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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뭄으로 갈라진 논과 산불.[게티이미지뱅크]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차라리 태풍이 왔으면 좋겠다”
경험하지 못했던 강도의 폭염이 전국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경남 일부 지역에서는 때아닌 ‘가뭄’ 사태까지 불거지며, 인근 주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저수지가 마르며 용수 제한까지 이뤄진 가운데, 주민들이 나서 기우제까지 지내며 하늘의 변화를 바라고 있다.
적어도 8월 중순까지는 마른 폭염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 폭염과 가뭄에 이어 또 다른 대형 재난까지 발생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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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염으로 인한 가뭄이 이어진 8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하논분화구 내 논바닥이 쩍쩍 갈라져 있다.[연합] |
그 주인공은 바로 ‘여름 산불’. 원래 한국의 여름은 ‘고온다습’으로 대표된다. 전국적으로 골고루 비가 오는 탓에, 산불 걱정은 겨울, 봄철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급격한 기후변화는 ‘재난’의 양상을 뒤바꾸고 있다. 역대급 폭염은 극단적인 가뭄을, 가뭄은 다시 연중 대형 산불의 위험성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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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청도에 가뭄과 폭염이 이어지는 5일. 운문댐 상류가 물길이 줄어들며 잡초로 뒤덮여 있다.[연합] |
기상청이 발표한 ‘2026년 7월 기후특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강수량은 68mm로 평년 강수량(304.7mm)의 21.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 관측망이 전국적으로 확충된 1973년 이후 같은 달 기준 가장 적은 수치다.
전국적으로 비가 안 왔던 것은 아니다. 서울·인천·경기의 7월 강수량은 353.8㎜로 평년의 94.1%, 대전·세종·충남은 338.1㎜로 평년의 118.9%를 기록했다. 다른 지역에서 호우 피해가 우려되는 와중, 경남에서는 가뭄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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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오후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는 경북 청도군의 삼신지에서 저수지 대부분이 메말라 바닥을 드러낸 가운데 한쪽에 남은 마지막 물웅덩이에 높아진 수온을 버티지 못한 물고기들이 죽어있다.[연합] |
실제 경남은 7월 한 달 중 20.7일 동안 기상가뭄을 겪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수치는 8.3일이었다.
그 와중에 경남 양산 등 남부지방 일부 지역에서는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어서며 폭염이 가속화됐다.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씨가 지표를 달구고, 달궈진 지표가 다시 토양과 식생의 수분을 빼앗는 악순환이 이어진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업용수까지 부족해지고 있다. 경남 산청군, 경북 청도군 일부 지역에서는 물 사용량이 급증하며, 수돗물 제한급수 조치까지 시작됐다. 경남 도내 평균 농업용 저수율은 38.5%로 평년의 절반 수준인 53.1%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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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울산 울주군 두동면 치술령 고개에서 가뭄 해소와 단비를 기원하는 기우제가 봉행되고 있다.[연합] |
가뭄은 오랜 기간 비가 줄어들며 서서히 진행되는 전통적인 가뭄과는 양상이 다소 다르다. 6월에 나타난 강수 부족에 더해, 7월 이후 기록적인 폭염과 맑은 날씨가 겹치면서 불과 수주 사이 가뭄이 빠르게 심해졌다. 단기간의 비 부족과 높은 증발량으로 급속히 진행되는 ‘돌발가뭄’이 나타난 것.
돌발가뭄의 등장한 이유는 기후변화. 기온 상승으로 폭염 강도가 거세지며, 빠른 속도의 가뭄 빈도가 늘어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여름 장마철에 비가 내리지 않는 ‘마른장마’와 일부 지역에 국지적으로 내리는 집중호우가 겹치며, 돌발가뭄 가능성은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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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의 시민들이 우산을 쓰고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다. 윤창빈 기자 |
쉽게 말해, 장맘 기간이라고 해도 일부 지역에는 비가 쏟아지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는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남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연구팀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20년까지 여름철 돌발가뭄 발생 횟수는 총 52건으로, 강수 부족에 따른 가뭄(9.1회)에 비해 5배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0년 이후 돌발가뭄의 발생 횟수와 지속 기간 모두 뚜렷하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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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영천시 보현산댐 상류의 바닥이 메말라 있다.[연합] |
실제 지난해의 경우도 강원도 강릉시에서 사상 초유의 제한급수가 시행된 바 있다. 활용수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역대 최저치인 21.8%까지 떨어진 영향이다. 지난해 7월 강릉의 폭염일수는 총 17일로, 최고기온은 38.2도까지 치솟았다. 이에 증발 속도가 가속화돼, 가뭄 사태 우려가 커진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가뭄과 함께 찾아올 수 있는 산불이다. 일반적으로 산불은 대기가 건조한 겨울과 봄철에 집중된다. 반면 여름은 고온다습한 기후 특성상 상대적으로 산불 위험이 낮은 계절로 여겨져 왔다. 실제 1997년부터 2024년까지 발생한 여름철 산불은 총 787건으로, 같은 기간 전체 산불의 5.9%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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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영천시 보현산댐 상류의 바닥이 드러나 있다.[연합] |
하지만 기후변화로 나타나는 돌발가뭄은 과거에는 드물었던 여름철 산불 위험까지 높이고 있다. 산림청 산불통계를 14년 단위로 나눠 분석한 결과, 1997~2010년 전체 산불 가운데 6~9월 산불이 차지한 비중은 3.0%였다. 반면 2011~2024년에는 8.7%로 높아졌다.
1990년대만 놓고 보면 여름철 산불 비중은 사계절 전체의 평균 1.2%에 불과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좀처럼 발생하지 않던 여름철 산불이 최근 들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다.
지속적인 기온 상승도 산불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1.5도 상승할 때마다 산불기상지수(FWI)는 8.6%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폭염이 상대적으로 건조한 가을까지 이어질 경우 산불 위험은 더욱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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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불.[게티이미지뱅크] |
이미 여름 산불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경남에서 2건, 울산에서 3건 등 모두 5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지난달 13일 밀양시 상남면의 한 야산에서 발생한 불은 산림 0.7헥타르를 태웠다. 산림당국은 진화헬기 7대와 진화차량 38대, 인력 200명 안팎을 투입했으며, 한때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폭염과 기온 상승, 가뭄, 산불로 이어지는 재난의 연결고리를 당장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인간 활동에 따른 탄소배출이 지속되면서 기후변화 역시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변화하는 가뭄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이에 맞는 대비책을 정비해 피해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해수 넥스트 연구원은 “돌발가뭄 피해는 농업 및 생활용수 전반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었으며, 발생 빈도와 강도는 지속해서 증가할 전망”이라며 “현재 예·경보 시스템과 장기 강수량을 고려하는 가뭄지수는 돌발가뭄을 감지하기에 부적합하며, 고온과 증발산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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