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여 경찰관, 37만 시민 치안책임
서울 31개 경찰서 중 112 접수 2위
해방 이후 81년간 현 경찰서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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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경찰이 창설된 1945년 문을 현 마포경찰서는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사진은 현 마포경찰서 전경 [마포서 제공] |
“전국에서 차가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다리 중 하나인데, 또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 멈춰 서는 곳이기도 해요.”
지난달 29일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소속 김명규 경위의 순찰차에 동승해 마포대교 북단부터 남단까지 순찰을 지켜봤다. 그는 근무시간 중에도 몇 차례씩 마포대교를 순찰한다. 그의 임무 중 하나는 마포대교를 지키는 일. 특히 이곳에서 투신하려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다.
지난 6개월 사이 김 경위는 자살 시도 신고를 받고 103번 출동했다. 이 가운데 75건이 마포대교에서 발생했다.
“‘한 바퀴 더 돌자, 한 바퀴 더 돌아보자’ 그렇게 몇바퀴를 더 돌아보곤 해요.”
그는 처음 자살 기도자와 마주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도 마포대교였고, 다리 난간에 서있는 사람을 다급히 불렀지만 그는 다리로 뛰어내렸다. 다행히 물에 빠진 투신자를 구조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도대체 왜 뛰어내렸을까’ 하는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고 한다.
김 경위는 2008년 경찰에 입직해 청와대를 경비하는 101경비단을 거친 뒤 2015년부터 10년 넘게 마포경찰서 관내 지구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마포구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주민이기도 하다.
김 경위는 죽음만 바라보고 마포대교를 찾은 사람 중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을 기다리는 이들이 숱하게 많았다고 말했다.
김 경위는 “묵묵히 곁을 지켜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찰관 생명을 구하는 경찰관이 되고 싶다”며 “지금도 가장 안도하는 순간은 ‘생명에 지장 없습니다. 구조했습니다’라는 무전을 들을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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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 낙성식 행사 모습. [서울기록원 제공] |
김 경위를 포함해 마포경찰서에는 920여 명의 경찰관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마포구에 거주하는 37만여명의 치안을 책임진다. 마포경찰서는 국립경찰이 창설된 1945년 10월 21일 현재의 위치(마포구 아현동 618-1번지)에 문을 열었다. 5개 지구대(용강·홍익·월드컵·공덕·서강)와 3개 파출소(상암·망원·연남)를 운영하고 있다.
개서 당시에 한강 포구가 있던 마포구는 80여년이 지난 현재 서부권의 교통·경제·교육·문화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공항철도와 지하철 2·5·6호선, 경의중앙선이 관통한다. 간선도로인 내부순환로와 강변북로와 주요 한강다리가 관내에 있다. 디지털미디어시티(DMC)를 중심으론 방송국과 IT 기업이 모여 있고 홍대 젊음의 거리에는 클럽 등 유흥시설이 밀집해 있다.
마포경찰서가 책임지는 영역에서 들어온 112 신고 건수는 지난해 12만7051건(일평균 305건)으로 서울 31개 경찰서 중 두 번째로 많다.
마포경찰서 1층 로비에는 두 개의 추모상이 있다. 44년 전 아현동 도시가스 누출 사고 현장에서 시민을 구하려다 순직한 고(故) 김유연 경사와 고(故) 황재하 상경을 기리는 부조상이다.
1982년 11월 5일 마포구 아현동 도시가스 정압장에 가스가 누출됐다. 당시 마포구 용강동에서 교통순찰 근무 중이던 김유연 경사(당시 31세)는 작업하던 인부들이 가스에 질식됐다는 상황을 공유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김 경사와 함께 현장에 나간 황재하 상경(당시 20세)은 인부 3명을 구조하기 위해 지하 정압장으로 들어갔다가 함께 질식해 순직했다.
마포경찰서는 2004년 김유연 경사의 추모 부조상을 제작해 1층 로비에 설치했다. 이후 직원들이 성금을 모아 2009년 11월 5일엔 황재하 상경의 추모상도 그 옆에 세웠다. 직업 경찰관이 아닌 순직한 전·의경의 추모상이 제작된 것은 창경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도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