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1개 종목 중 단 3개만 텐배거에
‘산업 변화→실적 추정→기업 재평가’
주성엔지니어링·삼성전기 등도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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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
지난해 초 원익홀딩스에 1000만원을 투자했다면 연말에는 1억9098만원이 됐을 수 있다. 씨어스(옛 씨어스테크놀로지)였다면 1억2379만원, 로보티즈였다면 1억1528만원이 됐다. 단 1년 만에 원금이 10배 이상 불어난다.
주식시장에서는 투자 원금이 10배 이상으로 불어난 종목을 ‘텐배거(Ten Bagger)’라고 부른다. 미국의 전설적인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가 처음 사용한 표현으로, 모든 투자자가 한 번쯤 꿈꾸는 숫자다.
하지만 텐배거는 생각보다 드물다. 지난해 코스피에서는 948개 종목 가운데 647개가 상승했고 288개가 하락했다. 코스닥도 1723개 종목 중 954개가 올랐다.
그중 투자 원금을 10배 이상 불려준 종목은 원익홀딩스, 씨어스, 로보티즈 단 세 종목뿐이었다. 같은 시장에서 거래됐고 같은 상승장을 지나왔는데 왜 하필 이 세 기업만 텐배거가 될 수 있었을까.
▶의료AI에서 ‘돈 버는 플랫폼’으로…씨어스의 재평가=많은 투자자는 차트를 본다. 언제 거래량이 터졌는지, 언제 외국인이 사기 시작했는지, 언제 신고가를 돌파했는지를 찾는다.
하지만 지난해 텐배거가 된 기업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공통점이 있다. 산업이 먼저 변했고, 기업의 실적 전망이 달라졌다. 증권사들은 그 변화를 리포트에 반영했고, 시장은 기업가치를 다시 평가했다.
의료 인공지능(AI) 전문기업 씨어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2월 7일 다올투자증권은 당시 씨어스테크놀로지(현 씨어스)에 대한 첫 기업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당시 의료 AI는 기술력은 인정받았지만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검증되지 않은 분야였다. 투자자로서는 “좋은 기술이 돈이 되는가”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보고서는 AI기술 자체보다 씨어스가 다른 의료 AI기업보다 빨리 흑자 전환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핵심 투자포인트로 제시했고, 목표주가 2만8000원을 제시하며 “2025년은 연간 흑자 전환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달 뒤인 3월에는 SK증권도 씨어스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목표주가는 3만4000원이었다. SK증권은 씨어스를 “수익화 시점이 가장 빠른 AI 헬스케어업체”라고 평가했다.
2월 보고서가 흑자 전환 가능성에 주목했다면, 3월 보고서는 그 흑자가 어떤 구조에서 나올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7월에는 숫자가 크게 바뀌었다. 7월 11일 다올투자증권은 보고서 제목을 ‘포텐 폭발’로 바꾸고 목표주가를 5만원으로 상향했다.
10월 이후에는 표현이 더 달라졌다. 삼성증권은 씨어스를 ‘All-in-one 디지털 헬스케어’라고 했고, 신한투자증권은 ‘Just Beginning’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연말에는 신영증권이 아예 ‘텐배거 의료AI 기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돈을 벌 수 있을까(흑자 전환)’를 보던 시장이, 다음에는 ‘안정적으로 버는가(반복 매출)’를 봤고, 마지막에는 ‘얼마나 빨리 성장하는가(병상 확대)’를 확인했다.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커질수록 목표주가도 함께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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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추에이터에서 ‘피지컬 AI’까지…로보티즈를 다시 보게 된 이유=지금 로보티즈는 휴머노이드 대표주로 꼽힌다. 하지만 지난해 초 증권가의 투자포인트는 휴머노이드가 아니라 액추에이터였다. 액추에이터는 로봇의 관절과 근육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으로, 휴머노이드 한 대에는 보통 40~50개가 들어간다.
