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릴 기업 못 살리는 기업회생법 [H-EXCLUSIVE]

기업 회생제도 20년
‘존속-퇴출’ 기준에 근본적인 의문
기업회생 제도 구조적 딜레마 봉착
회생계획 ‘인가전 폐지’ 상반기 188건
제도 목적·운용 전면 재설계 시급


기업회생은 기업의 존폐 기로에서 직면하는 최후의 갈림길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무작정 기업을 살리는 데에 있지 않다. 살아야 할 기업과 사라져야 할 기업을 가려내 사회 전체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기업회생을 다루는 채무자회생법이 시행된 2006년 후 이제 꼭 20년을 맞이했다. 부실기업 연명에 쓰이는가 하면, 회생 가능성이 큰 기업도 기회를 잃게 되는 등 기업회생이 본래 취지와 달리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헤럴드경제는 총 5회에 걸쳐 기업과 채권자, 투자자, 법조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시각을 따라가며 한국 기업회생 제도를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기업회생 절차가 최근 재차 부각되는 데엔 홈플러스 사태가 있다. 이번 사태는 기업회생 절차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다시 묻게 했다. 한 기업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순간, 회생법원은 법을 집행하는 곳이 아니라 경제적 선택을 내리는 무대가 된다. ▶관련기사 4면

기업회생을 두고 ‘부실기업을 살리는 제도’라는 말이 통용되지만, 채무자회생법의 속내는 다르다.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는 다시 일어설 시간을 주고, 더 이상 존속 가치가 없는 기업은 시장에서 신속히 퇴출시키는 것. 제도의 핵심은 기업을 살리는 데 있지 않다. 살아야 할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가려내 사회 전체의 손실을 줄이는 데 있다.

그러나 그 판단이 쉬운 적은 없었다. 법원이 시간을 벌어줄 때 그 비용은 채권자가 먼저 낸다. 변제는 미뤄지고, 협력업체는 대금을 언제 받을지 모른 채 거래를 이어간다. 금융회사는 추가 자금을 더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저울질한다. 반대로 기업이 무너지면 그 파장은 고스란히 고용과 산업 생태계로 번진다. 결국 회생은 손실을 다시 나누는 절차다.

법인회생 신청은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2022년 661건이던 법인회생 신청건수가 2023년 1024건, 지난해 1321건으로 치솟았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731건이 접수됐다. 한 사건이 개시부터 종결까지 수년을 끄는 구조를 감안하면, 지금 회생법원 안에는 동시에 수천 곳 기업의 운명이 걸려 있는 셈이다.

헤럴드경제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단독 확보한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한 건수는 516건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회생계획 인가는 253건이었으며, 인가 후 회생절차가 종결된 건수는 184건으로 나타났다. 반면, 회생계획 인가 전에 폐지된 사건도 188건, 인가 후에 폐지된 사건도 31건에 달했다.

이 수치는 회생절차가 각 단계에서 얼마나 많은 기업이 탈락과 생존의 갈림길에 서는지 보여준다는 수치이다. 기업은 회생계획안을 마련해 법원의 인가를 받고, 이후 계획을 정상적으로 이행해야 비로소 회생절차를 마칠 수 있다. 반면 자금 조달이 막히거나 채권자 동의를 얻지 못하면 인가 전 폐지되고, 인가를 받은 뒤에도 경영 정상화에 실패하면 절차가 중단될 수 있다.

때문에 현장에서는 오래된 질문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기업의 생사를 가르는 계속기업가치는 과연 합리적으로 산정되고 있는가. 복잡하게 얽힌 담보 구조가 채권자 협상 자체를 막아버리지는 않는가. 회생기업에 공급되는 긴급운영자금(DIP)이 실제로 버티기에 충분한가. 회생 신청 전에 시장이 먼저 구조조정을 수행할 수 있는 장치는 마련돼 있는가. 더 나아가 기존 경영자와 투자자에 대한 책임은 어디까지 물어야 하는가.

채무자회생법이 시행된 2006년 이후 20년이 흘렀다. 지금까지는 개별 규정을 손보는 방식으로 버텨왔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제도의 목적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장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이번 기획을 통해 기업과 채권자, 투자자, 법조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시각을 따라가며 한국 기업회생 제도가 마주한 구조적 과제를 짚었다.

주진우 의원은 “기업회생은 모든 부실기업을 무조건 살리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살릴 수 있는 기업은 신속히 정상화하고, 회생이 어려운 기업은 공정하게 정리해 채권자와 근로자, 협력업체 등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아름·박지영·안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