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발언서는 트럼프 평화안 거부했지만
美 요구 따라 공습 중단
10월 총선…강경파·트럼프 모두 만족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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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미국 플로리다의 마라라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하는 모습. 이스라엘은 최근 가자지구와 이란 전쟁 등의 국면에서 미국과 균열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 |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자지구 15개항 평화안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면으로는 미국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며 ‘정치적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는 오는 10월 총선을 앞두고 하마스에 대한 강경 노선을 원하는 우익 지지층을 달래야 하는 동시에 최대 동맹인 트럼프 대통령과도 정면충돌을 피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에 대외적으로는 강경파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실제로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처지라는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BBC는 10일(현지시간) 네타냐후 총리가 공개 발언과 실제 행동에서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며,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안 거부가 최종적인 결별을 의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 각료회의에서 “이스라엘은 15개항 문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하마스가 완전히 무장해제될 때까지 이스라엘군(IDF)은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하마스의 무장해제에 대해 “중화기와 경화기를 포함한 모든 무기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형식적인 무장해제가 아닌 ‘완전한 무장해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미국 측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NYT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3일 니콜라이 믈라데노프 가자지구 담당 고위 대표를 비롯한 평화위원회 관계자들과 회동한 뒤 가자지구 공습을 중단하도록 군에 지시하는 데 동의했다. 민감한 사안을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 3명이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가자지구 민방위대 관계자도 마지막 이스라엘 공습이 지난 3일 저녁이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하마스와의 무장해제 합의를 발표한 이후에도 공습을 이어가 최소 20명이 숨졌지만, 미국의 압박 이후 공격이 사실상 멈춘 셈이다.
BBC도 백악관이 네타냐후 총리의 공개 거부 발언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스라엘 언론인 바라크 라비드는 미국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우리는 비비(네타냐후의 별명)의 정치적 필요성을 이해한다”며 “그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계속 이행하는 한, 특히 가자지구 공격을 자제하는 데 있어서는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는 정황도 나온다.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 뉴스에 따르면 이달 말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국제안정화군(ISF)의 첫 번째 기지 건설이 시작될 예정이다. 국제안정화군은 다국적 병력과 새 팔레스타인 경찰이 가자지구 치안을 담당하도록 하는 트럼프 평화안의 핵심 장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발표한 계획은 하마스가 중화기를 폐기·보관하고, 이 과정이 검증되는 데 맞춰 이스라엘군이 현재 장악한 가자지구 60% 이상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이 같은 장면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치적 사정이 있다.
오는 10월 27일 치러지는 이스라엘의 총선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시행되는 첫 전국 단위 선거다. 당시 공격으로 약 1200명이 숨지고 250여명이 인질로 끌려갔으며, 상당수 이스라엘 국민은 안보 실패의 책임을 네타냐후 총리에게 돌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 기간 내내 약속했던 하마스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마스는 3년 가까운 전쟁에도 가자지구 일부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이스라엘 내 강경파를 중심으로 네타냐후에 대해 불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도 네타냐후 총리에게 불리한 정치 지형을 보여준다. 다수 조사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연립정부 지지 세력은 전체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120석 가운데 51~53석을 확보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구성을 위해 통상 필요한 61석에 미치지 못한다.
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이 창당한 신생 정당이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보다 지지율이 높은 것으로 나오는 여론조사도 있다.
랜드연구소의 이스라엘 정책 책임자인 시라 에프론은 “네타냐후는 정치적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며 “한쪽에서는 하마스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약속한 지지층과 연립정부를 만족시켜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안은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 내내 제시했던 ‘승리’의 조건에는 미치지 못한다. 합의안에는 하마스 고위 군사 지휘관을 추방한다는 내용이 없고, 하마스가 운영해온 행정조직의 일부 구성원이 향후 공공부문에서 계속 일할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는 모습이 공개될 경우 네타냐후 총리가 우익 지지층에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이스라엘정책포럼의 님로드 노빅 연구원은 “이는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 내내 선전해온 종류의 승리가 아니다”라며 “내부적으로는 강경한 모습을 과시하면서 실제로는 미국 행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위한 작은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