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바탕에 거꾸로 매달린 그녀…게오르그 바젤리츠 “예술이 곁에서 살아 움직인다”

13일 세화미술관서 타계 후 첫 회고전
국내 미술관 개인전도 20여 년 만에 처음
회화·조각 등 46점…39점 국내 최초 공개
생전 인터뷰 “韓 관람객에게 전달 잘 되길”


세화미술관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시 전경. [세화미술관 제공]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나의 과거는 미술사이며 내가 살아온 시간은 한 예술가의 시간이다. 이제 나는 매우 나이가 들었고 넓은 조망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예전에 내가 사용하던 전략과는 더 이상 관계가 없다. 이제는 예술이 내 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는다.”(게오르그 바젤리츠, 2025)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1938~2026)의 타계 후 첫 미술관 회고전이 오는 13일 세화미술관에서 막을 올린다.

국내 미술관에서 20여 년 만에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1960년대 초기작부터 말년까지 약 60년에 걸친 작가의 예술 여정을 조망한다. 회화와 드로잉, 조각 등 46점을 선보이며, 그중 39점은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안미희 세화미술관 관장은 12일 세화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바젤리츠는 작가 생전에 작업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는데 타계하면서 유작전이자 회고전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전시 준비를 시작한 것은 1년이 넘었다. 작가 생전에 어떤 작품을 출품할지 의견을 나눈 상태”라면서 “미술관 소장품이 10점 있고, 나머지는 바젤리츠 스튜디오와 해외 갤러리, 컬렉터들에게 모아 왔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동원된 작품들의 보험가액만 총 1500억원에 이를 정도다.

바젤리츠가 생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독일, 그리고 독일인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한 것처럼 전쟁과 분단을 겪은 독일의 역사와 기억을 캔버스에 새겼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파편화된 신체와 뒤집힌 형상으로 표현했다.

게오르그 바젤리츠 ‘나뉜 소 두 마리 I’. [개인 소장. 세화미술관 제공]


전시장 내부에 들어서면 ‘나뉜 소 두 마리 I’(1966)가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번 전시 중 가장 초기 작품으로, 절편 회화의 대표작이다. 작가는 캔버스를 분할하고 목가적 풍경을 절단함으로써 전쟁의 폭력을 은유한다.

‘프랑스에서의 엘케 II’(2019)는 바젤리츠 특유의 거꾸로 된 인체를 그린 작품이다.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다른 캔버스를 겹쳐 찍어내는 전사 기법을 활용해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형태로 아내 엘케를 표현했다. 왜곡된 신체와 희미한 형상은 인간 존재의 유한함과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반영한다.

바젤리츠는 평생 회화적 실험을 멈추지 않으며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동독의 사회주의 미술과 서독의 추상미술주의의 양극단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제3의 화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했다.

2000년대의 ‘리믹스’ 연작은 과거 ‘영웅’ 연작에서 나타난 고립되고 상처 입은 남성들을 재창조해 좀 더 가볍고 컬러감 있게 생생한 모습으로 풀어낸 시리즈다. 음악의 리믹스처럼 작가도 다른 예술가를 비롯한 여러 외부 요인을 참조해 자기 발명을 꾀했다.

‘도약(리믹스)’은 1965년작 ‘슈페쿨라티우스’를 45년 만에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가운데, 신발 모티프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에켈리’(2004)는 에드바르 뭉크가 말년을 보낸 작업실에서 촬영된 사진을 보고 생략된 무릎 아래 이미지를 그린 작품이다. 발은 지탱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동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다리 아래 나무가 거꾸로 놓인 숲의 풍경에는 독일의 문화적 기억이 깃들어 있다.

독수리는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한 모티프다. ‘나중에 구두가 발견되었다’(2023)는 독일의 국가적 상징인 독수리를 권위적인 모습이 아니라 땅으로 추락하는 모습으로 표현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낸다.

‘골드 페인팅’ 연작은 황금빛 배경에 가느다란 선으로 동양화처럼 인물을 그리고 있다. 생전 마지막 작품인 ‘그보다 더’(2026)는 인물을 연약하고 부서질 것 같은 존재로 표현, 노년기를 맞은 작가의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다.

게오르그 바젤리츠 ‘그보다 더’. [타데우스 로팍 소장. 세화미술관 제공]


신체적 한계 속에서도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며 거대한 캔버스를 바닥에 깔아 놓고 이어간 작업에서 화면에 남은 물감과 손수레 바퀴, 보행 보조기의 자국은 실존의 궤적으로 남았다.

선우지은 세화미술관 전시기획팀장은 “바젤리츠는 초기에 구축적 화면들을 그리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풀어지는 형태를 보였다. 한 가지 주제를 다양하게 보여주며 실험적 태도를 견지했다”고 설명했다.

미술관 야외에선 높이 약 3.6m의 대형 조각 ‘1965’(2024)를 만날 수 있다. 조각이 회화보다 더 원초적이라고 판단한 작가의 조각 기법이 응축된 작품이다.

전시장에선 바젤리츠 타계 3주 전 미술관 측이 독일 현지에서 그를 만나 진행한 생전 마지막 인터뷰 영상도 공개된다.

영상에서 작가는 “내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의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의 이야기로 그러니까 거꾸로 뒤집힌 이미지 같은 것으로 세상에 내 뜻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제 작업에 놀라거나 흥미를 느낄지 무척 궁금하네요. 제 작업이 아시아 문화와는 꽤 거리가 있을 테니까요. 어찌 보면 멀면 멀수록 더 좋은 법이죠. 여러 난관이 있겠지만, 제 뜻이 온전히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는 바젤리츠의 인사처럼 새로우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그의 전시는 12월 27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