 인물은 불교를 가르치는 대강백이었던 백초월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과 백용성이 잡혀가자 근거지를 지방에서 서울로 옮겨 독립운동을 이끌면서 그들의 공백을 메웠던 스님이다. 특히 20여년간 진관사를 거점으로 독립운동을 펼쳐 태극기를 만들고, 숨긴 인물로 추정된다.

본엄스님은 “백초월 스님은 진관사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여러 차례 잡혀갔다가 나오고, 감시를 받다가 잠잠해지면 또 활동을 했다”면서 “항일 비밀결사단체인 ‘일심회’를 창립해 화엄 사상, 일심 사상을 고취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심(一心)이란 모두가 하나의 마음이라는 사상으로, 다른 사람이 고통받으면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없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는 스님들이 독립운동에 나서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백초월 스님에 정통한 김광식 전 동국대 특임교수는 “백초월 스님이 1919년 3.1 만세운동 후 11월 무렵 제2의 만세운동을 주도했는데, 그 무렵에 태극기가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잡혀갈 때마다 정신병자 노릇을 해서 풀려나고, 또 독립운동을 했다. 1940년에는 용산에서 만주로 가는 기차에 ‘대한독립만세’를 쓴 사건이 있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일심회 대표 초월스님이 시켜서 했다는 증언이 나와 3년간 감방살이를 했다”며 “출소 후 독립운동을 하다 또 잡혀 결국 1944년 6월 청주교도소에서 사망했다”고 부연했다.

이날 찾은 진관사 칠성각 앞에는 태극기와 백초월 스님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었다. 평일임에도 많은 방문객이 와 태극기의 의미를 새겼고, 외국인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다.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의 광복을 미처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 스님은 죄수복을 입은 사진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들을 맞이하고 있다.

▶민중의 저항 상징…“세 태극기 일괄 승격됐으면”=‘데니 태극기’는 구한말 왕실에서,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제작됐다면, ‘진관사 태극기’는 민간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고유한 역사성을 갖는다.

진관사 태극기는 일본의 제국주의의 폭압으로 절에도 강제로 꽂혀 있던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 의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왼쪽 윗부분 끝자락이 불에 타 손상됐고, 여러 군데 구멍이 뚫린 흔적이 있어 만세운동 당시나 그 이후에 민중의 항거 현장에서 사용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919년에 제작된 태극기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1919년에 제작된 실물 태극기라는 점에서도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

김 전 교수는 “데니 태극기는 고종이 미국인한테 선물로 준 것이고, 김구 서명문 태극기도 김구가 서명해서 외국인한테 준 것으로 독립운동 현장에서 쓴 게 아니다”면서 “진관사 태극기는 독립운동 현장에서 쓰였고, 독립운동 문건 자료와 함께 발견된 점을 미루어 볼 때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진관사 태극기는 100여 년 전 민중의 강렬한 독립 의지를 드러내면서 현재도 진관사에 보관돼 대통령부터 초등학생까지 수많은 국민이 찾아와 뭉클한 감동을 전달한다. 진관사는 태극기 국보 승격과 함께 과거 우리나라 지도 모양으로 조성됐던 ‘무궁화 동산’ 복원 및 ‘태극기 박물관’ 건립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본엄스님은 “진관사 태극기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살아 있는 국가유산”이라며 “아직 태극기 국보가 없는데, 후보에 오른 세 태극기가 일괄 승격되면 좋겠다. 각각 국가, 주권, 민주공화국을 의미하는 태극기가 삼각형으로 함께 있을 때 완전한 상징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경·조범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