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센트 “워시, 엔화전쟁 참전을”…엔 캐리 청산? 외환위기? 연준의 딜레마[홍길용의 화식열전](907회)

“문제는 일본이 아니다. 일본 너머에 있는 시장이 어디냐는 점이다.”

— ‘아베노믹스 사냥꾼 스콧 베센트…13년 만에 다카이치 ‘방패’로 변신?’ (2026년 1월 26일 본 연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6/0002591272?sid=101]

미·일 정부의 엔화 공동 방어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대 화두로 부상했다. 일본만의 문제를 넘어 미국, 더 나아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는 사안이다. 일단 일본은행(BOJ)과 일본 정부, 미국 재무부의 처지가 각각 어떤지 정리해보자.

√ BOJ는 엔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물가가 오르면서 금리를 높여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하지만 기준금리를 쉽게 높일 수 없다. 금리를 올리면 정부의 경기부양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정부의 국채 이자 부담도 커진다.
√ 일본 정부는 경기부양을 원한다. 재정지출은 늘리고 세금, 특히 소비세는 낮추려는 접근이다. 이미 정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배를 넘지만 국채를 더 발행해서라도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 미국 정부는 일본이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보유 중인 미국 국채를 파는 것을 경계한다. 일본의 매물이 미국 장기금리를 끌어올리면 연방정부의 이자 부담이 더 늘어난다. 엔저가 일본산 제품의 달러 표시 가격을 낮추면 미국의 관세 장벽도 일부 약화되고 무역적자가 커질 수 있다.


자칫하면 아시아 외환위기…터지면 미국도 타격

7월 30일과 31일 일본 정부가 약 14조엔, 880억달러를 외환시장에 투입해 엔화를 사들인 것으로 시장은 추정한다. 미국 재무부도 보유 중인 유로화를 팔아 엔화를 사들였다. 31일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각료회의에서 ‘50억~100억달러 규모의 엔화 매수’라고 적힌 메모를 의도한 듯 언론 카메라에 노출했다. 1998년 이후 28년 만에 이뤄진 미·일 공동 엔화 매수 개입이었다.

베센트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일본이 연방준비제도(Fed)의 외국·국제통화당국 환매조건부채권 제도인 FIMA 레포(Foreign and International Monetary Authorities Repo Facility)※를 외환시장 개입 재원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필요하다면 현재 600억달러인 국가별 한도도 높여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림은 이렇다. 일본이 보유한 미 국채를 연준에 맡긴다. 연준에서 달러를 빌린다. 그 달러를 시장에 팔아 엔화를 산다. 일본은 미 국채를 매각하지 않고 엔화를 방어할 수 있고, 미국은 일본발 국채 매도로 장기금리가 오르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지난 1월 베센트가 들었던 일본의 ‘방패’가 무엇인지 이제 분명해진 셈이다. 일본을 지키는 방패이자 미국 국채시장을 지키는 방패다.

※ FIMA 레포는 외국 중앙은행 등이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보관한 미국 국채를 연준에 담보로 맡기고 달러를 일시적으로 빌리는 제도다. 시장에서 미 국채를 직접 팔지 않고도 달러를 조달할 수 있다. 2020년 코로나19 충격 때 임시로 만들어졌고 2021년 상설화됐다. 현행 거래 상대방별 한도는 하루 600억달러이며, 관련 외환소위원회가 한도와 만기·금리 등의 변경을 승인할 수 있다.


1992년 영국 파운드화, 2012년 엔화를 공격했던 매크로(Macro)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베센트가 FIMA 한도 확대까지 공개적으로 요구했다는 것은 미·일 재무당국의 외환개입만으로 시장을 완전히 제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음을 시사한다. 달리 말하면 사안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베센트는 엔화 약세를 방치하면 아시아 통화의 동반 약세와 경쟁적인 통화가치 절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엔화 움직임이 원화와 위안화 등 아시아 통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도 미국 고금리와 달러 강세, 신흥국의 취약한 외채구조와 통화가치 하락이 맞물리면서 촉발됐다. 외환위기 이후 신흥국들은 미국 국채로 외환보유고를 채웠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엔화마저 무너지면 달러 초강세가 원화를 비롯한 다른 아시아 통화에 번질 가능성이 크다. 신흥국들이 자극 통화 방어를 위해 미국 국채에 투자한 외환보유고를 회수하기 시작하면 미국에도 타격이다.