2025년 1월 9일 스터닝밸류리서치는 로보티즈와 MIT가 공동 개발한 오픈매니퓰레이터 ‘OM-Y’와 일본 배송로봇시장 진출 등을 근거로 “액추에이터 기술이 본격적인 사업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당시 시장의 관심은 휴머노이드 열풍보다 액추에이터 기술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있었다. 2월 7일에는 투자포인트가 한 단계 구체화됐다. SK증권은 목표주가 6만3000원을 제시하며 “2025년은 테스트 물량이 아니라 초도 공급이 시작되는 해”라고 분석했다. 기술력을 평가하던 단계에서 실제 공급과 매출을 전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5월에는 실적 전망이 뒤따랐다. 하나증권은 로보티즈의 1분기 매출 101억원, 영업이익 8억원으로 예상보다 빠른 흑자 전환을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2025년 연간 매출은 458억원으로 전년보다 52.6%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45억원으로 흑자 전환할 것으로 전망했다. 액추에이터 매출도 4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해외 고객사 확대와 중국 휴머노이드업체 공급이 본격화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반기 들어 증권가가 로보티즈를 설명하는 표현도 달라졌다. 6월 신한투자증권은 ‘휴머노이드 양산의 핵심 수혜주’로 평가했다. 8월 현대차증권은 “로봇산업의 액추에이터는 AI산업의 GPU”라고 표현했다. AI산업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공급한 엔비디아가 가장 큰 수혜를 누렸듯, 휴머노이드시장에서도 핵심 부품기업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이라는 의미였다. 11월에는 대신증권이 목표주가 27만원을 제시하며 ‘대전환의 시대’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지니 대신증권 연구원은 “피지컬 AI의 핵심은 액추에이터”라며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제조업 자동화가 로보티즈의 장기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처음에는 기술을 봤다. 이후에는 공급을 봤고, 실적을 봤다. 연말에는 피지컬 AI라는 더 큰 산업 흐름 안에서 로보티즈의 기업가치를 보기 시작했다.
원익홀딩스는 조금 달랐다. 씨어스처럼 리포트가 쏟아진 것도, 로보티즈처럼 대표 테마주였던 것도 아니었다. 원익로보틱스의 AI 로봇과 원익IPS·원익머티리얼즈 등 핵심 자회사 가치가 부각되면서 시장은 원익홀딩스를 단순한 지주사가 아닌 반도체와 AI 로봇 계열사의 가치를 담은 기업으로 다시 보기 시작했다.
▶올해도 반복되는 ‘재평가’의 공식=이 같은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주성엔지니어링은 773.65%, 삼성전기는 764.71%, SK하이닉스는 293.24% 상승했다. 세 기업 모두 AI 산업 확산 속에서 실적 전망과 목표주가가 잇따라 상향되며 기업가치가 재평가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삼성전기는 AI 서버 확산에 따른 MLCC와 AI 패키지기판 수요 증가가 실적 기대를 키웠고, SK하이닉스는 HBM을 앞세워 실적 추정치와 목표주가가 연이어 높아졌다. 주성엔지니어링 역시 차세대 원자층증착(ALD)과 유리기판(TGV) 장비가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각되며 AI 반도체 공정의 핵심 수혜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이 기업들이 올해 텐배거가 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지난해 텐배거 종목들이 보여준 공통점은 분명했다. 산업이 먼저 변했고 그 변화는 실적 전망 상향으로 이어졌다. 시장은 높아진 실적 추정치를 근거로 기업가치를 다시 평가했고, 주가도 그에 발맞춰 움직였다. 텐배거는 산업의 변화가 실적 추정치에 반영되고 기업가치가 재평가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미국의 전설적인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는 이렇게 말했다. “기업을 공부하지 않고 주식을 사는 것은 포커를 칠 때 패를 보지 않고 돈을 거는 것과 같다.”
송하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