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박근태 “동양인 남성 지휘자에겐 가혹한 유럽…끊임없이 도전” [인터뷰]

‘더 하우스 콘서트’에서 피날레 무대
피아노에서 지휘로 전향…쉽지 않아
“10년 뒤에도 도전 즐기는 지휘자 바라”


더 하우스 콘서트의 ‘줄라이 페스티벌’ 피날레 무대를 지휘한 박근태 [더하우스콘서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마룻바닥을 타고 40여 명의 오케스트라와 그랜드피아노가 빚어내는 음의 파형이 쏟아진다. ‘실내악의 성지’에서 오케스트라가 주인공이 됐다. 어림잡아 6대 4. 꽉 채워 1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예술가의 집 다목적홀을 반으로 갈라 오케스트라와 관객이 대치한다. ‘초밀착’ 근접 상태.

손가락의 떨림, 스치는 옷자락,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포착되는 근거리에서 프랑스 음악이 만개한다. 단단하고 밀도 높은 오케스트라에 투명하고 선명한 이관욱의 피아노가 얹어진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2번’, 신파나 감정 과잉은 덜어내고 정교하고 단정한 사운드로 세공한 ‘쿠프랭의 무덤’(라벨)이 촉각으로 다가온다. 지휘자 박근태와 91년생 예원학교 동기,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동창, 국립심포니의 인연들이 빚어낸 더 하우스 콘서트의 ‘줄라이 페스티벌’ 피날레 무대다.

“친정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에요.”

12년 전인 2014년, ‘더 하우스 콘서트’에서 피아니스트로 독주회를 가졌던 박근태가 이제 지휘자로 다시 무대에 섰다. 오케스트라 단원 역시 그가 직접 구성했다. “연주자들 사이에서 더 하우스 콘서트는 사랑방으로 불린다”는 그는 “이번 공연은 지휘자로의 첫 무대이자 예원학교 동창회이기도 하다”며 웃었다.

동기생 중 유일한 지휘자인 박근태를 위해 그의 절친들이 총출동해 ‘드림팀’을 이뤘다. 악장 하유나(성신여대 교수)와 플루트 수석 김민지(수원시향 수석), 클라리넷 수석 이진아(대전시향 수석), 첼로 수석 이경진(국립심포니 수석) 등 젊은 연주자들이 뭉쳤다. 인간 박근태와 지휘자 박근태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무대였다.

하차투랸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3위와 특별상에 오른 지휘자 박근태 [하차투랸국제지휘콩쿠르 제공]


올해부터 대전시립교향악단 전임 지휘자로 선임, ‘대전 시민’이 된 박근태를 최근 서울에서 만났다. 그는 “대전시향을 맡으며 더 규칙적인 루틴을 만들고 싶어 대전에서 지내고 있다”며 “교보문고 바로 옆에 집을 얻어 헬스장과 악단을 오가며 만족스러운 정착 생활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무티가 보증한 ‘본질의 세공사’


“극을 장악하고 작품의 본질을 구현하는 지휘자.”

지휘 거장 리카르도 무티는 한국의 청년 지휘자 박근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오페라의 역사를 새로 써온 그의 한 줄 평은 박근태에게 그 어떤 콩쿠르보다 값진 훈장이었다.

그는 당시를 돌아보며 “제가 추구하는 지휘자의 이상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 주신 말”이라고 했다. 무티 아카데미 11년 역사상 한국인 최초로 발탁된 청년 지휘자 박근태가 밀라노 프라다 재단 홀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를 지휘했을 때였다.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극적 드라마를 현대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사운드로 구현한 그에게 거장은 아낌없는 헌사를 건넸다.

박근태는 사실 피아니스트였다. 예원학교를 졸업,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국내 유수 콩쿠르를 휩쓸던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15년이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초청 연주를 마친 뒤 베를린과 비엔나를 여행하던 때였다. 학생 할인을 받아 독일 유수 악단과 극장에서의 연주를 모두 쫓아다녔다.