개입은 미봉책…Fed 지원 없으면 엔 캐리 청산될 수

미·일 공동개입으로 달러당 164엔까지 추락했던 엔화 가치는 157엔 안팎으로 반등한 뒤 횡보하고 있다. 시장은 아직 엔화의 안정을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 엔저의 근본 원인은 미·일 금리차다. 미국 등 주요국보다 일본의 긴축 속도가 더딘 만큼 엔화를 빌려 달러 자산을 사는 유인이 여전히 크다. 결국 엔화를 근본적으로 안정시키려면 BOJ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문제는 BOJ가 금리를 올리면 일본 정부의 재정부담만 커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글로벌 자산시장에 깊숙이 자리 잡은 엔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가 청산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엔캐리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미국 주식과 채권, 신흥국 통화와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거래다. 미·일 금리차가 클수록 수익이 커진다. 반대로 BOJ가 금리를 높이면 조달비용이 오르고 금리차, 즉 스프레드(spread)는 줄어든다. 엔화까지 강해지면 환차손도 발생한다. 레버리지를 사용했다면 충격은 훨씬 커진다.

예를 들어 자기자본 1억원에 엔화 차입을 더해 5억원을 해외자산에 투자했다고 하자. 엔화가 5% 오르면 해외자산 가격이 그대로이더라도 환율 변화만으로 자기자본의 25%가 사라진다. 손실을 줄이기 위해 미국과 한국의 주식·채권을 팔고 엔화를 사서 빚을 갚기 시작하면 또 다른 엔 캐리 투자자의 손실이 커진다. BOJ 금리 인상→엔화 강세→엔캐리 손실→해외자산 매도→엔화 차입 상환→엔화 추가 강세→추가 청산으로 이어지는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다.

가장 가까운 사례가 꼭 2년 전인 2024년 8월 5일이다. 미국 경기둔화 우려가 도화선이었다면 BOJ의 긴축과 엔화 급등, 엔캐리의 부분적 청산은 매도를 증폭시킨 장치였다. BIS는 당시 엔 캐리 규모의 중간 추정치를 약 40조엔으로 제시하면서, 레버리지 축소와 추가 증거금 요구(margin call)이 짧지만 극단적인 글로벌 증시 변동성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서 시작된 충격은 미국과 아시아 시장으로 빠르게 번졌다.

BOJ가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면 엔화를 살릴 수 있다. 대신 엔 캐리 청산으로 글로벌 자산시장이 다칠 수 있다.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엔저와 수입물가 상승이 계속된다.

※ 챗GPT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이미지 입니다.


도우면 선례, 방관하면 상황 악화…연준의 딜레마

일본 정부와 미국 재무부가 원하는 것은 엔화 급등이 아니다. 급락도 급등도 아닌 질서 있는 안정이다. BOJ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피하면서 단기간에 엔화를 안정시키려면 1조 달러가 넘는 일본의 외환보유액으로도 부족하다. 달러 발행 국인 미국, 특히 연준이 일본의 개입 실탄에 사실상 상한이 없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베센트는 매크로펀드들이 기축통화 중앙은행 간 공조를 가장 경계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연준이 참전할지는 미지수다. 우선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다.

워시는 의장 취임 전 의회에 제출한 답변에서 “연준은 금리를 결정할 때 가장 독립적이며 국제금융 등 다른 분야에서는 행정부와 의회에 특별한 우위를 갖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취임 후 의회에서는 중앙은행 간 달러 유동성 공급장치를 통화정책의 일부로 규정했다.

FIMA 레포는 이미 존재하는 상설 시설이다. 일본의 엔화 방어를 위해 600억달러인 한도를 크게 늘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미국 국채시장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금융안정 조치인지,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정책을 지원하는 것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베센트가 FIMA 레포 한도 확대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도 워시에게 부담이다. 거부한다면 일본이 미 국채를 팔거나, BOJ가 엔화를 지키기 위해 금리를 더 빠르게 올릴 위험이 커진다. 연준이 곧바로 수용하면 행정부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수용하면 사태가 끝난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베센트와 제롬 파월 전 연준 의장 모두 트럼프 정부의 아르헨티나의 외환시장 개입 사례를 기억하고 있다. 2025년 미국 재무부는 외환안정기금(ESF)을 통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에 최대 200억달러의 통화스와프 안전판을 제공했다. 실제 인출액은 25억달러에 그쳤고, 아르헨티나는 같은 해 12월 이를 전액 상환했다. 압도적인 대기 자금을 보여주자 시장이 안정을 되찾았고 실제로 사용한 돈은 약정 액의 일부에 불과했다.

베센트의 기억은 이럴 수 있다.

‘실탄을 모두 쓸 필요는 없다. 미국이 뒤에 있다는 믿음을 주면 시장의 일방적인 베팅을 꺾을 수 있다’

하지만 파월의 기억은 다를 수 있다.

‘아르헨티나 지원은 미국 재무부의 ESF가 주도했다. 연준의 시스템공개시장계정(SOMA)은 외환시장 개입에 참여하지 않았다. 연준 대차대조표를 동원하지 않고 재무부만으로 외환 정책 목적을 달성했다’

정리하면, 같은 사례가 베센트에게는 연준의 더 큰 지원을 요구할 근거가, 파월에게는 재무부가 자체 수단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반대 명분이 되는 모양새다.

