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채 대량매도·관세효과 상쇄 차단 노려

美, 엔화 개입…日과 공동전선 왜?
유로화 팔고 엔화 매입, ‘레이트 체크’ 실시
엔저 구조적 장기화땐 대일 관세효과 무용
日, 역대 최대 77조원 투입 엔저 방어 총력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미 연방정부 각료회의 현장에서 촬영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의 메모지. ‘할일(To Do) 일본 엔(JPY) 50억~100억달러 매입’이라고 적혀있다. [로이터]


미국과 일본 당국이 엔화 공동 개입을 공식화한 가운데 미국이 28년 만에 엔저 저지를 위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게 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2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미국이 일본의 엔화 약세 저지 정책에 개입했다고 인정하면서, 필요시 추가 공동 개입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도 담화문을 통해 “앞으로의 추가 공동 개입에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엔화 약세를 막기 위해 이례적으로 대규모 엔화 매수에 나선 것은 과도한 엔저가 미국 국채시장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엔저가 지속될 경우 대일(對日) 관세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금융시장에서는 최근 달러화 약세와 미국 장·단기 금리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엔화 약세가 미국 국채 매도로 이어져 채권금리를 추가로 끌어올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지난달 29일 채권시장에서 미 30년물 국채금리는 연 5.2%대를 돌파하며 2007년 7월 이후 19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글로벌 채권 금리 기준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 역시 0.07%포인트가량 오르며 4.671%를 나타냈다.

이에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만큼 미국 국채금리 상승이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이같은 미국채 대량 매도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듯 가타야마 재무상은 이날 “일본은 앞으로 보유 중인 미국 국채를 매각하지 않더라도 미국 국채를 담보로 달러 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도를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엔화 약세가 과도해질 경우 미국의 관세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재무성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 기조 아래 세계 각국에 부과한 관세의 효과가 엔저 심화로 상쇄될 수 있다”며 “미국은 엔저가 일본의 수출에 유리하게 작용해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짚었다.

앞서 미국과 일본 당국은 지난달 30~31일 엔저를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공동 개입했다. 미국은 뉴욕연방은행 등을 통해 유로화를 매도하고 엔화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엔화 저지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국 통화 당국은 시장 개입의 전 단계인 ‘레이트 체크’(rate check)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레이트 체크는 당국이 외환시장 개입 전에 주요 은행 등을 상대로 외환 거래 상황 등을 문의하는 것으로 올해 1월에도 엔화에 대한 미 당국의 레이트 체크가 베선트 장관 주도로 이뤄졌다고 알려진 바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약 8조4500억엔(77조4000억원)을 시장 개입에 투입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일본의 하루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의 외환시장 개입이다.

시장의 관심은 향후 미국과 일본의 추가개입 여부에 쏠린다. 닐 뉴먼 애스트리스 어드바이저리 일본 전략가는 “환율 흐름을 바꾸려는 미국과 일본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뜻”이라며 “필요하면 추가 개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해야 한다”고 짚었다. 골드만삭스도 “올해 5월과 마찬가지로 엔화가 최근 상승분을 반납하기 시작하면 당국이 수일 내 추가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양국의 추가 개입으로 엔화 가치가 달러당 155엔 아래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심 모 시옹 화교은행(OCBC) 외환 전략가는 “양국의 공동 대응이 계속되고 있어 손절매 주문이 촉발되면 달러·엔 환율이 155엔을 밑돌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일본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엔저 압력을 다시 키우면서 공동 개입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과 일본의 공동 외환 개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비상 상황이 아닌 시점에 시행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