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기 위에 먹으로 그린 독립…진관사 태극기, 국보 자격 있다[독립의 상징, 진관사 태극기①]

칠성각 불단에 숨겨져 있던 태극기
2009년 전각 해체 중 우연히 발견
일장기 먹으로 덧칠한 유일한 태극기
역사·희소성, 독립운동사적 가치 뚜렷


광복 81주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 국기 태극기는 광복과 우리 민족을 대표하지만, 아직 국보로 지정되지 않았다. 지난 2021년 나란히 보물로 지정된 진관사 태극기와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등 3점이 올해 국가유산청 국보 승격 심사에 올랐다. 3점 모두 역사적·독립운동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진은 1919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진관사 태극기를 바탕으로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 등록된 1만8258명의 독립유공자 중 기록사진이 남아 있는 대한민국장(총 33명 중 32명), 대통령장(총 92명 중 82명), 독립장(총 823명 중 138명)의 사진을 활용해 제작한 모자이크 이미지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조범자·김현경 기자] 2009년 5월 26일.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을 해체하던 인부들은 불단(부처를 모셔 놓은 단) 뒤 벽체 안에서 낡은 보자기 하나를 발견했다. “스님 이게 흙벽에서 나왔어요.” 인부가 건네준 꾸러미를 조심스럽게 푼 총무스님(현 진관사 주지 법해스님)은 태극문양을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태극기는 투박하고 거칠었다. 왼쪽 상단 귀퉁이는 불에 타 손상된 모습. 군데군데 얼룩이었다. 자세히 보니 새 천으로 만든 게 아니었다. 일장기 위에 검은 먹물로 태극과 4괘를 덧칠했다. 압제의 표상을 독립 의지로 덮어버리겠다는 선언같았다. 이른바 ‘진관사 태극기’가 세상에 나온 순간이다.

90년 간 벽 속에 갇혀 있던 저항의 상징이 대한민국 국보 지정 심사대에 올랐다.

진관사 태극기는 2010년 등록문화재(현재 국가등록문화유산)로 등록됐다가 2021년 보물이 됐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태극기는 진관사 태극기와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등 총 3점이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5월 진관사 태극기를 포함한 태극기 3점의 국보 승격 조사에 착수했고 7월부터 실사에 돌입했다. 국보 지정 여부는 연말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통해 결정된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은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사례”라며 “3·1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다. 국보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태극기로는 첫 사례가 된다.

진관사 태극기를 칠성각에 봉안한 이는 백초월(1878∼1944)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임시정부와 독립군을 위해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선 백초월 스님은 일제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고 1944년 청주교도소에서 순국했다.

그가 숨긴 건 가로 89㎝, 세로 70㎝ 크기의 태극기 만이 아니었다.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단재 신채호 선생이 발행한 ‘신대한’, ‘자유신종보’ 등 독립신문류 5종 19점을 태극기로 감싸 보관했다. 한국불교의 독립운동을 밝히는 실증자료로 평가된다.

진관사 태극기는 식민 통치 아래에서도 꺾이지 않은 항일 정신을 담고 있다. 진관사 본엄스님은 “황실이나 임시정부에서 제작한 것이 아닌, 민중이 만든 태극기다. 독립을 향한 민중의 거대한 힘이 느껴진다”고 했다. 장터의 흙바닥에서, 학교에서, 교회와 사찰에서 투쟁하던 이름없는 민중이 지켜낸 태극기다.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은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유산 중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국가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한다. 송명호 전 국가유산청 근대문화재 전문위원은 “진관사 태극기는 사찰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태극기라는 역사성, 항일 의지를 담아 일장기 위에 그린 유일한 태극기라는 희소성 등 국보 지정 법령 기준에도 부족한 부분이 없다”며 “태극기 변천과정의 연구 자료로도 매우 귀중하다. 국보로 승격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국보는 단지 아름다운 유물이 아니라, 한 시대와 국가의 정체성을 압축해 보여줄 수 있는 명료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 진관사 태극기는 제작 경위가 명확하고, 봉안한 인물과 시대적 맥락이 뚜렷하며, 독립운동사 자료들과 함께 발견돼 국보로서의 가치가 증명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벽 속에서 나온 건 태극기 한 장이 아니라 애국과 저항의 기록이다. 이제 국가가 100년을 건너온 이 이야기를 완성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