“독일 대학은 외부인 청강도 가능하더라고요.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오케스트라 수업을 청강하고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를 직접 들었을 때,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더 하우스 콘서트의 ‘줄라이 페스티벌’ 피날레 무대를 지휘한 박근태 [더하우스콘서트 제공]


그는 그날로 독일 유학을 결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피아노 유학이었다. 선배 이승원(전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부지휘자)과 룸메이트로 지낸 시간은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정명훈 지휘자님을 보며 막연히 꿈은 꿨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며 “형의 지휘 클래스 반주를 해주고 공부하는 것을 보며 ‘나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에 입학한 첫 학기, ‘지휘’가 운명처럼 다가왔다. 프랑크푸르트 오더 오케스트라와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지휘할 때였다.

“프로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사운드가 손끝 제스처를 따라 마법처럼 흘러나올 때 전율이 느껴졌어요. 지휘야말로 내가 평생 걸어가야 할 직업이자 길임을 직감했던 것 같아요.”

건반 위에서 50분이 넘는 대곡을 홀로 이끌며 유기적인 서사와 긴장감을 조율해야 했던 피아니스트로서의 내공은 포디움 위에서 결정적인 무기였다. “곡의 기승전결을 잡아 지루하지 않게 연주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도, 몸으로도 오랜 시간 익혔다.

지휘자는 그러나 음악계에서 독특한 존재다. 모든 음악가 중 유일하게 악기를 잡지 않고 소리를 내면서 음악의 본질과 정신을 조율한다.

그는 “지휘자는 단순히 박자를 젓는 1차원적 테크니션이 아니다”며 “악보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악보 너머에 숨겨진 작곡가의 진짜 스토리와 배경을 탐구하고 풀어내냐 한다”고 말했다.

지휘자 박근태 [ANRC 제공]


지휘 거장 무티와의 만남은 박근태의 지휘 인생 변곡점이자 확신을 준 사건이었다. 2년간 3번의 만남.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80대 중반에도 쉬는 시간 없이 4~5시간을 직접 노래하며 리허설하는 뜨거운 에너지는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무티는 ‘기술’이 아닌 ‘질문’을 먼저 가르쳤다.

“무티 선생님은 ‘우리가 언제, 어떻게 연주하는지 보다 무엇을, 왜 연주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왜 ‘이런’ 소리를 내는지, 왜 ‘지금’ 이 작품을 연주하는지를 알아야 설득력 있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에겐 언제나 ‘악보’가 출발점이다. 지휘자의 길을 걸은 이후로 그는 자신을 종종 ‘고고학자’에 비유한다. 그는 “아무것도 설명돼 있지 않은 유적을 발굴하듯이 악보에 적혀 있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간다”고 했다. 평론보다 작곡가의 편지를, 해설보다 원전을 찾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누군가가 만든 해석이 아닌 작곡가가 남긴 흔적을 찾아가는 것이 작품의 본질에 가까이 서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지휘자 박근태는 작곡가의 진짜 의도를 생각하며 이야기와 해석을 만들어간다.

그의 모차르트가 특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 오케스트라가 ‘돈 조반니’를 연주할 때 시대악기의 가벼운 음향으로 재현하려 했지만, 박근태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죽음이 있고, 지옥불이 있고, 절규가 있는 작품이니, 현대 악기의 풍성한 울림을 굳이 밋밋하고 평평하게 구현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한다. 작품이 품은 극적인 긴장을 지금의 악기로 최대한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 모차르트가 원했던 것이라 그는 믿는다. 무티가 그의 해석을 두고 “작품의 본질을 구현한다”고 평가한 이유다.

