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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연체채권 정리를 둘러싼 논쟁은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문제로 귀결된다. 특히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금융은 계약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이런 우려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 전체 관점에서 다른 질문도 고민해야 한다. 평생 일해도 갚을 수 없는 빚을 계속 떠안긴 채 경제활동에서 배제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장기연체자는 정상적인 금융거래는 물론 취업과 창업, 소비까지 제약받으며 경제활동에서 사실상 이탈하게 된다. 금융회사 역시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채권을 장기간 관리하는데 비용이 든다.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소비와 투자, 금융의 자금순환을 위축시키고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해외 연구도 같은 결론을 제시한다. 유럽정책연구센터(CEPS)의 2009년 소비자파산 연구와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BER)의 2018년 채무감면 연구는 상환 가능성이 없는 장기부채를 적기에 정리하면 소비와 고용이 회복되고 금융 시스템의 효율성도 높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무조건적인 채무면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원 대상을 엄격히 선별하고 사후관리를 병행할 때 정책 효과가 극대화 된다는 점도 함께 강조한다. 이런 연구들은 장기 부실채권을 방치하기보다 경제활동 복귀를 지원하는 편이 사회 전체 관점에서 편익이 더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런 점에서 2025년 10월 출범한 새도약기금은 단순한 채무 감면 정책이 아니라 경제 회복을 위한 사회적 투자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장기연체채권을 정리하고 금융 취약계층에게 다시 경제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이 정책의 본질이다. 한 사람이 소비하고 일하며 금융시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개인의 재기를 넘어 우리 경제의 생산성과 내수 회복으로 이어진다.
새도약기금은 현재까지 11조7000억원 규모의 장기연체채권을 매입하고 26만9000명의 채무를 면제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새도약기금이 성공적인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할 것이다.
우선, 상환능력이 없는 채무자와 고의적으로 상환을 회피하는 채무자를 철저히 구분하는 정교한 심사체계를 갖춰 정책의 신뢰와 사회적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채무조정 이후에도 신용교육과 재무상담, 취업 지원 등을 통해 반복되는 연체를 막고 다시 저신용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단계적 지원을 통해 채무자의 온전한 경제적 자립으로 이어지게 해야한다. 마지막으로 성실상환자에 대한 배려를 강화해야 한다. 채무조정 이행자를 대상으로 저금리 대출을 지원하는 등 성실상환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한다면 형평성 논란을 줄이고 정책 신뢰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연체채권 정리는 과거의 빚을 없애기 위한 정책이 아니다. 경제활동에서 이탈한 사람을 다시 시장으로 돌아오게 하는 정책이며 금융자원을 생산적인 곳으로 순환시키는 경제 회복의 인프라다. 새도약기금이 엄격한 심사와 체계적인 사후관리를 기반으로 운영된다면 이는 채무자의 재기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포용금융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