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번 대사 반복하며 느낀 연극 매력
청년 연극인 향한 상생의 가교 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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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서로 무대에 도전한 차인표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태어나 보니 ‘차인표’라는 감옥, 아니 틀과 테두리에 갇혀 살았더라고요. 굳이 안 해도 되는 선택은 피해 가며 안전하게만 살아왔다는 걸 알았어요.”
데뷔 34년차, 어쩌면 늦을 수도 있는 나이에 그는 무대에 섰다. 1950년대 미국 명문 사립학교가 바로 그 무대. ‘참교육’(넷플릭스 드라마) 이전 1990년대 학교 교육을 낭만으로 물들였던 동명의 영화를 무대로 옮긴 ‘죽은 시인의 사회’다.
그는 첫 연극 도전을 두고 “안주하지 않고 불편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삶의 본질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는 1989년 개봉, 미국 아카데미 각본상,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휩쓴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톰 슐만(Tom Schulman)이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직조한 학교의 이야기는 성적과 입시 위주 학업에 찌든 아이들에게 주체적 삶과 문학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며 모두의 삶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묻는다.
차인표에게도 원작 영화는 깊은 울림이었다. 그는 “21살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면서 삶에 대한 키팅 선생의 가르침이 가슴에 크게 남았다“며 ”거의 60살이 된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살아온 과정이 맞았다’는 확신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영화에선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키팅 선생을 무대에서 펼쳐내는 차인표는 원작과 달리 ‘늙은 키팅’이다. 그는 “난 영화 속 키팅이 살지 않은 30년을 더 살아낸 사람”이라며 “살아보니 키팅 선생의 말이 맞았다. ‘얘들아, 정답으로 제시된 틀 외에도 수많은 다른 선택지가 존재한단다’라는 그의 말을, 진심을 담아할 수 있게 됐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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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서로 무대에 도전한 차인표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
사실 그간 차인표에게 연극 제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뜻 응하지 못했던 것은 “연습 기간은 길고 대우는 적다 보니 대중 연예인으로 살며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게다가 지난 수년간은 작가로 소설을 쓰고 있던 터라 “한 가지에 안주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가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21살 때 본 원작 영화의 질문이 60세를 바라보는 지금 ‘인생을 관통하는 옳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차인표에게도 영화 속 스토리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키팅 선생에게 감화한 학생들은 비밀 문학 동아리 ‘죽은 시인의 사회’를 재결성해 시를 읊으며 자신의 꿈을 찾아 나간다. 모범생이었던 한 학생은 배우로의 꿈을 키우나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하다 스스로 목숨을 거둔다.
차인표는 고3 시절 학력고사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친구를 여전히 기억한다. 그는 “몇 점 맞으면 인서울 대학에 갈 수 있냐고 물어보던 친구였는데 버티지 못했다”며 “40년을 더 살아보니 시험을 망치고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도 삶은 계속되고, 그 안에서 얼마든지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잡아라)은 지적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선언”이라고 했다.
지금의 학교는 정글이다. 교권은 추락하고, 드라마와 영화는 자발적 성적 경쟁에 매달리는 학생들, 선생을 위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다룬다. 차인표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감성팔이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말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닐까?’라며 연출자와 고민했다”며 “연극은 지금의 틀은 다 부숴야 한다는 것이 아닌, 인간 본연의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키팅의 말이 다 맞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선택지도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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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서로 무대에 도전한 차인표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
첫 연극무대인 만큼 그의 무대에 서는 마음은 남달랐다. 후배들과의 호흡을 떠올릴 때마다 애정이 묻어났다. 그는 “서울 외곽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2시간씩 달려와 먼저 몸을 푸는 젊은 배우들을 보며 내 타성을 반성했다”며 “연출님도 내게 연기 지적을 잘 안 하길래 먼저 후배들에게 찾아가 발성과 호흡을 물었다. 나를 진짜 연극배우로 데뷔시켜 준 것은 그 지난한 시간을 함께 견딘 젊은 배우들”이라고 강조했다.
30년 넘게 인기 스타이자 연예인으로, 작가로도 사랑받고 있는 그는 연극 무대에 서며 젊은 연극인들에 대한 부채도 털어놨다. 차인표는 “운이 좋게 가진 것에 비해 많은 사랑을 받아 한평생 가족을 일구고 잘 살았다.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대학로에 와보니 많은 젊은이가 오늘내일 없이 열정을 불태우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며 “똑같이 연습하는데 나만 꽃다발을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아 미안하고 민망하다. 영화·드라마 제작자들을 초청해 우리 후배들이 매체로 진출할 다리를 놓아주려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무대의 기쁨과 매력은 매일 같이 느끼고 있다. 그는 “연극이 이렇게 매력이 있는 줄 알았다면, 배우가 되려면 연극을 해야 했다는 것을 일찍 인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도 한다”고 말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찍을 때는 대사를 수백 번 반복하지 못하지만, 연극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차인표는 “배우로서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며 “대중 연예인들이 지금이라도 연극을 하면서 자기 성장을 같이 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30여년 차인표는 자신을 따라다닌 데뷔작 ‘사랑을 그대 품 안에’의 꼬리표도 뗄 수 있게 됐다고도 했.
“이번 연극을 제 인생의 대표작으로 바꾸고 싶다는 바람을 말했을 때 입방정을 떤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84세인 어머니가 생애 처음 제 연극을 보시고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인표야, 네가 이번에 대표작을 죽은 시인의 사회로 바꾸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요. 어머니의 그 평가 하나로 제가 꿈꾼 모든 것을 이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