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한 분노 [헤럴드단편-김하율]

일러스트=김효민·ChatGPT


세 번째였다, 재영의 방에 초대된 것은. 저녁을 먹을 때부터 아니, 영화를 볼 때부터 아니 아니, 오늘 데이트 날짜를 정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알고 있었다. 오늘이 결전의 날이라는 것을. CC(Campus Couple)라 매일 붙어 다닌 것에 비해 재영과 나는 진도를 천천히 나가고 있었다.

사귄 지 100일이 넘었으니 과 애들은 우리가 당연히 잤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요즘 애들’과 달랐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 재영이 똑 부러지는 성격이라는 것. 과대이자 총여학생회 회장이기도 한 재영은 자기주장이 강했고 합리적인 것을 좋아했다. 절대 흐지부지한 꼴은 못 봤다. 바로 지금처럼.

“콘돔 없이는 절대 안 돼.”

나는 나의 무계획성에 머리를 벽에 찧고 싶었다. 그걸 왜 안 챙겼을까.

“딱 한 번인데…”

“한버언?”

재영이 한 쪽 눈썹을 치켜뜨며 나를 쳐다봤다. 주인의 목소리에 미세한 분노를 느꼈는지 발밑에서 으르렁 소리가 들려왔다.

“울프, 조용해.”

재영의 경고에 울프는 드러냈던 이빨을 감췄다. 하지만 못마땅한 듯 나를 노려보는 눈빛은 피하지 않았다. 나도 질세라 함께 눈을 부라렸다. 스스로 정말 울프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3킬로그램 남짓한 갈색 토이푸들은. 재영이 한 박자 쉰 후 숨을 가다듬고 막 발사를 날리려는 순간, 나는 그녀의 입을 막았다.

“알았어, 알았어. 금방 다녀올게. 잠깐만 기다려.”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강의를 페미니즘의 계보를 타고 올라가 1시간은 족히 듣느니 빨리 다녀오는 게 나았다. 우리가 요즘 애들과 다른 두 번째 이유, 내가 물러 터졌기 때문이다. 재영에게 나는, 야무진 손놀림의 셰프에게 이리 치대고 저리 치대이고 있는 반죽 같은 존재였다. 어쨌든 우리는 서로의 역할에 만족했다.

재영의 집에서 제일 가까운 C편의점의 문을 열자마자 눈이 먼저 가 닿았다. 양말, 스타킹, 물티슈, 생리대 그리고 콘돔… 없었다. 두 종류의 콘돔이 있어야 할 자리가 휑했다. 왜 하필 콘돔만 없을까. 왜 하필 오늘 품절일까. 핸드폰을 보고 있는 보라색 조끼를 입은 알바에게 물어보려고 다가서는데 엄마 또래의 한 아줌마가 들어왔다.

“아직도 없어?”

“없어요.”

알바는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내일은?”

“몰라요.”

“에이씨. 이놈의 쓰레기 태워 버리든지 해야지…”

아줌마는 알바에게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크게 하고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이 동네도 마찬가지구나. 우리 집도 엄마, 아빠가 아침저녁으로 종량제 봉투 구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모두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코로나 시절 마스크 대란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미 사재기가 휩쓸고 간 자리마다 품절. 그나마 구할 수 있는 마트에서조차 1인 1장으로 구매를 제한시켰다.

이 정도면 엄청난 시민의식 아닌가. 전쟁 통에서도 쓰레기봉투 걱정이라니. 나는 장화홍련전이 떠올랐다. 억울하게 죽은 원귀가 되어서도 사또에게 민원을 넣는 나라. 죽어서도 공권력에 기대 복수를 시전 하는 민족. 아마 세계 대전이 나도 우리 집은 분리수거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문을 열고 나왔다.

한 블록을 지나 G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서둘러 콘돔이 있을 법한 코너를 뒤졌지만 없다. 평상시 쓸 일이 없을 때는 그렇게 눈에 잘 들어오더니 쓸려니까 없다. 나는 크게 숨을 한 번 내쉬어 분노를 조절한 후 카운터에 갔다.

“콘돔 있어요?”

“없는데요.”

“없다고요?”

“네”

자신의 체구보다 큰 파란색 조끼를 입은 여자 알바는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말을 받았다. 변태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뛰어오느라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애타게 콘돔을 찾고 있으니 이대로 나가면 정말 변태처럼 보일 거 같았다. 나는 냉장고로 가서 맥주 두 캔을 꺼냈다. 재영이 좋아하는 에일 맥주였다. 그리고 전기 구이 오징어랑 감자 칩을 하나 집었다. 그런데 봉투가 왜 이래. 포장지가 흑백이다. 알록달록한 색이 모조리 빠진 흑백. 입맛이 순간 사라지는 거 같았다.

“이거 불량이에요?”

“아닌데요.”

알바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어쨌든 나는 맥주와 안주들을 계산하고 양쪽 팔에 낀 채 편의점을 나섰다. 생각해보니 이 과자는 누나가 좋아하는 것이다. 아마 지금도 먹고 있겠지. 누나는 올 초 항공사 승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축하 문자와 전화, 축하 술자리 등을 한바탕 치른 게 무색하게 그 다음 주, 입사가 무기한 연기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누나는 스트레스로 인해 라면, 과자, 피자, 콜라를 돌려가며 폭식 중이다. 정작 입사할 때 회사에서 ‘누구세요?’ 하면 어떡하지. 순간, 가슴이 답답해서 맥주 한 캔을 따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번엔 역과 가까운 S편의점까지 달렸다. 다른 편의점들보다 크고 무엇보다 역세권이니까, 희망을 갖고 문을 열었다. 딸랑, 소리와 더불어 나는 잡화 코너로 성큼 걸어갔다. 콘돔 콘돔 콘돔 콘돔 콘돔 콘돔…. 머릿 속에는 단 한 단어, 콘돔뿐이었다. 제발 있어라, 제발. 앗! 콘돔 자리에 작은 박스가 보였다. 그럼 그렇지.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집어 들었는데… 무겁다. 콘돔이 원래 이렇게 묵직했나. 박스를 자세히 보니 ‘고급 화투’ 라고 쓰여 있다. 그 옆에 트럼프 카드한테 밀려서 콘돔 자리를 침범한 모양이었다. 땀 한 방울이 눈에 들어가 따가웠다.

