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개입도 못막은 엔저…‘백방이 무효’

원/엔 환율 887.8원…2년여만에 최저
엔/달러 급락 뒤 오름세, 160엔 육박
확장재정·미일 금리차 등 하방 요인
엔 반등요소 없어…추가 개입도 제한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한 미국과 일본의 공동 시장 개입에도 엔화가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원화 강세까지 겹치면서 원/엔 환율은 약 2년 만에 100엔당 880원대로 내려왔다. 외환당국과 시장에서는 미·일의 추가 개입 여력이 제한적인 데다 일본의 확장재정과 낮은 성장 잠재력 등을 고려하면 엔화가 추세적으로 반등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3일 원/엔 환율은 100엔당 887.84원(매매기준율)으로 전 거래일보다 0.56원 하락했다. 2024년 7월 23일(884.1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상반기 950원 안팎에서 움직이던 원/엔 환율은 지난달 엔화 약세와 원화 강세가 맞물리며 급락했다. 지난달 3일 963.7원에서 한 달여 만에 7.9% 떨어졌다. 미·일 공동 개입으로 이달 3일 910.7원까지 반등했지만 개입 효과가 약해지면서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29일 163.9엔까지 오르며 약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공동 개입 뒤 이달 4일 157.3엔으로 내려왔지만 12일에는 159.3엔까지 재상승했다. 민경원·임환열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엔/달러 환율이 다시 160엔선을 위협하면서 아시아 통화시장의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엔화 약세가 이어지는 배경으로는 일본의 확장재정 기조가 꼽힌다.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은 2027회계연도를 ‘책임 있는 적극재정 원년’으로 정하고 2040년까지 인공지능(AI) 등에 370조엔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국채 발행 증가는 통화가치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일 금리 차도 여전히 크다. 일본은행은 6월 기준금리를 0.75%에서 1%로 올렸지만 미국 기준금리 상단(3.75%)과는 2.75%포인트 차이가 난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행이 금리를 더 올려도 한두 차례 정도일 것”이라며 “그 정도로는 금리 차가 좁혀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도 “금리를 3%에서 3.25%로 올리는 것보다 1%에서 1.25%로 올릴 때의 상대적 상승폭이 훨씬 크다”며 이자 부담 탓에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여력이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낮은 성장 잠재력도 엔화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0%대로 추정된다.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노동 투입 감소와 더딘 디지털 전환으로 생산성 개선이 지연된 데다 AI 중심의 산업 전환에서도 뒤처졌다는 평가다.

단기적으로는 미·일 당국의 추가 개입 여부가 원/엔 환율을 좌우할 전망이다. 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엔/달러 환율이 다시 160엔대로 오르면 당국이 이전보다 큰 폭으로 개입할 수 있다”며 엔화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내다봤다.

다만 대규모 개입을 반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외환당국 고위 관계자는 “시장 개입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지난 개입이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라며 “이 같은 대대적 개입을 다시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화 흐름도 변수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원화 강세가 지속되면 원/엔 환율은 추세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면서도 “원화와 엔화가 상반기까지 비슷하게 움직였던 만큼 최근 한 달 반의 흐름만으로 추가 하락을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했다.

엔저가 이어지면 일본 여행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올해 1~7월 일본 출국자는 608만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3.3% 증가했다. 지난해 대일 여행수지 적자는 57억540만달러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98년 이후 최대였다. 하반기 일본 여행이 늘면 여행수지 적자도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김벼리·유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