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짐승돌’ 2PM과 2세대 그룹
외로웠던 3세대 짐승돌 몬스타엑스
‘뉴 짐승돌’ 에이티즈·엔하이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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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조 짐승돌 2PM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2008년 K-팝 업계에 이상한 신조어가 하나 등장했다. 짐승과 아이돌을 결합한 ‘짐승돌’이라는 키워드다.
대형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짐승돌’이라는 말처럼 보이그룹의 비주얼 패러다임을 뒤흔든 사건은 드물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K-팝 보이그룹 시장은 새하얀 피부의 미소년, 순정 만화 주인공의 이미지와 신비주의를 기본값으로 내세웠다. 그런 시장에 ‘날것’의 야성미와 폭발적 신체 에너지를 앞세운 2세대 보이그룹이 등장하며 판도는 뒤집혔다.
이들 그룹은 매끈하게 가꿔진 인형 같은 이미지는 진작에 버렸다. 땀 냄새 나는 거친 남성성과 압도적인 피지컬을 무대에 선보이며 가요계에 ‘짐승돌’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들고 온 것이다. 장장 18년에 걸친 K-팝 ‘짐승돌 계보’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와 진화를 거듭해 왔다.
‘짐승돌’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에 2PM이 존재한다. ‘10점 만점에 10점’, ‘어게인 & 어게인(Again & Again)’, ‘하트비트(Heartbeat)’ 등의 히트곡을 연이어 내면서 그야말로 ‘야생의 남성성’을 음악방송으로 옮겨왔다.
특히 ‘하트비트’는 짐승돌 2PM의 문법을 완성한 곡이었다. 가슴을 두드리는 동작과 택연의 상의를 찢어발기는 ‘찢택연’ 퍼포먼스는 한국 아이돌 역사상 가장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남긴 장면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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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트 [큐브엔터테인먼트 제공] |
2PM의 상징은 고난도 덤블링과 아크로바틱을 결합한 역동적 안무, 선 굵은 근육질 몸매, 구애의 메시지를 직진으로 던지는 강한 남성적 카리스마였다. 그들의 남성성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초적 에너지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등장한 2세대 그룹 비스트(BEAST)는 서정성을 결합한 ‘감성 짐승돌’로 차별화를 뒀다.
‘쇼크(SHOCK)’, ‘숨’, ‘픽션(Fiction)’ 등 비스트의 대표곡은 강렬한 전자음과 파워풀한 군무 속에 애절한 보컬과 가슴을 파고드는 멜로디를 담았다. 짙은 눈화장과 블랙 톤의 가죽 의상, 강렬한 레이저 연출 속에서 펼쳐지는 비스트의 퍼포먼스는 이별과 상실에 상처 입은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독보적 영역을 구축했다.
2009년 데뷔한 엠블랙(MBLAQ)은 또 다른 차별성이 있었다. 가수 비의 프로듀싱으로 태어난 엠블랙은 도시적이고 시크한 야성미를 앞세웠다. 의상과 액세서리 등의 스타일링을 통해 ‘짐승돌’을 시각적 캐릭터로 만들었다.
‘Y’, ‘전쟁이야’ 등의 곡에서 선보인 절제되면서도 날카로운 안무, 격투기를 연상시키는 동작, 닌자나 악당을 모티브로 한 어두운 콘셉트는 엠블랙만의 전매특허였다. 엠블랙이 보여준 짐승돌에 대한 해석은 K-팝 남성 아이돌이 하이패션과 결합하는 초창기 모습을 보여줬다.
2010년대 3세대 K-팝 그룹 시대로 접어들면서 짐승돌이 점차 사라진다. 대신 ‘청량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실제로 당시 K-팝 업계는 슬림한 미소년, 칼군무, 청량한 남사친 콘셉트가 주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나마 2015년 데뷔한 몬스타엑스 정도가 외롭게 ‘짐승돌의 명맥’을 이어간 정도다.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보이그룹은 마른 미소년이어야 한다는 공식이 생긴 것도 3세대 이후였고, 4~5세대에선 ‘데뷔는 무조건 청량’이라는 공식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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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스타엑스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 |
대다수 그룹이 ‘야성미’를 버리고 유순한 이미지를 선택할 때, 몬스타엑스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갔다. 유일무이하게 ‘짐승돌’의 헤리티지를 고수하고 발전시킨 독보적 존재였다.
‘히어로(HERO)’, ‘드라마라마(DRAMARAMA)’, ‘러브 킬라(Love Killa)’ 등을 통해 몬스타엑스의 시그니처는 헬스 트레이닝으로 다져진 상체 피지컬, 이를 극대화하는 완벽한 수트핏이었다.
2세대 짐승돌이 노출과 야생성에 보다 몰두했다면, 몬스타엑스는 30대 여성층까지 팬덤으로 흡수하는, 이른바 ‘어른 섹시’를 완성했다. 힙합 기반의 강렬한 몬스터 사운드와 단단한 피지컬이 어우러진 몬스타엑스는 ‘짐승돌의 유산’이 사장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한 ‘결정적 가교’였다.
몬스타엑스는 올해로 데뷔 11주년을 맞아 그간 이어온 콘셉트를 진화해 보여주고 있다. 유닛으로 활동한 셔누와 형원은 미니 2집 ‘러브 미(LOVE ME)’를 지난 5월 공개하며 “절제된 노출과 섹시를 표현하려 노력했다”는 방향성을 귀띔하기도 했다.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짐승돌’의 새 시대를 연 주인공은 에이티즈(ATEEZ)다. 2018년 데뷔한 에이티즈는 짐승돌에 4~5세대 그룹의 필수요건인 ‘세계관’을 입혀 익숙한 키워드를 다른 차원으로 확장했다.
에이티즈에게 피지컬은 단지 몸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트레저(TREASURE)’ 시리즈에선 내 안의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려가기 위해 해적과 탐험가 서사를 만들었고, ‘피버(FEVER)’에선 청춘의 열병을, ‘더 월드(THE WORLD)’에선 통제된 사회에 맞서는 반란을 다루며 대형 세계관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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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티즈 [KQ엔터테인먼트 제공] |
멤버 산(최산)을 필두로 한 에이티즈의 ‘짐승돌’ 미학은 기획사의 스토리텔링이 아닌 자연발생적 서사로 만들어졌다.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웹툰의 ‘북부대공’ 서사와 결합하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냈다.
과도한 노출 대신 절제된 머슬핏 민소매, 가슴을 튕기는 정교한 체스트 팝 안무, 하이패션 브랜딩, 숏폼 알고리즘을 타고 퍼진 밈(Meme) 등이 결합하면서 세대와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인기가 만들어졌다.
조금은 다른 결의 ‘짐승돌’도 있다. 그룹 엔하이픈(ENHYPEN)은 뱀파이어 다크 판타지와 치명적 피지컬이 결합한 매혹적인 로맨스 서사를 지향한다.
엔하이픈은 ‘바이트 미(Bite Me)’, ‘스위트 베놈(Sweet Venom)’ 등의 무대를 통해 선이 고운 슬림함 속에 감춰진 날카로운 아우라와 절제된 피지컬 라인을 강조해 왔다. 미소년의 유려함과 야생의 치명성을 오가는 엔하이픈은 4세대 짐승돌의 가장 세련되고 다크한 변주를 보여준다. 최근엔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미’를 전면에 내세운 콘셉트로 컴백을 예고, 짐승돌 계보의 새로운 스펙트럼을 기대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