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재개방 초읽기?…궁지몰린 트럼프 ‘이란식 합의’ 택할까 [디브리핑]

미사일 부족한 트럼프, ‘확전’ vs ‘이란 조건 수용’ 진퇴양난
이란 “오만과 새 항로 합의, 곧 공동성명” 재개방 가시화
트럼프, 이란 통제권 수용할지 미지수…절충안 머물 가능성
재개방 돼도 원유 재고 채우는데 18개월…유가 불확실 여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춤을 추고 있다. [AP]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확전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상당 부분 인정하는 협상안 수용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놓였다. 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요격미사일 재고가 80%가량 소진된 상황에서 확전은 큰 부담이다. 그렇다고 이란·오만의 호르무즈 해협 새 항로 협상안을 받아들이면 이란의 해협 통제권을 사실상 인정하는 셈이어서, 미국이 그동안 고수해온 ‘자유통항’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일각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하는 양보는 이미 이뤄졌다며 통제의 정의를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한 세부 사항이 쟁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현지시간) 소식통들을 인용해 이란과 오만이 이란 근해의 진입용 항로, 오만 근해의 진출용 항로를 신설하는 합의안 초안의 핵심 사항에 동의했으며, 이를 미국·이란과 역내 국가들에 전달했다고 전했다.

이날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도 이란과 오만의 협상에 대해 “제안된 항로의 지리적 좌표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며 양국 간 공동 성명이 현재 검토 및 마무리 단계라고 밝혔다. 카젬 가리바바디 이란 외무차관은 “현재 오만과 조율 중인 새 항로는 2~4개월간 운영될 임시 항로 성격”이라며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는 구체적인 충족 요건들이 필요하며, 관련 합의는 오로지 이란과 오만 양국 간에만 이뤄져야 한다”라며 “어떠한 외세의 개입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WSJ이 입수한 합의안 초안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으로 진입하는 선박은 이란 측과 협의해 이란 쪽 항로를, 해협을 나가는 선박은 오만 측과 협의해 오만 수역 내 항로를 각각 이용한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페르시아만에 진입하는 선박에 대한 통제권을 얻지만, 통행료나 서비스 수수료를 부과할 수는 없다. 통행료나 수수료 징수는 제외됐으나, 이란이 보안 및 수색 구조 비용 충당 명목으로 받는 자발적인 지불금까지 막지는 못할 수도 있다고 소식통들은 덧붙였다.

다만 로이터통신이 인용한 이란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이란은 해협을 이용하는 선박 화물 가액의 5∼7% 수준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다. 또 오만은 약 3% 수준 수수료를 논의 중이나, 미국은 수수료 부과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이 당국자는 현재 테이블에 올라온 합의안에 이란이 페르시아만으로 들어오는 선박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는 내용은 있으나, 반대 방향으로 나가는 선박에 대해 이란이 어떤 역할을 할지가 주요 쟁점이라고 짚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이 곧 열릴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이란은 매우 강력한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며 “대표단이 하루종일 협상을 진행했고, 논의도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48시간 안에 결과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조건을 상당 부분 수용하는 합의와 확전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졌으며, 그가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하며 제시했던 목표에는 크게 못 미칠 전망이라고 전했다. 또한 아직 중요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다며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합의가 임박했다는 관측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시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미사일 요격체계 재고 부담도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지를 좁히는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주말 검토했던 대이란 추가 공습을 보류한 배경 중 하나로는 탄약 부족이 꼽힌다. 미군의 사드 미사일 재고는 80% 가량 소진됐으며, 장거리 정밀유도미사일은 거의 소진됐다.

또한 전쟁 초기 이란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고 최고지도자 선출 과정에도 관여하겠다고 공언했던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란전쟁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인도 문드라 항에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


합의가 지연되면서 세계 원유시장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합의가 성사되지 않은 날마다 약 1500만배럴의 원유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수송 차질이 장기화하면서 세계 각국과 정유업체의 원유 재고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사우디아람코의 아민 나세르 최고경영자(CEO)는 “호르무즈 해협이 오늘 다시 열리더라도 고갈된 원유 재고를 채우는 데 최대 18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이란은 미국이 자국을 다시 공격할 경우 걸프 지역의 핵심 에너지 인프라를 보복 공격하겠다고 걸프 국가들에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합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란이 요구하는 해협 통제권을 미국이 수용할지는 미지수”라며 “결국 합의가 아뤄지더라도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형태가 아니라 이란의 영향력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절충안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