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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구리값이 오르면 경기가 좋아진다.”
원자재 시장에서는 오랫동안 이 공식이 통했다. 구리는 건설과 자동차, 가전제품 등 산업 전반에 쓰이는 만큼 가격만 봐도 세계 경제의 체온을 알 수 있다는 의미에서 ‘닥터 코퍼(Dr. Copper)’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지금의 구리값은 과거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뜨거워져서가 아니라 인공지능(AI)과 전력 인프라 투자, 공급 부족이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6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미국 구리 선물 가격은 장중 파운드당 6.90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구리는 건설과 자동차, 전자제품은 물론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전기차 등에 폭넓게 사용되는 대표적인 산업용 금속이다. 과거에는 제조업과 건설 경기가 살아날수록 수요가 늘어 가격이 오르는 만큼 세계 경제의 대표적인 선행지표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상승은 과거와 결이 다르다.
CNBC는 기록적인 구리 가격이 세계 경제 회복보다는 AI 인프라 확대와 공급 부족이 동시에 맞물린 결과라고 진단했다.
윌리엄 오스나토 바차트 상품 리서치 책임자는 “구리 가격 상승의 핵심은 AI 산업 확대를 위한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투자”라며 “전통적인 경기 회복이 아니라 구조적인 전력화(Electrification) 수요 증가가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생성형 AI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이 이어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건물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만큼 송배전망과 변압기, 전력 케이블 등 전력 인프라 구축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량의 구리가 사용된다.
중국도 전력망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의 올해 상반기 전력망 투자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증가했으며, 최근에는 전력망 현대화를 위해 약 5740억달러를 투입하는 계획도 발표했다.
반면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마이클 위드머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금속 리서치 책임자는 “이번 가격 급등은 수요보다 공급 문제의 영향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구리 광산은 개발부터 실제 생산까지 통상 10년 안팎이 걸린다. 가격이 오른다고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기 어려운 구조다.
여기에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에서는 폭설과 폭우, 강풍 등 이상기후로 광산 운영이 차질을 빚고 있다. 공급 증가가 정체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생산 차질까지 겹치며 시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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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5월 15일 중국 베이징의 중난하이 정원을 방문한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를 나누며 시 주석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다. [게티이미지] |
미국과 중국의 정책도 공급 불안을 키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월 구리 반제품과 구리 집약적 파생제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 역시 폐구리 공급을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글로벌 공급 부족 우려를 키우고 있다.
여기에 콩고민주공화국이 자국 내 제련 산업 육성을 위해 구리와 코발트 정광 수출을 금지하기로 하면서 시장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졌다.
오스나토 책임자는 공급 차질로 런던금속거래소(LME) 창고의 재고가 빠르게 줄고 있으며 정련 비용도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금값이 각국 중앙은행의 매수와 지정학적 긴장, 안전자산 선호에 힘입어 강세를 이어가는 것과 달리 구리는 AI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산업 변화가 가격을 이끌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구리가 더 이상 경기만을 보여주는 원자재가 아니라 AI와 전력 인프라 투자, 공급망 재편을 가장 먼저 반영하는 전략 자산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처럼 ‘구리값이 오르면 경기 호황’이라는 공식만으로 시장을 해석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오스나토 책임자는 “닥터 코퍼에게도 새로운 시대가 왔다”며 “이제 구리 가격은 경기뿐 아니라 AI와 전력화, 공급망 리스크까지 함께 읽어야 하는 지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