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도 ‘원청 사용자’ 인정…노란봉투법 시행 앞두고 첫 중노위 판단

부평구 폐기물 위탁업체 노동자에 교섭 의무 인정
정부 ‘공공부문 사용자성 제한’ 해석지침과 배치
지자체 민간위탁 노사관계로 파장 확산 가능성


중앙노동위원회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에 위탁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에 대해 해당 지자체도 노동조합법상 ‘원청 사용자’가 될 수 있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첫 판단이 나왔다.

정부가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공공부문의 사용자성을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지침을 마련한 가운데 이와 배치되는 판단이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특히 지자체가 민간위탁 업무의 작업방식 등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직접 고용관계가 없더라도 교섭 의무를 부담할 수 있다는 취지다. 생활폐기물 수집·운반뿐 아니라 시설관리·돌봄 등 지자체 민간위탁 사업 전반으로 유사한 교섭 요구가 확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12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중노위는 공공연대노조가 인천 부평구를 상대로 신청한 ‘교섭요구 사실 공고에 대한 재심’ 사건에서 인천지방노동위원회의 초심 결정을 취소하고 노조 측의 손을 들어줬다.

부평구가 민간에 위탁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원청인 부평구 사이에도 교섭 의무가 있다는 판단이다.

중노위는 노조가 요구한 여러 교섭 의제 가운데 ‘작업방식’과 관련해 부평구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공공연대노조는 작업방식에 관한 교섭을 부평구에 직접 요구할 법적 근거를 확보하게 됐다. 부평구가 정당한 이유 없이 교섭을 거부할 경우 부당노동행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번 결정은 정부가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제시한 해석 방향과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정부는 공공부문 근로자의 근로조건은 법률과 예산으로 정해지고 정부·공공기관은 이를 집행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들어 원칙적으로 정부나 공공기관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제시해왔다. 지자체와 공공기관까지 원청 사용자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경우 교섭 주체와 범위를 둘러싼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중노위는 그동안 충북 보은군과 경기 화성시, 울산시 등 지자체를 상대로 제기된 사용자성 사건에서 이를 기각해왔다. 일부 사건에서는 심판 과정에서 고용노동부의 해석 지침이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노동계는 정부 지침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반발해왔다.

이번 부평구 사건은 기존 흐름과 달리 지자체가 위탁업체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져 사용자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노위 판정문은 결정일로부터 약 30일 뒤 공개될 예정이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실관계를 근거로 부평구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유사한 판단은 지방노동위원회 단계에서도 나온 바 있다.

강원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6월 춘천시가 민간에 위탁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노동자들이 춘천시를 상대로 제기한 교섭단위 분리 신청 사건에서 춘천시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당시 지노위는 시의 법령·조례상 주간 근무가 원칙임에도 하청업체에 대한 과업 이행 요청서에 야간 근무를 명시한 점 등을 근거로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부평구 사건에서도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이라는 동일한 업무가 쟁점이 된 만큼 지자체가 작업방식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가 핵심 판단 요소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판정이 확정되면 지자체 민간위탁 사업장의 노사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생활폐기물 수집·운반뿐 아니라 청소·시설관리·돌봄 등 지자체가 민간업체에 맡긴 사업에서 원청인 지자체를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이번 판정을 공공부문 전반의 사용자성을 일률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공공부문이라고 해도 예산 등에서 재량권을 갖고 외부 기관 등을 통해 정책을 집행하는 경우에는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해석 지침의 예외 조항이 있다”며 “이번 중노위 판정으로 공공부문의 사용자성이 폭넓게 인정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