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도 우회량 200만배럴 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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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만 연안에 있는 호르 파칸 컨테이너 터미널의 부두에 선박들이 정박해 있다. [AFP] |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이란 전쟁으로 ‘세계 원유의 동맥’ 호르무즈 해협의 취약성이 현실화하자 중동 산유국들이 수십억달러를 쏟아부어 ‘호르무즈 탈출’에 나서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 등 걸프 산유국들은 호르무즈를 우회할 송유관과 수출시설, 해외 원유 저장시설 확충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UAE와 사우디 등 걸프 산유국들은 호르무즈를 우회할 송유관과 수출시설, 해외 원유 저장시설 확충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이란 전쟁 발발 이전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원유는 하루 약 2000만배럴에 달했다. 그러나 이란의 해협 봉쇄와 기뢰·미사일 공격, 보험료 급등이 겹치면서 정상적인 원유 수송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해상운송 분석업체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지난주 호르무즈를 통한 원유 수출량은 하루 약 370만배럴로 전쟁 이전의 20%에도 못 미쳤다. 이란은 휴전 논의가 파행을 빚을 때마다 해협 봉쇄를 정해진 순서로 꺼내 들고 있다. 이에 중동에서는 하나의 길목에 원유 수출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비용이 더 들고 운송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가장 적극적으로 우회로를 구축하는 국가는 UAE다. UAE는 오만만에 접한 푸자이라에서 아부다비 내륙 유전과 연결되는 기존 송유관과 나란히 두 번째 원유 수송관을 건설하고 있다. 현재 하루 180만배럴 수준인 우회 수송 능력을 360만배럴로, 두 배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완공되면 아부다비 육상에서 생산되는 원유 대부분을 호르무즈를 거치지 않고 수출할 수 있다.
특히 푸자이라는 호르무즈 바깥인 오만만에 있어 이곳에서 선적한 유조선은 홍해와 바브엘만데브 해협도 거치지 않고 인도양으로 직접 진입할 수 있다. UAE 국영석유회사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는 동부 해안에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시설을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사우디는 수십억달러를 들여 동서 송유관(East-West Pipeline)을 확대하고 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건설된 이 송유관은 아라비아반도를 가로질러 1201㎞ 떨어진 홍해 연안 얀부항까지 이어진다. 아람코는 이란 전쟁 이후 동서 송유관 가동을 빠르게 늘려 올해 1분기 하루 700만배럴의 최대 수송능력까지 끌어올렸다. 사우디 당국은 여기에 하루 100만~200만배럴을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사우디의 ‘호르무즈 탈출’은 UAE보다 복잡하다. 얀부에서 아시아로 향하려면 친(親)이란 세력인 후티 반군의 공격 위험이 있는 홍해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야 한다. 이에 사우디는 원유를 홍해 북쪽으로 보내 수에즈 운하와 이집트 수메드 송유관을 통해 지중해로 내보내는 경로도 확대하고 있다. 실제 아람코는 올해 상반기 핵심 수출 선택지로 아라비아만과 홍해, 지중해 등 3개 경로를 제시했다. 그러나 지중해를 거쳐 아시아로 보내려면 항로가 크게 길어지는 만큼 비용과 시간이 늘어난다. 결국 호르무즈의 위험을 제거했다기보다 여러 수송로로 분산하는 전략에 가깝다.
호르무즈 우회 움직임은 다른 산유국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쿠웨이트는 자국 유전에서 홍해 또는 오만의 항구까지 원유를 운송하는 송유관 건설을 사우디 등과 논의하고 있다. 이라크와 요르단은 이라크산 원유를 홍해 아카바항까지 하루 최대 100만배럴 운송하는 송유관 계획을 되살렸다. 이라크는 키르쿠크에서 시리아 지중해 연안까지 이어지는 송유관 복구도 서두르고 있다.
산유국들은 한국과 일본, 인도 등 아시아의 원유 저장시설도 확대하고 있다. 호르무즈가 다시 막히더라도 이미 해협 밖에 옮겨놓은 원유를 소비국에 공급하기 위한 일종의 ‘물리적 보험’이다. 아민 나세르 아람코 최고경영자(CEO)는 “모두가 추가 저장능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며 “에너지 안보가 이제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텍사스대 오스틴의 에너지 분석가 벤 케이힐은 “많은 사람이 호르무즈가 전쟁 이전과 같은 비중의 원유 수출을 다시 담당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어느 나라도 다시 하나의 통과 지점에 그 정도로 의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호르무즈가 완전히 대체되기는 어렵다. 기존 인프라가 페르시아만을 중심으로 구축돼 있고 여전히 가장 효율적인 수출로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회 수송 능력이 확대될수록 이란이 호르무즈 봉쇄를 통해 세계 석유 시장을 흔들 수 있는 힘은 장기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 걸프 산유국들이 수십억달러를 들여 확보하려는 것은 전쟁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길이라기보다 어느 한 해협에 원유 수출의 운명을 맡기지 않을 ‘선택지’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