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엄사 예술로 세계와 만나다

춤·시·국악·현대미술이 천년의 공간에서 하나로


[헤럴드경제=박대성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지리산 대화엄사(주지 우석 스님)가 천년의 화엄 사상을 춤과 시 낭송, 국악, 드로잉, 회화, 조각, 설치, 사진 등 동시대 예술로 풀어내며 전통 사찰과 현대예술의 새로운 만남을 선보인다.

지리산 대화엄사는 오는 31일까지 보제루와 성보박물관에서 ‘화엄전(華嚴展)–몸짓과 낭송’을 개최하고, 이어서 프랑스 파리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 온 한국 작가 8인이 참여하는 ‘경계의 화엄(華嚴)–파리에서 구례까지’를 통해 화엄의 세계관을 현대미술로 확장한다.

이번 전시들은 서로 다른 존재가 관계 속에서 서로를 비추고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는 화엄 사상의 법계연기와 인드라망을 공통된 정신적 바탕으로 한다.

춤과 시, 소리와 그림, 한국과 파리, 전통과 현대가 서로 다른 장르와 공간을 넘어 화엄사에서 하나의 예술적 관계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첫 번째 전시인 ‘화엄전–몸짓과 낭송’에는 파리와 한국, 도쿄를 오가며 활동하는 아방가르드 무용가 ‘신은주(애나벨 신)’와 시 낭송가이자 한지 퍼포먼서인 엄경숙 국제하나예술협회 대표가 참여한다.

신은주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춤과 드로잉, 미디어아트로 풀어낸다.

파리에서 작업한 사진 위에 드로잉을 더하고 자신의 몸짓을 회화적 이미지로 재구성해, 시간예술인 춤을 전시 공간으로 확장한다.

엄경숙은 화엄사 성보박물관에서 QR코드를 통해 시 낭송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듣는 전시’를 선보인다. 관람객은 ‘화엄의 범종’ 등 낭송 작품을 직접 들으며 시각과 청각이 결합된 새로운 전시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오는 광복절(8.15)에는 화엄사 보제루에서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주제로 한 특별공연이 펼쳐진다.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시인이었던 한용운의 정신을 기리는 이날 공연에서는 엄경숙의 시 낭송과 한지 퍼포먼스, 신은주의 아방가르드 춤, 대금·가야금·양금·징·북·구음 등 국악 연주가 어우러진다.

엄경숙은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낭송을 시작으로, 2016년 UN 관련 국제행사에서 선보였던 한지 퍼포먼스를 ‘님의 침묵’ 낭송과 함께 재구성한다.

신은주는 불교의 수행과 마음 챙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지옥 게임’과, ‘님의 침묵’ 100주년 관련 행사 등에 초청돼 공연했던 ‘아방가르드 님의 침묵’을 대금·가야금 연주와 함께 선보인다.

공연의 마지막에는 두 작가가 ‘상주 아리랑’에 맞춰 태극기를 모티브로 한 광복절 기념 퍼포먼스를 펼친다.

신은주는 “화엄 사상의 법계연기는 모든 존재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연결돼 있음을 뜻한다”며 “몸짓과 목소리, 이미지와 공간이 서로 관계를 맺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전시를 구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어 화엄사의 현대예술 프로젝트는 ‘경계의 화엄–파리에서 구례까지’로 확장된다.

이 전시는 오랜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창작활동을 이어온 한국 작가들이 천년고찰 지리산 대화엄사로 돌아와 자신들의 예술적 여정을 펼쳐 보이는 자리다. 부제는 ‘경계 너머의 유목민적 사유’, 전시 콘셉트는 ‘아틀리에, 구도의 길 : 유목민의 사유 지도’이다.

전시는 파리의 자유로운 예술 형식과 화엄사의 장엄한 고요가 만나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오랜 시간 파리에서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들의 ‘유목의 시간’이 화엄사의 ‘천년의 시간’과 만나면서, 단순한 작품 발표를 넘어 ‘예술적 귀향과 정화의 여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 전시에는 홍현주, 문창돈, 최현주, 훈 모로, 박우정, 홍일화, 박인혁, 오세견 등 프랑스에서 활동해 온 한국 작가 8인이 참여한다.

이들은 회화와 조각, 설치, 영상,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1991년 창단된 파리의 대표적인 한인 예술인 단체인 소나무작가협회회원들이다.

작가들은 색채와 질서, 우주와 DNA, 기억과 공간, 빛과 시간, 인간 존재와 AI, 자연과 생태, 신체와 움직임 등 저마다 다른 화두를 자신만의 예술 언어로 풀어낸다.

화엄사는 이번 두 전시를 통해 천년의 불교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수행도량이라는 본래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한국의 전통문화와 세계의 동시대 예술이 만나고 소통하는 열린 문화예술 공간으로 역할을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화엄사 전시 관계자는 “몸짓과 낭송,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그리고 파리 작가들의 현대미술은 서로 다른 예술처럼 보이지만 모두 화엄의 ‘연결’이라는 하나의 정신으로 이어진다”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수행과 예술이 화엄사에서 서로를 비추며 새로운 문화예술의 인드라망을 만들어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