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고 싶던 트로피’ 걷어찼다…BTS는 왜 그래미를 거부했나 [세모금]

BTS의 그래미 ‘보이콧’ 선언 그 후
‘아시안 팝’ 신설이 촉발한 문화 논쟁
명분 잡고 프레임 뒤집은 고난도 전략
비출품 선언이자 그래미 향한 질문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북부에 있는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아리랑’ 앨범 유럽 투어 공연을 하는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래미 받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도 유효하다.” (2021년) vs “그래미에 출품하지 않겠다.” (2026년)

2021년 5월, 싱글 ‘버터(Butter) 발매 기자간담회. 당시 방탄소년단(BTS)은 리더 RM과 슈가는 ’다이너마이트‘의 성공 이후 두 번째 영어 싱글을 낸 것에 대해 “그래미 수상 목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 이렇게 말했다.

5년이 지나, 상황이 달라졌다. 방탄소년단은 최근 “올해 그래미에 출품하지 않기로 했다”며 미국 최고 시상식을 거부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완전체로 돌아와 발매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으로 빌보드 메인 싱글, 앨범 차트를 석권했으면서도 시상식의 레이스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음악은 지역이나 언어가 아니라 음악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짧지만 분명한 메시지였다.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의 하비 메이슨 주니어 CEO는 “슬프지만 결정을 존중한다”며 “‘아시안 팝’ 부문은 격리가 아닌 조명하기 위한 장치이며, 본상(General Field) 수상이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라는 수세적인 해명 성명을 냈다.

방탄소년단이 ‘그래미 보이콧’을 우회적으로 밝히자, 국내는 물론 영미 팝 음악계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상황을 분석했고, 동료 아티스트들은 연대의 목소리를 냈다. 아미들은 기습 ‘음원 스트리밍’ 총공세로 집결, ‘아리랑’ 수록곡 ‘에일리언스(Aliens)’를 전 세계 78개국 아이튠즈 ‘톱 송’ 차트 1위에 올려놓았다. BTS가 글로벌 팝 시장에서 한국인으로 겪은 정체성의 번민과 포부를 ‘이방인(Aliens)’에 빗대어 노래한 트랙이다. 그래미 홈페이지에선 이 사건 이후, 방탄소년단의 2021년 ‘다이너마이트(Dynamite)’, 2022년 ‘버터(Butter)’ 무대 영상이 삭제돼 논란이 이어졌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19일(현지시간)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 하프타임 쇼에서 2020년 히트곡 ‘다이너마이트’를 부르고 있다. [AFP]


장르 덤핑인가, 기회의 사다리인가…‘아시안 팝’이 던진 문화적 질문


방탄소년단의 보이콧과 이로 인한 후폭풍의 발화점은 지난 6월 그래미가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 부문의 신설이다.

그래미는 이 부문을 새로 만들며 “K-팝을 비롯해 J-팝(일본 팝음악)과 C-팝(중국 팝음악) 등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아시안 국가 언어를 유의미하게 사용하고, 아시아 출신이거나 현지에서 인정받는 아시안 팝 음악의 탁월함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아시안 팝이 글로벌 음악 업계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이 커진다는 점을 인정해 신설했다”는 것이다. 이는 당장 2027년 제69회 시상식부터 해당한다.

그래미가 새로운 장르를 시상 부문에 추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 겸 글로벌 K-센터장은 “그래미는 과거 힙합이나 라틴 팝처럼 주류 음악에서 다뤄지지 않던 음악이 인기를 얻으면 새로운 장르를 추가하곤 했다”며 “아시안 음악 역시 K-팝 이후 주목을 받으니 자연스럽게 추가했다고 본다면 큰 논쟁이나 문제는 없다고 볼 수도 있다”고 전제했다.

실제로 1980년대부터 새로운 장르가 속속 추가됐다. 1984년 제26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라틴 팝 퍼포먼스’ 부문이 신설됐다. 1985년부터 ‘베스트 레게 레코딩’이 새롭게 추가된 후, 1992년 ‘베스트 레게 앨범’으로 명칭이 재편됐다. 1989년엔 ‘베스트 랩 퍼포먼스’ 부문을 통해 힙합 장르를 다뤘고, 1996년 ‘베스트 랩 앨범’ 부문을 추가해 힙합 장르를 세분화했다. 1992년엔 ‘베스트 월드 뮤직 앨범’ 부문을 신설했고, 2021년부터 해당 부문을 ‘베스트 글로벌 뮤직 앨범’으로 재편했다.

