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거대한 컴퓨터? 우리는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을까 [북적book적]

시뮬레이션 가설에서 양자컴퓨터까지
“모든 물리적 대상에는 정보가 있다”
불확실성의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
“우주는 인간을 통해 자신을 시뮬레이션”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지난 2003년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과 교수인 닉 보스트롬은 한 논문을 통해 ‘우리는 미래 인류가 돌리는 시뮬레이션 안에 살아가는 가상 인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주장을 펼쳤다. 우리가 현실이라 믿는 우주가 실제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일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가설’은 최근 들어 과학·철학계에서 더욱 활발하게 논의·연구되고 있는 주제다.

고등과학원 교수이자 세계적 이론물리학자인 박권은 저서 ‘시뮬레이션 우주’에서 물리학과 수학, 양자역학, 인공지능을 아우르는 발견과 통찰을 통해 ‘우주가 거대한 컴퓨터’라는 명제에 다가간다.

‘물리학자들의 물리학자’라 불리는 존 아치볼드 휠러가 제시한 ‘모든 것은 정보(비트·bit)로부터 나온다’는 명제를 출발점으로 정보란 무엇인지, 어떻게 모든 물리적 시스템이 컴퓨터로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를 거쳐, 우주를 지배하는 양자역학과 양자컴퓨터, 그리고 그러한 우주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역할에 대한 질문으로 향한다.

생명의 본질은 DNA의 ‘정보’와 그 ‘계산’에 있다. 원자나 분자 수준의 미시 세계에서도 정보의 측정은 곧 물리적 속성을 결정한다. 정보의 양에 관한 수학적 정의는 시간의 방향을 나타내는 물리량과 다르지 않다.

이처럼 저자는 ‘모든 것은 정보로부터 나온다’는 휠러의 제안을 “모든 물리적 대상에는 정보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저자는 원자나 생명, 시간 등에 담긴 ‘물리적 속성’은 정보이며, 그 변화는 논리부정, 논리합, 논리곱과 같은 기본적인 논리 연산의 계산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우주 자체가 거대한 정보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우주/박권 지음/동아시아


아울러 저자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짚으며 진공관과 반도체, 심지어 물이나 공기도 무언가를 계산하는 컴퓨터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부연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주어진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물리적 시스템을 언제나 구축할 수 있다”면서 “우리는 우주의 모든 것을 이용해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인공지능(AI) 역시 정보와 계산이라는 개념의 연장선에 있다.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존 폰 노이만은 “신경계의 논리적 구조는 디지털 계산 장치의 구조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논리라면 AI는 원칙적으로 인간의 지능만이 아닌 마음마저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로저 펜로즈는 직관이 ‘인간 생각의 정수’라고 짚으며, “AI는 결정론적 알고리즘을 따르기에 인간처럼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결정론적 알고리즘을 초월하는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이 때문에 펜로즈는 “인간은 양자역학적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 컴퓨터, 즉 양자컴퓨터”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우주는 양자역학을 따른다. 우주가 어떤 상태를 가질지는 오직 측정을 통해 결정되고, 그 측정에 따라 값은 달라진다. 우리가 우주의 모든 것을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에 따른 불확정성까지도 계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양자컴퓨터가 등장한다.

저자는 “양자컴퓨터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지만, 답은 오로지 확률적으로 주어진다”면서 “결정론적 알고리즘을 버리는 대가로, 우주의 근본적인 불확실성을 끌어안게 된 것”이라고 짚는다.

인간은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그때그때 최선의 방법을 동원해 우주를 시뮬레이션하는 컴퓨터를 만들어 왔다. 그런데 인간도 우주의 일부다. 이에 저자는 “우주는 자신의 일부인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시뮬레이션하도록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이해해 가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이어 그는 우주가 측정을 매개로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서서히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휠러의 ‘참여 우주’ 개념을 통해 “인간은 우리 우주가 현재 우리가 아는 형태로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저자는 “우주는 자기 자신을 점점 더 깊이 이해하는 컴퓨터로 서서히 진화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진화는 우주의 일부인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우주에 끊임없이 질문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존재하는 것은 곧 계산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시뮬레이션 우주/박권 지음/동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