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도 협상도 안 통했다”…카터·레이건·트럼프까지 번번이 막힌 ‘對이란 협상’ 잔혹사 [디브리핑]

오바마만 ‘핵합의’ 유일하게 성공…나머지는 모두 실패한 對이란 협상사
“이란이 미국보다 미국을 더 잘 안다”…40년째 반복되는 좌절
군사력도 회유도 안통해…트럼프가 마주한 이란의 벽


4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거리에서 시민들이 반(反)트럼프 현수막 옆을 지나가고 있다. [EPA]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상대의 약점을 꿰뚫고 이를 공략하는 데 능한 협상가를 자처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지만, 유독 이란 지도부를 상대로는 번번이 예상이 빗나가면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좌절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미국 행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새로운 합의가 임박했다고 보고 있지만, 이란은 해협 통과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은 요구다.

이란과 만족할 만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전쟁에 지친 미국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데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계속되면서 국제 유가가 출렁였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국 소비자와 세계 경제로 돌아가고 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모두 복잡한 이란 권력구조와 지도부를 상대하느라 애를 먹었다. 대부분 성과 없이 물러섰고 일부는 큰 정치적 대가를 치렀다. 유일한 예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 20개월에 걸친 외교 협상 끝에 2015년 이란 핵합의를 성사시켰다.

수십 년간 이란을 연구해온 전 CIA 분석관이자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 케네스 폴락은 “트럼프 대통령이야말로 이란 지도부를 가장 이해하지 못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는 미국이 이란을 바라보며 느껴온 좌절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며 “누구보다 합의를 원했고 동시에 누구보다 강한 군사력을 사용했지만 어느 방법으로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트럼프 대통령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협상을 단숨에 타결할 수 있다고 자신해왔다. 지난 2월28일 공습으로 약 40년간 이란 최고지도자였던 알리 하메네이가 폭사하자, 그는 이란 국민들에게 “정부를 뒤집어엎으라”고 촉구했고, 차기 최고지도자는 자신이 “직접 고르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이란 고위 관리들도 잇따라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정작 대규모 반정부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란 강경파는 더욱 결속했다.

이란은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했다. 미 정보당국은 그가 부친보다 더 강경하며 핵무기 개발에도 더욱 적극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이나 핵 프로그램 등 일부 현안에서는 협상 여지를 두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요구는 대부분 거부하고 있다. NYT는 “무엇보다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국가 정체성의 일부로 삼는 정치체제에서 미국과의 근본적인 화해를 원하는 지도자는 사실상 없다”고 지적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수잔 말로니 부소장은 “수십 년 동안 미국 정책 결정자들은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강한 이념성과 제도화된 권력구조를 지속적으로 과소평가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관리들이 이란 최고지도자들과 직접 접촉한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초대 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부터 알리 하메네이, 모즈타바 하메네이까지, 이들을 직접 만난 미국 관리는 지금껏 한 명도 없었다.

말로니 부소장은 최근 전쟁으로 오히려 이란 종교·군부 지도부의 권력이 강화됐으며, 이를 대체할 만한 다른 세력도 사실상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카터부터 클린턴까지, 반복된 좌절의 역사


과거 미국은 여러 차례 이란 내 온건 세력 통해 관계 개선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980년 4월25일 이란 인질 구출 작전이 실패한 가운데, 백악관 집무실에서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AP]


1980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 대사관 인질 52명을 석방하기 위해 비밀 협상을 진행했다. 동결된 이란 자산을 돌려주는 대신 인질을 석방받는 합의에 근접했다고 믿었지만,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이를 전격 거부하면서 협상은 무산됐다. 결국 카터 대통령은 인질 구출작전을 지시했지만 실패했고, 임기 마지막 날에야 인질 석방이 이뤄졌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게티이미지]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란 온건파와 관계를 트려다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휘말렸다. 미국산 무기를 비밀리에 판매한 대금이 니카라과 반군 지원에 전용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권은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여러 관리가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국가안보보좌관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까지 했다.

1997년에는 개혁 성향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빌 클린턴 행정부가 관계 개선에 나섰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란산 피스타치오와 카펫 수입을 다시 시작했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1953년 CIA가 쿠데타를 지원한 데 대해 공개 사과까지 했다. 그러나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일축했고, 관계 개선 시도는 무산됐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5월, 미-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담에서 걸프국 지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실질적 외교 성과를 낸 대통령은 오바마가 유일했다. 2015년 체결된 이란 핵합의는 이란 핵개발을 최장 15년간 제한하는 대신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양국 관계 개선의 출발점으로 기대했지만, 하메네이는 합의 이상의 관계 개선에는 나서지 않았다.

이후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핵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이란에 대해 이전보다 더 강한 경제 제재를 부과하면서 상황은 다시 악화됐다. 이란은 핵 프로그램을 더욱 가속화했고, 결국 미국과의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중동 외교 전문가 데니스 로스는 “이란은 늘 미국보다 미국을 더 잘 이해해왔다”며 “미국의 조급함 자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언제나 빨리 문제를 끝내려 하지만, 이란은 시간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믿으며 협상에 임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