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9년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의 날 행사에서 참석한 백인천 전 감독[연합 자료] |
한국프로야구 사상 유일한 4할 타자인 야구인 백인천씨가 14일 오전 6시 30분(한국시간)께 뇌경색이 악화돼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백 전 감독의 지인에 따르면, 충남 천안에 거주 중이던 고인은 이날 오전 심정지 상태로 구급차를 타고 거주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네차례나 뇌경색으로 쓰러진 백 전 감독은 불굴의 투지로 일어나 투병 생활을 이어왔고, 전날에도 비교적 좋은 컨디션에서 병원 정기 검진도 받았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장례는 KBO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천안 단국대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며, 발인 등 장례 일정은 미국에 거주 중인 동생이 귀국하는 대로 정해진다.
고인은 1942년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나 8·15해방 후 부친의 고향인 평안북도 철산에서 살다가 6·25 동란 이전에 월남했다. 서울 효제초등학교를 나와 성동중 1학년 때 야구를 시작, 경동중으로 전학한 다음 경동고 시절 초고교급 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1961년 농협에 입단, 그해 국가대표 포수로 발탁 돼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1962년 일본 프로야구 다이요 훼일즈에 입단, 한국인 최초로 해외 프로야구에 진출했다. 1974년 니혼햄 파이터스, 1975년 다이헤이요 라이온스로 이적했고, 그해에 퍼시픽리그 타격왕(타율 0.3192)에 올랐다. 그후 롯데 오리온스(1977~1980년), 긴테쓰 버팔로즈(1981년)로 옮겨 선수생활을 한 끝에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에 즈음해 귀국, 초대 MBC 청룡(LG 트윈스 전신) 감독 겸 선수로 뛰었다.
한국 프로야구 첫해에 고인은 타율 0.412를 기록, 한국 프로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4할대 타율을 기록하는 전설을 만들었다.일본프로야구 19년과 MBC 청룡에서 1년,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2년 등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만 22년간 이어갔다.
고인은 1990년 MBC청룡을 인수한 LG트윈스 창단 감독으로 다시 지휘봉을 잡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1996년 삼성 라이온즈, 2002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역임하고 1997년 삼성 감독 시절 처음으로 뇌경색 증상이 나타나 야인생활로 접어들었다.연합종합

![지난 2019년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의 날 행사에서 참석한 백인천 전 감독[연합 자료]](https://www.heraldk.com///cms/2026/08/14/www/202608140100001560000055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