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 갈림길, ‘담보신탁’이 기업 운명 가른다 [② ‘기울어진 운동장’ 만드는 담보신탁]

기업 자금조달 여력 높이는 담보신탁
근저당과 달리 회생 중 자산처분 가능
담보신탁 채권자, 영업자산 쥐고 협상
공매유예 확약서 있어야 기업회생 돌입
“신탁, 도산절연성 완화·공매유예 과제”


2016년 기업회생에 들어간 남춘천컨트리클럽(CC)이 부동산담보신탁으로 인해 회생계획안이 무산된 바 있다. 사진은 남춘천CC [남춘천CC 홈페이지]


2016년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는 남춘천CC 회생 절차를 폐지했다. 남춘천CC의 부동산 담보신탁 우선수익권을 보유한 메리츠가 회생계획에 동의하지 않아 회생계획안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남춘천CC는 두번째 회생 절차에서 메리츠의 채무를 100% 상환하는 내용의 계획안을 제출했고 2018년 9월 무사히 회생 절차를 종결했다. 기업 운명이 담보신탁에 좌우된 셈이다.

남춘천CC뿐만이 아니다. 법조계 및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담보신탁 우선수익권을 확보한 채권자가 권리 조정에 동의하지 않아 회생계획안 마련에 난항을 겪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핵심 영업자산이 부동산인 골프장, 부동산 개발회사 회생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기울어진 운동장’ 만드는 담보신탁=담보신탁이란 채무자인 기업이 보유 자산의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넘기고, 이를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말한다. 공장, 매출채권 등도 신탁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기업금융에서는 부동산 담보신탁이 가장 활발하게 쓰인다.

담보신탁 채권자는 여타 채권자들과 다른 출발선상에 선다. 차이는 기업이 회생 절차에 들어갔을 때 두드러진다.

우선, 기업 소유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한 금융기관은 ‘회생담보권자’가 된다. 회생이 개시되면 개별 채권자의 강제집행과 경매는 제한되고, 법원이 인가한 회생계획에 따라 변제기 연장이나 이자 조정 등 권리 변경이 이뤄진다.

담보신탁을 통해 우선수익권을 확보한 채권자는 회생 절차와 무관하게 자산을 처분해 채권을 회수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가 담보신탁된 부동산은 회생 절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탁 자산의 소유권이 기업이 아닌 신탁회사에 있는 만큼, 회생이 개시된 후에도 신탁회사는 계약에 따라 담보된 부동산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다른 채권자들이 회생법정 안에서 협상하는 동안 담보신탁 채권자는 법정 밖에서 언제든 부동산을 팔 수 있는 카드를 쥐고 있는 셈이다.

현재 진행형인 홈플러스 사태가 이 구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홈플러스는 2024년 점포 62곳을 담보신탁하고 메리츠 측에 우선수익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1조3000억원을 조달했다. 홈플러스의 회생계획안 제출이 미뤄지는 지금도, 메리츠가 공매를 통해 채권을 회수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법조계 관계자는 “홈플러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집중돼 공매 절차를 밟지 못하는 것일 뿐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규모가 작은 기업이었다면 신탁채권자가 이미 채권 회수 절차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골프장 회생진입 더 어려워…확약서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이 구조가 문제가 되는 건 담보신탁된 자산이 기업의 핵심 영업시설일 때다. 골프장이나 유통업체처럼 점포·부지 자체가 사업 기반인 경우, 회생기업은 신탁채권자로부터 “공매하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받아야만 회생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 확약서를 받지 못하면 자산 처분 위험이 남아 있어 법원도 회생계획을 인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탁채권자의 협조 여부가 사실상 회생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구조다.