아르헨티나와 일본의 차이도 크다. 아르헨티나에는 긴축과 개혁, 정치적 지지라는 정책 전환이 뒤따랐다. 일본은 재정을 더 풀려 하고 BOJ의 긴축은 더디며, 연준은 오히려 금리 인상을 고민한다. 특히 일본의 경제 규모와 엔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재무부의 실탄만으로 방향을 바꾸기 어려운 수준이다.

※ 챗GPT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이미지입니다.


9월 금리결정에 영향…FOMC 내부 이견 불거질수

파월이 의장 임기 종료 뒤에도 연준 독립성을 위해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은 이번 국면에서 무게를 갖는다. 파월은 전직 의장이지만 여전히 FOMC 표결권을 가진 현직 이사다. 그는 재임 기간 내내 환율정책은 재무부의 영역이고, 연준은 외국 정부의 환율 목표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워시가 일본 지원 쪽으로 기울더라도 파월은 연준이 어디까지 행정부의 외환정책에 협조할 수 있는지를 묻는 제도적 견제축이 될 수 있다.

워시의 FOMC 영향력도 미지수다. 지난 7월 회의에서 FOMC는 9대3으로 기준금리를 3.50~3.75%로 동결했다.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와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 로리 로건 댈러스 연은 총재는 물가를 잡기 위해 0.25%포인트 인상을 주장했다. 워시는 이를 “집안 싸움”이었다고 소개했다.

특히 주목할 사람이 로건 총재다. 그은 뉴욕 연은에서 공개시장 데스크와 시스템공개시장계정(SOMA) 운용을 총괄했었다. FIMA 레포와 외환개입, 중앙은행 유동성 공급의 효과와 부작용을 연준 내에서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이번 결정을 기술적으로 검증할 핵심 인물로 봐야 한다.

워시는 7월 FOMC 회의 직후 최근 물가 우려에도 금리 인상에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시장의 불만을 샀다. 불만은 장기 국채금리 급등으로 나타났고, 미·일 금리차 확대로 엔화는 더 약해졌다.

이제 상황은 9월 기준금리 결정과 맞물린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미·일 금리차가 더 벌어져 엔화 약세 압력이 커진다. 일본의 개입 부담도 늘고 FIMA 레포를 통해 빌려야 할 달러도 많아질 수 있다. 연준이 한편에서 일본에 달러를 빌려주고, 다른 편에서 금리를 올려 엔저의 근본 원인을 강화한다면 모순(矛盾)이다.

아무리 단기대여라고 해도 거래가 반복되고 한도가 대폭 확대되면 일시적인 시장안정 장치를 넘어 연준 대차대조표가 미국 재무부의 외환정책에 동원된다는 논란도 커질 수 있다.

그렇다고 엔화를 고려해 금리를 동결하면 미국 물가와 연준의 신뢰가 문제가 된다. 물가 대응 의지가 의심받으면 미국 장기금리가 오를 수 있다. 일본이 미국 국채를 팔지 않게 하려고 금리를 동결했는데, 연준에 대한 불신 때문에 국채금리가 오르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

또다른 걱정거리도 있다. FIMA를 대폭 늘리면 엔화 공매도 세력의 기세를 꺾을 지는 몰라도 연준이 다른 나라의 환율 방어에 동원되는 사례를 남긴다. 미국 국채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연준이 외환시장에 뛰어들어야 할 상황이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도를 늘리지 않거나 결정을 미룬다면 시장이 이를 미국의 개입 의지 부족으로 해석해 엔화를 다시 시험할 수도 있다. 엔화가 무너지면 아시아 통화와 미국 국채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 BOJ가 급하게 금리를 올리면 엔캐리 청산이 글로벌 자산시장을 흔들 수 있다.

잭슨홀 미팅이 분수령…8월은 케빈 워시의 시간

일본 정부와 BOJ, 미국 재무부의 패는 이제 공개됐다. 일본 정부는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려 한다. BOJ는 물가를 보며 금리를 천천히 올리려 한다. 베센트는 공동 외환개입과 FIMA 레포로 시간을 벌려 한다. 베센트에게는 아르헨티나의 성공 경험이 있다. 이 패가 힘을 발휘하라면 워시가 파월을 비롯한 FOMC 위원들을 설득해 연준의 신뢰와 대차대조표를 빌려줘야 한다. 연준이 발을 빼면 상황은 다시 원점이다.

미·일을 넘는 글로벌 이슈다. 다행히(?) 8월 27일부터 29일까지 미국에서 ‘잭슨 홀(Jackson Hole) 경제정책 심포지엄이 열린다. 올해 공식 주제는 ‘금융혁신이 결제와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다. 주제와 상관없이 세계 중앙은행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엔화와 FIMA, 중앙은행 간 협력과 연준 독립성 문제를 논의하지 않기는 어려울 듯하다. 워시 의장으로서는 취임 후 첫 국제 무대다. 최대한 많은 참석자들과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부터 8월 말까지는 워시의 시간이다.

※ 챗GPT의 도움으로 만든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