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원유 수급 ‘탈중동’ 성과 냈다는데…기업들 ‘회의론’ 왜? [비즈360]

상반기 중동산 원유 수입 줄고 美·아프리카산 늘어
다만 4월 이후로는 원유 수급 다변화 동력 약해져
“탈중동 성과는 정부 성과…민간은 투자 유인 없어”
“천문학적 투자 필요한 정제 설비 개편 지원해야”

[챗GPT를 이용해 제작한 이미지]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올해 상반기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작년 대비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수치 변화가 정부가 수급처 다변화에 직접 나선 데 이어 정유사들이 전쟁 국면에 긴급 대응한 데 따른 결과인 만큼 민간 기업 주도의 원유 수급처 다변화를 기대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상반기 중동산 원유 수입, 62%…6.4%포인트 감소



11일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이 수입한 원유 전체 물량(4억6711만배럴) 중 중동산 비중은 62.3%(2억9117만배럴)을 기록했다. 작년 상반기(68.7%) 대비 6.4%포인트(p) 떨어진 수치다. 또 지난해 연간 평균 중동산 수입 비중보다도 4.7%p 줄었다.

반면 미국 및 아프리카산 원유 비중이 크게 늘었다. 작년 상반기와 비교해 올해 상반기 도입 물량이 가장 많이 늘어난 나라는 미국이다. 올해 상반기에 한국은 작년 대비 1190만배럴 많은 9587만배럴 규모로 미국산 원유를 수입해, 비중이 작년 16.5%에서 20.5%로 늘었다.

이밖에 알제리산 원유(1139만배럴), 콩고산 원유(555만배럴) 등 순으로 전년 상반기 대비 도입 물량이 늘었지만, 미국 외에는 모두 수입 비중이 3% 미만이다. 앞서 정부가 캐나다 정부와 맺은 에너지 공급망 협력의 일환으로 공식적으로 도입을 늘리고 있는 캐나다산 원유 비중 역시 1.5%에 그쳤다.

상반기 원유 ‘탈중동’은 정부 주도…5월 이후 다시 반등


미국산 원유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은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한 지난 2월 이후 정부가 원유 공급망 ‘탈중동’을 선언하고 물량 도입 협상 등에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업계에선 이런 현상이 장기적으로는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위기 상황 속에서 정부가 수급처 다변화에 직접 나서거나 정유사들이 전쟁 국면에 긴급 대응한 결과일 뿐, 하반기 이후 이런 추세가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 정유사들 설비가 이미 중동산에 최적화돼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황이 많이 함유된 중동산 ‘중질유’를 정제하려면 비교적 맑은 ‘경질유’와 다른 고도화 설비를 필요로 한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대규모로 원유를 생산하는 중동 국가들과 장기 계약을 맺고, 정제 설비도 천문학적인 투자로 중동산에 맞춘 상태라 다른 지역 원유로 대체하면 생산 효율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원유 수급 다변화는 지난 4월 이후 급격히 추진력을 잃은 상태다.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1월 70.6%에서 2월 69%, 3월 65%, 4월 50%로 계속해서 낮아졌다. 그러나 지난 5월 54%로 반등한 이후 6월에도 60% 가까이 올라, 오히려 다시 의존이 높아지는 추세다.

이는 중동 전쟁 직후 정부가 전략경제협력특사단을 꾸려 중동 국가들로부터 들여온 원유 긴급 물량이 4월 반영됐다가 사라진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상반기 비중동 원유 비중이 늘어난 건 민간보단 정부가 주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몰제 원유 수급 정책 개편·정제 설비 투자 나서야”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들. [로이터]


전문가들은 원유 수급 다변화를 장기적으로 실현하려면 정제 설비 투자가 우선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 정유사 입장에선 중동산 원유가 갖는 경제적 우위로 인해 자발적인 도입선 다변화 유인이 부족하다”며 “현재 일몰제로 3년씩 연장되고 있는 원유 도입선 다변화 지원제도를 개편해 기업의 설비 및 인프라 투자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현재 정제 설비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일본이 참고 사례로 꼽힌다. 유광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2센터 전문연구원은 “일본은 미국산 셰일 오일 또는 중앙아시아산 원유를 중동산 원유와 혼합 또는 단독으로 처리 시 발생하는 정제 효율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고도화된 분해 장치 및 성상 조정 설비에 대한 투자 지원 비중을 강화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