협상 주도권이 기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조계에서는 담보신탁이 채권자 간 협상력 격차를 만들어내고, 이로 인해 회생계획 수립이 지연되거나 변제 조건이 신탁채권자에게만 유리하게 설계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한 기업 회생·도산 전문 변호사는 “계속기업가치가 더 높은 기업임에도 신탁채권자의 담보 실행 가능성 때문에 회생계획이 수립되지 못한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며 “회생담보권자, 무담보 회생채권자 모두 회생 절차 안에서 변제 조건을 협상하지만 신탁채권자는 공매라는 수단을 쥐고 협상하기 때문에 신탁채권자의 의사가 회생 전체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실제 변제율도 이를 보여준다. 이븐데일, 안성Q 등 주요 골프장 회생계획에서 신탁채권자의 변제율은 각각 100%와 67%인 반면 회원채권자의 변제율은 11%와 17%에 그쳤다. 핵심 영업자산에 대한 처분권을 쥔 채권자와 그렇지 못한 일반 채권자 사이의 협상력 차이가 그대로 숫자로 드러난 셈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수한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회생법원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경제적 실질을 중요시해 담보신탁도 회생 절차에서는 ‘신탁’이 아닌 ‘담보’로 보고 권리 행사를 제한한다”며 “담보신탁 우선수익권을 회생 절차 밖에 두는 현행 법리가 회생 가능성을 떨어트리고 채권자 간 형평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담보신탁 덕분에 사업 가능”…효용 크다는 반론도=다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담보신탁의 효용이 더 크다는 반론도 나온다. 회생 절차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사례는 일부에 그치는 반면, 기업의 자금 조달 여력을 높이고 금융비용을 낮추는 경제적 효과는 탁월하다는 이유에서다.

담보신탁은 금융기관의 회수 가능성을 높여 기업이 일반 신용대출이나 근저당권 방식보다 큰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한다. 특히 부동산 개발사업, 골프장, 호텔, 유통시설처럼 초기 투자비가 크고 장기간 현금 흐름으로 회수하는 사업에서 핵심 금융수단으로 활용됐다. 때문에 담보신탁 권리를 제한할 경우 신규 대출이 위축되거나 금리와 담보 요구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약정된 신탁채권자의 권리를 회생을 이유로 사후적으로 제한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기관은 공매를 통한 회수 가능성을 전제로 대출 여부와 한도, 금리, 담보 조건을 결정한다. 회생이 시작됐다는 이유로 당초 보장된 권리 행사를 막으면 계약의 예측 가능성이 흔들리고, 금융기관은 처음부터 대출을 줄이거나 더 높은 금리와 추가 담보를 요구할 수 있다고 예상하는 이유다.

회생 과정에서 채권자의 희생을 당연한 전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무 조정과 변제기 연장을 수반하는 만큼 채권자의 일정한 양보는 불가피하지만,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손실 부담을 일방적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회생 가능성이 불확실하거나 기존 경영자와 주주의 책임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채권자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면, 부실기업을 연명시키는 비용을 금융기관과 일반 채권자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 다른 기업 회생 전문 변호사는 “신탁 구조가 있었기에 레버리지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고 영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사업 영위를 위한 필수 금융 수단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문제가 된 결론만 놓고 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매 유예 필요성 대두…“담보신탁 도산절연성 제한해야”=이런 논란 속에서 거론되는 절충안이 ‘핵심 영업자산 한정 공매 일시 중지’ 방안이다. 담보신탁 우선수익권을 회생절차에 일률적으로 편입하는 대신, 공장·점포·골프장 부지 등 영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자산에 한해 공매를 일정 기간 유예하는 방식이다.

이는 법원이 계속기업가치와 회생 가능성을 검토하고 회생계획을 마련할 최소한의 시간을 보장하되, 회생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다시 권리 행사를 허용하는 구조다. 공매 유예 기간의 이자 보전이나 우선변제 순위 상향 등 신탁채권자의 손실을 보완할 장치도 함께 검토할 수 있다. 한 도산법 전문 변호사는 “핵심 영업자산에 한정된 단기 공매 유예는 채권자 권리를 완전히 박탈하지 않으면서도 회생기업에 협상 시간을 보장하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했다.

담보신탁의 도산절연성(기업이 회생이나 파산에 들어가더라도 신탁재산을 기업의 일반 재산과 분리해 회생 및 파산 절차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법적 효과)을 제한해야 한다는 학계 우려는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명문화한 채무자회생법 개정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법원 판례 변경 혹은 입법을 통한 제도정비 없이는 사건마다 신탁채권자의 권리 행사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쟁점은 담보신탁을 유지할 것인지 폐지할 것인지가 아니다. 기업의 자금 조달 수단으로서 담보신탁의 장점은 살리되, 핵심 영업자산 하나가 회생절차 전체를 무력화하지 않도록 권리 행사의 시기와 범위를 조정하는 것이 과제다. 회생기업에 최소한의 협상 시간을 보장하고 그 비용을 채권자에게만 일방적으로 부담시키지 않는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영·노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