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비즈] 폴란드와 한국이 함께 쓰는 새로운 성장 공식


안제이 도만스키 폴란드 재무·경제부 장관은 “5~6년 안에 폴란드가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GDP에서 영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도날트 투스크 총리도 지난 2월 바르샤바증권거래소(GPW) 행사에서 이러한 목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폴란드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한때 EU의 후발주자였던 폴란드의 자신감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유럽 경제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 같은 자신감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5월 금융 허브와 산유국을 제외하면 폴란드가 지난 20년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소득 수렴(income convergence)을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GDP도 영국 수준에 빠르게 근접하고 있다. 유럽의 성장축이 중동부 유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성장의 질이다. 지난해 폴란드의 ㎏당 수출단가는 3.04유로로 전년보다 6.7% 상승했고, 첨단기술 제품 수출 비중도 10.7%를 넘어섰다. RCA(현시비교우위지수)에서도 항공기 엔진(RCA 1.95), 레이더·항법장비(RCA 4.49) 등 첨단 제조 분야의 경쟁력이 두드러진다. 항공우주와 방산, 첨단 제조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폴란드는 더 이상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니라 유럽의 새로운 첨단산업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폴란드의 산업 고도화는 유럽 전체의 산업전략 재편과 맞물려 있다. 유럽은 지금 이른바 ‘노키아 모멘트’를 지나고 있다. 한때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했던 노키아가 기술 변화에 뒤처졌듯, 유럽 역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산업 경쟁 심화 속에서 도태되고 있다. EU가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Made in EU’와 산업가속화법(IAA) 추진을 서두르며 역내 생산과 공급망 강화를 추진하는 것도 이러한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최근 폴란드 기업가·고용주 연합(ZPP)과 동방연구센터(OSW)는 공동 보고서 ‘폴란드-유럽-중국: 협력인가, 의존의 덫인가?’를 통해 유럽의 대중국 경제 의존이 산업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성에 구조적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공급망 다변화와 전략산업 육성은 유럽 산업정책의 핵심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의 생존을 건 변화의 중심에 폴란드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도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폴란드에 한국은 기술 협력과 투자, 공급망 구축을 함께해 온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다. 지난 4월 27년 만의 폴란드 총리 방한시 양국 관계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되었고, 산업 협력도 과거 가전·자동차 중심에서 배터리, 방산 등 미래 첨단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바르샤바지부도 양국 정부와 산업계를 연결하며 우리 기업의 현지 애로를 해소하고 협력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있다.

유럽의 미래는 더 이상 서유럽 국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폴란드와 한국이 함께할 때 유럽은 ‘노키아 모멘트’를 혁신의 전환점으로 바꿀 수 있다. 유럽의 새로운 성장 공식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에서 시작된다. 그 변화의 중심에 폴란드와 한국이 있다.

조용석 한국무역협회 바르샤바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