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이완용 피습 치료진 중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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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하영이 5일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열린 넷플릭스 새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 제작발표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넷플릭스 제공] |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방송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을 공개한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나라 팔아먹은 매국 세력의 수괴 이완용이 독립운동가에게 피습을 당할 때 그를 살린 의료진 중 한 명이라는 내용이 담긴 논문이 온라인에 확산하고 있다.
11일 인스티즈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논문까지 파묘된 안하영 증조(이완용 치료해 살린 기록)’ 등을 제목으로 한 게시물이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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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용 연구 논문 중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나오는 부분. [인스티즈 갈무리] |
해당 게시물은 이완용에 관한 논문 내용 가운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 이름이 나오는 대목을 그대로 캡처한 것이다.
원래 논문은 ‘이완용 연구 - 친미·친러·친일파로서의 행위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역사학자 박영석(1932~2017년) 전 건국대 사학과 교수가 작성한 것이다. 국사관논총 32집에 실렸다.
게시물은 국사관논총 32집 238쪽을 발췌했다. 이완용이 1909년 12월 22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서 돌아오던 중 이재명 의사(義士)에게 저격당하는 사건을 다룬 부분이다. 당시 이완용을 태운 인력차의 마부 박원문은 이 의사가 휘두른 칼에 그 자리에서 숨졌으나 이완용은 어깨를 찔린 채 쓰러져 혼수상태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논문은 “한성병원 학전(鶴田) 의사, 안동병원장 대한병원 국지(菊池) 원장, 고계(高階)부원장, 전의(典醫) 박종환(朴宗桓), 안상호(安商浩) 등 당시 일류 의사들의 치료에 의해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이완용의 병실 문 앞에는 문병하러 온 친일인사들이 줄을 이었으나, 한국 국민들은 이재명 의사의 쾌거에 기뻐하였다”라고 기술돼 있다.
역사에 따르면 이완용이 받은 수술이 한국 흉부외과 수술 1호다. 입원 53일만에 퇴원한 이완용은 한달 뒤 총리대신으로 복직했고 이후 1910년 8월22일 “한국 전체에 대한 통치권을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일본에 넘겨준다”는 한일합방조약에 도장을 찍었다.
이재명 의사는 이완용 습격 직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뒤 일본인 순사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으며 사형 선고를 받고 1910년 9월 13일 순국했다.
한편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동경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해 한국인 최초 일본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인물이다. 1904년 귀국한 그는 순종 전의(典醫)와 이왕직 촉탁의 등을 지냈고, 한국 최초 양의원을 개원했다.
그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내선일체의 모범사례’로 소개됐으며, 친일단체 대정실업친목회에도 몸담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대정친목회는 1916년 11월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기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총재가 회장을 맡아 설립한 실업인 단체로, 이완용과 조중응, 송병준, 이윤용 등 당대 친일반민족행위자 상당수가 회원으로 참여했다.
증조부의 친일 행적과 관련해 하영 소속사는 전날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냈다가 논란이 커지자 하루 만에 “충분한 검증없이 답변했다”며 사과하고 인정했다.
소속사 비스터스 엔터테인먼트는 이날 “하영의 증조부는 안상호, 조부는 고(故) 안부호 가톨릭대 의과대학 주임교수가 맞다”며 “안상호가 1916년 결성된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록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앞서 하영은 지난 7일 방송된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증조할아버지가 일본 유학을 마친 뒤 한양에 최초로 서양식 병원을 개설하고 고종 황제의 진료를 맡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할아버지와 아버지, 언니로 이어지는 4대 의사 집안이라는 사실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