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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4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왼쪽)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캔버라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악수를 하고 있다. [EPA] |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국가 정상이 우호의 상징으로 준 선물을 ‘쓰레기(crap)’라 하고, 여성 정상을 대상으로 가슴을 연상시키는 손동작과 농담을 하고, 자국 대표 팝스타와 잠자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지난달 초 한 팟캐스트 방송 출연해 위와 같은 폭탄 세 개를 터트렸다. 아직도 논란이 거센 당시 방송 상황을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앨버니지 총리는 지난달 3일(현지시간) ‘부시 딥(Bush Deep)’이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했다. ‘부시 딥’은 호주의 코미디언인 니키 오즈번이 ‘부시’라는 부캐릭터로 분해 진행하는 쇼로, 이 자리에서 그는 외국 정상으로부터 받은 선물 중 가장 ‘쓰레기(crap)’ 같은 선물을 묻는 말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로부터 받은 멜론을 들었다.
앨버니지 총리는 “처음엔 꽤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결국 아주 좋은 선물이었다”며 멜론을 언급했고, 진행자인 오즈번이 “그가 어떻게 그걸 세관에서 통과시킨거냐?”라고 묻자 “(남자가 아닌) 그녀다. 로열 멜론이었다”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오즈번은 “그녀가 밀수했다고? 그럼 몸에 숨겨서 갖고 왔냐?“라고 묻자 ”글쎄요. 아무튼 두 개 갖고 왔다“라고 답했다.
이에 오즈번이 짓궂은 표정으로 “두 개 갖고 왔죠?”라고 묻자 앨버니지 총리가 “두 개 갖고 왔죠. 뭐, 그렇잖아요”라며 웃으며 답했고, 오즈번은 “그녀가 들어왔을 때 파멜라 앤더슨 같았겠다”고 첨언했다. 이에 총리는 양손을 가슴 높이로 올려 멜론 두 개를 쥐는 듯한 손동작을 하며 “두 개 가져왔고, 정말 아름다웠다(She brought two, and they‘re beautiful)”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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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지난달 3일 공개된 팟 캐스트 ‘부시 딥’에 출연해 진행자인 니키 오즈번과 대화하고 있다. [니키 오즈번 유튜브] |
이는 지난 5월 다카이치 총리가 호주·뉴질랜드를 순방할 때 건넸던 시즈오카산(産) 크라운 멜론을 일컫는 것이었다. 당시 다카이치 총리는 호주가 일본에 멜론 시장을 개방한 것을 기념해 이 같은 선물을 했다. 크라운 멜론은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급 과일로, 일본의 백화점에서는 보통 1개당 1만엔(약 9만원), 해외에서는 수입 통관 비용까지 포함해 개당 130~200달러(약 18만~28만원) 상당에 팔린다.
한 나무에서 단 하나의 멜론만 키워 모든 영양분을 한 과에 집중시키는 철저한 품질관리 방식(1목 1과)을 고집하기 때문에,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을 담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진행자와 굳이 두 개를 강조하거나 풍만한 몸매로 유명한 배우 파멜라 앤더슨을 언급하고, 손동작까지 곁들인 대화 등은 성적인 은어를 의도한 행동이라 비친다는 점에서 비판이 일었다. 진행자가 자극적인 대화를 부추기려는 조치였다 해도, 외국 정상의 선물을 시시하다(crap)고 하거나 ‘밀수’ 부터 ‘몸에 숨겨서 가져왔다’는 등의 발언을 제지하지 않은 것도 외교상 결례로 비칠 수 있다.
이 자리에서 앨버니지 총리는 오즈번과 ‘Shag, Marry, Date’(누구와 잠자리를 하고, 결혼하고, 데이트할 것인지 고르는 것) 게임도 했다. 오즈번이 여러 연예인을 호명하다 호주의 전설적인 팝스타 카일리 미노그를 언급하자 앨버니지 총리는 “위의 세 가지를 전부 다 하겠다(all of the above)”고 말했다.
팟 캐스트가 공개되자 총리가 외교적 결례를 범한 데다, 준 동맹국의 여성 정상을 모욕했고, 유명 연예인을 상대로도 부적절한 농담을 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논란이 되자 총리실은 지난달 6일 공식 사과 성명을 냈다. 그러나 사과 대상은 카일리 미노그 한 명뿐이었고 성명 내용도 “해당 발언에 대해 명백히(unequivocally) 사과한다”는 짧은 문장 하나에 그쳤다.
다카이치 총리에 대해서는 끝까지 공식 사과 없이, 야당과 세간의 비판에 대해 오해라며 ‘버티기’를 하고 있다. 앨버니지 총리는 11일(현지시간)에도 “결례를 범할 의도가 없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호주의 친구이자, 나의 친구”라며 사과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오해일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영어권 등 서구권 문화에서는 오래전부터 멜론을 여성의 가슴에 비유하는 은어나 성적 농담이 흔했다. 영미권의 각종 슬랭(Slang·비속어) 사전에 여성의 풍만한 가슴을 멜론으로 지칭하는 말이 정식으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다.
앨버니지 총리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부적절한 성적 농담을 했다는 것뿐 아니라 이후 대처가 ‘내로남불’이라는 점에서도 비판받고 있다. 지난 6월 호주 빅토리아주의 총리였던 재신타 앨런이 인신공격을 당할 때는 정치적 지형과 무관하게 성차별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규탄했던 그였다.
당시 앨런 주총리 반대파는 앨런 주총리가 검은 마녀 모자를 쓴 합성 사진과 함께 “마녀를 버려라(Ditch the Witch)”는 문구를 넣은 옥외 광고를 트럭에 싣고 여론전을 벌였다. 그러나 “마녀를 버려라”는 문구는 2011년 호주 최초의 여성 총리인 줄리아 길라드를 인신공격할 때 썼던 문구여서, 여성 혐오라는 비판을 받았다.
앨버니지 총리도 이때 “정치적으로 누구를 지지하든 상관없이 여성을 비하하고, 대상화하고, 깎아내리거나 모욕하는 것은 완전히 용납할 수 없는 일(completely unacceptable)”이라며 “어린 소녀들이 주총리를 마녀로 묘사한 것을 보게 될 텐데, 이런 식의 개인적인 인신공격은 당장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작 자국의 여성 정치인에 대한 성차별적 발언에는 “용납 못한다”고 들고 일어서더니, 외국 여성 정상에게는 외교적 결례 수준의 불미스러운 발언까지 해놓고 사과도 안 하고 버티는 것이다. 호주 언론과 대중들도 국내 정치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외국 여성 정상한테는 ‘멜론 드립’이나 치는 게 호주 총리의 수준이냐며 앨버니지 총리를 조롱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