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야 탄생 150주년 맞아 ‘올 스페인’
7일 공연 ‘삼각모자’ ‘허무한 인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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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스페인 출신 지휘자 안토니오 멘데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작열하는 지중해의 태양을 머금은 싱그러운 오렌지와 올리브 나무의 향기, 나른한 오후를 깨우는 플라멩코 리듬의 강렬한 타격….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관능이 서울 한복판을 찾아온다.
“스페인 남부 여름의 오후는 너무 더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억지로 밖으로 나가 뭔가를 해보려고 애쓰는 그런 순간이 음악(‘삼각모자’ 중 ‘오후’)에 담겨있어요. 레몬과 오렌지꽃 향기, 올리브와 소나무 향기와 같은 감각적 풍경은 지중해적이면서도 이곳만의 특별함이에요. 전통적이고 자급자족적인 삶의 방식과 풍경이 음악 안에 숨 쉬고 있어요.”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은 스페인 작곡가 파야의 ‘삼각모자’ 중 ‘오후’를 떠올리며 지휘자 안토니오 멘데스는 최근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서울 방문만 벌써 6번째. 하지만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 포디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토니오 멘데스는 “스페인 사람인데다, 스페인이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 시기에 딱 좋은 축제 프로그램으로 한국 관객과 만날 수 있어 기쁘다”며 웃었다.
그야말로 ‘올 스페인’이다. 이베리아반도의 미학적 정수를 들려줄 포디움의 마법사 멘데스, 스페인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레티시아 모레노가 스페인 작곡가들의 음악으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일찌감치 내한해 첫 리허설을 마친 멘데스 지휘자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만남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국립심포니는 테크닉이 뛰어난 것은 물론 단원 간의 수평적이고 따뜻한 분위기가 대단히 인상적”이라며 “첫 리허설부터 이미 완성도 높게 준비돼 있어 남은 기간엔 디테일한 표현을 다듬는 데 집중할 수 있다. 그것이 지휘자에겐 엄청난 사치이자 특권”이라고 했다.
연주회에선 스페인 음악의 거장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한다. 멘데스는 공연의 후반부를 파야의 대표작인 오페라 ‘허무한 인생’ 중 ‘간주곡과 춤곡’, 그리고 발레 모음곡 ‘삼각모자’ 1·2번으로 채웠다. 스페인 음악을 떠올릴 때 따라오는 ‘이국적인 춤곡’ 이미지에 머물지 않고, 관현악의 정교하고 세련된 구조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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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스페인 출신 지휘자 안토니오 멘데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파야는 스페인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관현악 작곡가예요. 헝가리의 바르토크가 동유럽 민속음악을 들여와 현대적 정체성으로 재창조했듯, 파야는 플라멩코의 꺾어지는 멜로디와 독특한 컴파스(Compás·플라멩코 리듬)를 세련된 관현악의 언어로 승화했어요.”
공연 1부에선 프랑스 작곡가 에마뉘엘 샤브리에의 ‘스페인’과 에두아르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을 배치해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스페인’을 들려준다. 스페인 작곡가들의 ‘정통 언어’와 대비하는 흥미로운 구성이다.
멘데스는 “19세기 중반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이국적 열풍(Exoticism) 이후 프랑스 음악가들이 스페인의 이색적 음색에 매료됐다”고 귀띔했다. 랄로는 이 곡을 스페인 출신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파블로 데 사라사테에게 헌정했다. 공연에선 사라사테 콩쿠르 출신의 스페인 바이올리니스트 레티시아 모레노가 협연자로 나서 낭만주의 협주곡의 정수를 그린다. 멘데스는 “스페인 출신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협주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관객에게도 큰 선물일 것”이라고 했다.
멘데스가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보인 건 지난 2012년 코펜하겐 말코 지휘 콩쿠르에서의 수상과 이듬해인 2013년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되면서다.
그는 “음악을 하게 된 건 계획이 아닌 우연”이라며 “축구선수를 꿈꾸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작은 카시오 키보드를 연주하며 음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그는 “스페인이 (월드컵에서) 우승해 정말 기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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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스페인 출신 지휘자 안토니오 멘데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가족 중엔 음악가는 없었지만, 그의 곁엔 탁월한 재능을 알아보는 부모님이 있었다. TV에서 나오는 캐럴을 귀로 듣고 그대로 연주하는 ‘절대음감’을 가진 아들에게 “음악을 공부하고 싶냐”고 물어보며 그를 ‘음악가의 길’로 이끌었다. 첫 시작은 피아노였지만, 1년 후 만난 선생님이 바이올리니스트였다는 이유로 ‘바이올린’으로 전향했다. 그는 “만약 그 선생님이 첼리스트였다면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16~17세쯤이었다. 그는 “TV 중계로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말러 교향곡 2번을 접했던 순간 ‘이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느꼈다”며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오케스트라라는 커다란 소리 속에서 함께하는 것도 기뻤지만, 포디움에 서서 그 거대한 음향에 나만의 관점과 형상(Shape)을 부여하고 싶다는 열망이 타올랐다”고 돌아봤다.
프랑스 작곡가 샤브리에가 쓴 ‘스페인’은 말러에게도 특별한 곡이다. 그는 이 곡을 ‘현대음악의 정수’라고 표현했다. 멘데스는 “관현악의 색채, 악기 편성과 리듬은 스페인 음악을 가장 잘 알아보게 하는 요소”라며 “타악기, 하프, 피아노, 첼레스타의 다채로운 사용과 목관의 화려함, 현악기 브리지(줄 받침대)에서 연주하는 술 폰티첼로(sul ponticello, 현악기 활을 브릿지 바짝 붙여 문지르는 기법)나 피치카토(pizzicato, 현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연주하는 기법) 같은 특수 효과 등이 나오는데 이는 프랑스 인상주의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시 찾은 한국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멘데스는 차분하게 말을 이으면서도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마음 같아서는 매년 오고 싶을 정도로 한국 사람들, 한국 음식을 사랑하고 한국의 오케스트라와 음악에 대해 보여주는 깊은 존중을 사랑한다”며 “언젠가는 진은숙 작곡가의 관현악곡을 꼭 지휘하고 싶다”는 바람도 들려줬다.
그러면서 “한국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면 엄청난 박수를 보내준다. 매우 따뜻하면서도 갑작스럽기도 하다”며 “정중하고 잔잔한 박수가 길게 이어지는 북유럽이나 독일과 달리, 절정의 에너지가 거칠게 폭발하는 남유럽(스페인·이탈리아)의 뜨거운 반응을 똑 닮아 연주자로서 커다란 위로와 전율을 받는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