더 하우스 콘서트의 ‘줄라이 페스티벌’ 피날레 무대에서 피아니스트 이관욱과 포핸즈 앙코르를 선보인 지휘한 박근태 [더하우스콘서트 제공]


“동양인 남성 지휘자에게 가혹한 유럽”…산 넘어 산 ‘지휘의 길’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지만, 지휘자의 길엔 넘어야 할 산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유럽에서 젊은 지휘자가 살아남는 일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그는 “유럽은 동양인 남성 지휘자에게 정말 가혹하다”며 조심스럽지만 담담하게 현실을 이야기했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클래식의 심장은 지난 몇 년 사이 전통을 해체하기 위해 꾸준히 변화를 시도했다. 백인 남성 중심의 사회에 구스타보 두다멜의 등장 이후 ‘지역의 문’을 열었고, 2020년대 이후론 ‘유리천장’을 깬 여성 지휘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찾았다. 각종 콩쿠르와 마스터클래스에선 성비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가 많아졌다. 남성 지휘자의 숫자가 월등한 상황에서 경쟁은 치열해졌다. 여기에 ‘동양인’ 이란 조건이 더해지자 문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서 직장 생활도 하고 있었지만, 그는 거의 매년 새로운 국제 무대에 도전했다. 루마니아 바나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부지휘자를 거쳤고, 베를린 노이에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2021~2026)로 활동 중이던 때에 각종 콩쿠르와 마스터 클래스를 두드렸다.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2022년 프랑스 드 보줴 오페라 지휘 콩쿠르 1위, 2024년 루마니아 에리히 베르겔 국제 지휘 콩쿠르 에리히 베르겔 상과 오케스트라상, 2025년엔 하차투리안 국제 콩쿠르 3위와 펜데레츠키 특별상이라는 이력이 새겨졌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2023 KNSO 지휘자 워크숍’에 13.7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던 박근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KNSO)와의 첫 만남은 그의 성장 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거점이다. 2023년 KNSO 지휘자 워크숍에 참석한 그는 다비트 라일란트 전 예술감독에게 “이성과 감성을 겸비한 노련한 지휘자”라는 호평을 받으며 최우수 지휘자(1위)로 선정됐다. 이를 발판으로 박근태는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에 데뷔했고 KBS교향악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 기회를 얻었다.

그는 “국립심포니는 지휘자 박근태를 발굴하고 끊임없이 무대 기회를 제공해 준 훈장 같은 존재이자 고마운 울타리”라고 했다. 이후 얍 판 츠베덴 감독의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펠로십에서 최종 3인에 발탁, 단원들의 투표로 최종 선발돼 악단 지휘 기회를 잡았다. 차세대 지휘자로서의 조형미와 실전 디렉팅 능력을 검증받은 셈이다.

그럼에도 현실의 문은 여전히 좁았다. 박근태는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계속 도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지난하게 쌓아온 시간과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우선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전임 지휘자가 됐고, ‘오케스트라가 다시 찾는 지휘자’란 명성도 얻었다. 지난 5월 루마니아 타르구 무레슈 필하모닉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춘 그는 다시 한 번 재초청의 기회를 얻었고, 10월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세종문화회관 무대(‘누구나 클래식’)에 선다. 유럽은 물론 한국에서도 단원들과 예술감독의 자격 검증을 통과해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그에겐 큰 힘이다. “지휘자는 지휘는 물론 단원들과의 관계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만큼 제겐 악단의 신뢰가 큰 훈장이에요.”

지난 5월엔 루마니아 타르구 무레슈 필하모닉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주한 박근태 [ANRC 제공]


그는 요즘 대전시향에서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관객이 좋아하는 인기곡만 늘어놓는 공연보다 한 작곡가를 오래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꿈꾼다. 그는 “하이든을 깊이 연주하고, 차이콥스키를 여러 작품으로 이어가며 악단의 소리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자경 대전시향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도 박근태를 응원하며 힘을 실어준다. 그는 “뷔페처럼 다양한 곡을 들려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오케스트라는 깊이 파고드는 과정에서 성장한다”고 강조한다.

박근태가 원하는 것은 화려한 한 번의 공연이 아니다. 시간을 들여 악단의 색을 만들고, 시각과 공간을 재해석해 ‘정통 클래식’이 가진 미학적 정수를 체험하는 실험을 이어가는 게 그의 목표다.

“10년 뒤의 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지휘자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원, 관객, 음악계로부터 신뢰와 서포트를 단단하게 쌓아 올리고 싶어요.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기존의 관성을 깨트리는 과감하고 독창적인 음악적 도전들을 오케스트라와 함께 마음껏 펼쳐 보이는 게 제가 그리는 10년 후의 모습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