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암호화 데이터 뒷문’ 요구한 英정부에 소송…“백도어는 없다”

영국, 자국 이용자 암호화 데이터 접근권 요구
애플 “만능열쇠 만들지 않을 것”…사생활 침해 우려 반발
2016년 FBI 이어 또 법정행…“보안·프라이버시 원칙 지킨다”


시가총액 기준 세걔 1위 기업인 애플이 올해 2분기(4~6월) 1094억2000만달러로,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애플이 암호화된 이용자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백도어(뒷문)’를 만들라는 영국 정부의 요구에 맞서 법적 대응에 나섰다. 테러와 아동 성범죄 수사를 이유로 한 정부의 정보 접근권과 이용자 프라이버시 보호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법정으로 번졌다.

AFP통신과 로이터통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애플은 3일(현지시간) 영국 정부의 기술역량통지서(TCN)에 반발해 영국 수사권재판소(IPT)에 소송을 제기했다.

기술역량통지서는 정보기술 기업이 수사기관의 합법적인 정보 수집을 지원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영국 정부는 애플이 암호화한 이용자 데이터에도 수사기관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영국은 당초 전 세계 애플 이용자의 암호화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했지만 미국과의 마찰이 불거지자 이를 철회했다. 이후 요구 대상을 영국 내 이용자로 한정한 새로운 기술역량통지서를 발부했고, 애플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에 나섰다.

백도어는 정상적인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암호화된 시스템이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우회 통로를 뜻한다. 수사기관은 이를 통해 암호화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지만, 보안업계에서는 한 번 백도어가 만들어지면 해커 등 악의적인 행위자에게도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영국 정부는 테러와 아동 성착취 범죄 수사를 위해 암호화 데이터 접근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애플은 “자사 제품과 서비스에 백도어나 만능열쇠(master key)를 만든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백도어는 특정 정부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결국 이용자 개인정보와 보안 전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플은 지난해 초 영국 정부가 계정 소유자만 접근할 수 있는 암호화 기능인 ‘고급 데이터 보호(ADP)’를 우회할 수 있도록 요구하자 영국에서 해당 서비스를 중단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인권단체 리버티도 이번 소송을 지지했다. 리버티는 “이번 사건은 사생활 보호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사건”이라며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백도어를 만드는 것은 개인 데이터에 광범위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애플이 정부의 백도어 요구를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총기 테러범의 아이폰 잠금을 해제할 수 있도록 보안 기능을 우회하는 소프트웨어 제작을 요구했지만, 애플은 이를 거부하고 법적 대응에 나섰다.

당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공개서한을 통해 “백도어는 식당과 은행, 상점, 주택의 자물쇠를 모두 열 수 있는 만능열쇠와 같다”며 “한 번 만들어지면 어떤 아이폰이든 반복적으로 잠금을 해제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정부는 한 번만 사용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기술은 일단 존재하면 언제든 반복해서 사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