“에이 씨”

소매로 눈가를 훔치자 누가 보면 콘돔이 없어서 울고 있는 소년처럼 보일 거 같았다. 하지만 정말 울고 싶었다. 오늘 결전의 날인데. 재영이 지금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냥 갈까? 하지만 학생회장답게 늘 분쟁의 한복판에 있는 재영의 단호한 눈빛이 떠올랐다. 우물쭈물, 이러다 이 밤이 곧 사라질 것만 같았다.

“누가 이 동네 콘돔 싹 쓸어 갔어!”

나도 모르게 발을 쿵 구르며 소리 쳤다. 분노의 포효였다. 20대 혈기 왕성한 남성의 분노를 담은 포효.

“전쟁이요.”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뿔테 안경을 쓴 알바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쓸어 간 사람 없어요. 입고가 안 되는 거예요. 3주째 발주가 안 잡혀요. 시스템 품목엔 ‘일시 중단’. 종량제 봉투, 위생장갑, 빨대, 콘돔. 물류센터에 물건이 없는데 무슨 수로 채워요.”

빨간색 조끼를 입은 알바가 말을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앞으로 갔다. 생긴 건 꼭 신방과 나온 언론고시 삼수생처럼 생겨가지고. 알바는 팔짱을 낀 채 아직 말이 남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나프타라고 알아요?”

“네?”

“원유를 정제하면 나오는 것 중 하난데 열분해 하면 에틸렌이 나와요. 에틸렌을 중합하면 폴리에틸렌이 되고 저밀도 폴리에틸렌이 지금 대란인 종량제 봉투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원유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거든요. 2월 28일에 이란이 거길 111일 동안 잠갔는데 그것 때문에 한 달 만에 값이 50% 넘게 뛰고…”

이즈음에서 내가 한숨을 쉬자 알바는 알겠다는 입을 다물었다가 내 옆구리에 끼여있는 감자칩 봉지를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거 손님들이 자꾸 불량이냐고 묻는데 포장지는 멀쩡해요. 잉크가 없는 거죠. 잉크 녹이는 용제가 톨루엔인데 그것도 나프타에서 나오거든요. 전쟁 나면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게 뭔 줄 알아요? 색깔이에요, 색깔. 오, 이거 괜찮은데?”

알바는 자기가 한 말에 취해서 잠시 감탄했다. 그를 보니 어쩌면 취업 안 되는 문창과 졸업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짠하면서도 짜증이 났다.

“콘돔은 라텍스 잖아요.”

“그렇죠. 고무나무 수액, 천연 라텍스죠. 말레이시아나 태국에서 와요. 그런데 그걸 한 개씩 포장하는 사각 파우치가 알루미늄에 플라스틱 코팅한 필름이고 상자에 찍힌 잉크도 석유, 그걸 싣고 부산까지 오는 배도 기름 먹고 오죠. 그러니까 고무나무가 멀쩡해도 소용없는 거예요. 몸은 있는데 옷이 없어서 못 나가는 거지.”

이 부분에서 알바는 다시 한 번 자기 비유에 감탄한 듯 잠시 말을 멈췄다. 어휴, 얄미워. 내가 나가려고 하자 그가 기습적으로 내게 물었다.

“급해요?”

“네?”

뿔테 너머 눈빛이 나를 꿰뚫어 보듯 물었다.

“…네.”

알바는 계산대 아래 공간에서 자신의 백팩을 꺼내더니 지퍼를 열었다. 필기구와 노트, 이것저것 잡동사니로 뒤죽박죽이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제목의 낡은 책 표지가 얼핏 보였다. 철학과였나.

“찾았다!”

한참을 뒤지더니 알바는 풀밭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것처럼 기뻐하며 은빛으로 반짝이는 사각형을 내게 정중하게 내밀었다. 나 또한 두 손으로 소중하게 받았다.

“사이즈가 맞을라나 모르겠네. 안 갚아도 돼요.”

우리는 잠시 뜨거운 눈빛을 교환했다. 전시의 전우애 아니, 인류애가 이런 것일까. 나는 고맙다고 말한 후 문을 열고 달렸다.

“많이 기다렸지!”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벌컥 열었다. 하지만… 재영은 자고 있었다. 코까지 골면서.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김이 팍 새서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자 울프가 으르렁 거리며 다가왔다. 틈만 나면 나를 경계하는 저 놈. 제가 무슨 이 3평짜리 원룸의 평화 안보 책임자라도 되는 줄 아는 한 줌 짜리 푸들. 재영은 이 푸들의 털 색깔이 갈색이 아닌 황금빛이라 특별하다고 했다. 하지만 황금빛 누런 털이 나는 몹시 거슬렸다. 내가 째려보자 놈이 이빨을 드러냈다. 나는 그 순간, 장대한 분노가 일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개새끼야!”

내가 소리치자 놈도 반격으로 앙칼지게 짖기 시작했다. 놈이 나를 물것인가, 내가 놈을 발로 찰 것인가 서로를 노려보는 일촉즉발의 순간, 재영이 뒤척였다. 개와 나는 동시에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곧 이어 들려오는 잠꼬대.

“휴전해.”

그리곤 코골이가 재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