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간 ‘쇼윈도 부부’…최태원·노소영, 세기의 결별 막 내린다

상고 없으면 9440억원 분할 종결
2005년부터 각 방…사실상 남남
2011년 檢 수사…파경 결정적 이유


최태원(왼쪽)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연합]


1988년 현직 대통령의 딸과 재벌가 황태자의 결합으로 주목받은 ‘세기의 결혼’이 종지부를 찍을 준비를 마쳤다. 20여년 전부터 시작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실질적 별거, 약 10년에 걸친 법정 공방이 마무리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7일 재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1부(부장판사 이상주)는 지난달 24일 두 사람 재산분할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 명목으로 9440억원을 현금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이달 15일까지 양측은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양측 모두 상고하지 않으면 21년간의 파경 드라마는 완전히 종결된다.

1988년 시작된 결혼 생활은 1990년대 후반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1997년 최 회장 모친 박계희 여사와 이듬해 선대회장의 잇단 별세, 그룹 경영권 승계,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를 거치며 부부 관계는 회복이 어려운 수준으로 벌어졌다. 최 회장 측은 사실상 2005년 무렵부터 각방을 쓰며 대외적 부부 노릇만 해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최 회장은 2013년경 가치관 차이로 관계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이혼소장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반면 노 관장은 30년 넘게 세 자녀를 키우며 가정을 지켰고, 관계가 깨진 것은 가치관 탓이 아니라 최 회장의 혼외 관계 때문이라며 맞서왔다.

2011년 SK그룹을 향한 검찰 수사는 두 사람의 거리를 더욱 멀게 만들었다. 최 회장 측은 노 관장이 청와대 고위층을 통해 수사를 청탁했다고 의심한 반면, 노 관장은 이를 계속 부인하며 오히려 남편의 옥바라지로 가족을 지켰다고 주장했다. 결국 최 회장은 2011년 8월 가족에게 이혼 결심을 알린 뒤 그해 9월 집을 나와 SK서린빌딩 집무실 등에서 홀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갈등은 법정 밖에서도 거칠게 충돌했다. 2015년 8월 최 회장의 광복절 특별사면 논의가 나오자, 노 관장은 아홉가지의 이유를 들어 사면에 반대하는 A4 7장 분량의 서신을 청와대에 보냈다. 2017년 6월 국정농단 재판에서 이 편지가 알려졌을 때 노 관장은 석방 청원이라 해명했으나, 이후 보도를 통해 반대 취지였음이 드러났다.

결국 2017년 최 회장의 이혼 조정으로 시작된 법정 전쟁은 이듬해 정식 재판으로 비화했다. 이혼을 거부하던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입장을 선회해, 헤어지되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달라는 맞소송을 냈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의 절반에 해당하는 요구였다. 이후 판결액은 재판부의 판단 기준에 따라 크게 요동쳤다.

2022년 12월 1심은 SK㈜ 주식을 상속과 증여로 만들어진 고유 재산으로 보고 분할 대상에서 제외한 채 665억원만 인정했다. 노 관장 측은 항소심에서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1년경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에게 300억원을 건넸다며 이를 재산 형성에 보탠 몫으로 봐 달라고 했고, 2024년 5월 항소심은 주장을 받아들여 1조3808억원이라는 전례 없는 액수를 명령했다. 이에 최 회장은 직접 기자회견장에 나서 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며 상고 방침을 알렸다.

흐름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문제의 300억원이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챙긴 뇌물 성격의 자금으로 보이는 만큼, 설사 그 돈이 SK로 흘러들어 갔다 하더라도 분할 기여도로 계산에 넣을 수 없다고 판단해 사건을 항소심 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다만 이혼과 위자료 부분은 이 단계에서 그대로 굳어졌다. 위자료 20억원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두 사람의 혼인 관계는 이때 법적으로 끝났다.

지난달 서울고법 가사1부가 내린 파기환송심 선고의 핵심은 ‘주식 보유와 현금 정산’이다. 재판부는 SK㈜ 지분을 나눌 재산에 포함시키면서 몫을 최 회장 3분의 2, 노 관장 3분의 1로 갈랐다. 주식 자체는 최 회장이 계속 보유하게 하는 대신, 노 관장의 몫인 944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판결이 확정된 다음 날부터는 연 5%의 지연손해금이 더해진다.

선고 직후 최 회장 측 대리인은 20여년의 혼인 정리 과정에서 여러 사람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며 판결문을 살펴본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노 관장 측은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 재계 인사는 “이미 남남으로 지내 온 부부를 법이 붙들고 있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묻게 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고은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