배드 버니와 같은 라틴 트랩, 레게톤 음악이 글로벌 차트를 석권하자 2022년엔 ‘뮤지카 우르바나’ 부문이 신설됐고, 2024년엔 아프로비츠(Afrobeats)와 아맙리아노(Amapiano)와 같은 아프리카 대륙 음악의 폭발에 발맞춰 ‘베스트 아프리칸 뮤직 퍼포먼스’가 신설됐다.

그래미의 분류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1980년대는 대중음악의 다변화 속에서 장르 분류가 이뤄졌다면, 1990~2020년대는 지역별, 권역별로 세분화했다는 점이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북부에 있는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아리랑’ 앨범 유럽 투어 공연을 하는 모습. [연합]


아시안 팝 부문 신설 역시 세계 음악계는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래미의 해당 부문 신설 발표 이후, 전 세계 음악업계에선 ‘문화적 논쟁’에 한창이다. 해당 부문은 비백인 아티스트를 주류 경쟁 대신 특정 장르·지역 부문으로 밀어 넣는 관행을 의미하는 전형적인 ‘장르 덤핑(Genre Dumping)’이라는 비판이 다수를 이룬다. 과거 비욘세, 켄드릭 라마, 배드 버니 등 주류를 석권한 거장들이 R&B·힙합·라틴 카테고리에 갇혀 본상 수상이 무산됐던 수순을 K-팝 역시 고스란히 밟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영국 NME 등 외신은 이번 신설 부문을 비서구권 음악의 주류 진입을 가로막는 “유리 울타리(Glass Fence)”로 규정했다.

이규탁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를 “포용과 분리라는 두 관점을 지닌 논쟁”이라고 봤다. 이 교수는 “록과 재즈와 같은 장르는 음악적 양식과 특성의 구분이지만 라틴팝, 아시안팝엔 인종적, 민족적 특성이 반영돼 있다”며 “그래미는 포용이라고 하지만 다양한 문제 제기가 나오는 것은 이 음악들을 ‘주류 차트에서 다루지 않고 카테고리를 만들어 분리해서 다룬다’는 해석의 여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래미는 창설 60여년 내내 ‘백인 중심의 보수성’을 지적받아 왔다. 이미 주류를 장악한 비백인 아티스트들에게 본상 타이틀 대신 R&B, 힙합, 라틴 카테고리에 포함시켜 논란이 컸다. 2021년엔 위켄드가 후보에서 제외된 이후 ”그래미는 부패했다“며 출품을 거부했고, 다음해 드레이크도 비슷한 이유로 그래미를 보이콧했다. 미국 뮤직레이더가 “그렇다면 왜 유러피안 팝은 없고, 아시안팝만 존재하냐”고 일갈한 것도 이러한 역사성에 근거한다.

아시안 팝 부문 신설은 무엇보다 그래미의 서구 중심적 분류 체계에 대한 비판을 불러왔다. 이 교수는 “동북아, 동남아, 남아시아까지 포함하는 ‘아시아’라는 범주 자체가 북미 전체보다 큰데, 이를 하나의 장르로 묶는 발상 자체가 이상한 범주화”라고 꼬집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 역시 “아프리칸 부문, 아시안 팝이라는 개념도 범주고 말도 안 되는 접근”이라며 “아시아는 그래미가 언급한 한중일만이 아니라 필리핀, 대만, 이란,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아시아인데 서구 특유의 철학 없는 납작한 접근이자 안일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올해 마침내 그래미 최고상인 ‘올해의 앨범’을 받은 푸에르토리코의 배드 버니 [AFP/연합]


중립적 의견도 나온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그래미는 해오던 것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이 부문을 신설한 것으로 보인다”며 “차별적 의도로 K-팝을 배제하기 보다 라틴팝 카테고리를 만들듯이 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적 판단이었을 것”으로 봤다.

아시안팝 부문에서 자국어 사용에 대한 모호한 기준을 내세운 것에도 논란과 기대가 공존한다. 세계적 성공을 거둔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조차 영어 비중이 높은 음악을 발표해 왔다는 점은 이번 논쟁을 복잡하게 만든다.

이 교수는 “언어 사용을 기준으로 할 때 방탄소년단, 블랙핑크는 아시안 팝 부문에선 상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K-팝 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에선 오래전부터 영어곡으로 내수시장에서 소비됐음에도 해당 부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규정으로 보일 수 있다”고 했다.

논쟁은 커지고 있지만, 해당 부문이 다수의 아시아 가수에게 ‘기회의 사다리’가 될 수 있다는 공통의 의견도 나온다.

임희윤 평론가는 “아시아 언어 단서 조항은 방탄소년단에겐 불리하지만, 다른 K-팝 그룹이나 필리핀의 비니(BINI) 등 아시아 후배 가수에겐 유리하다”며 “모국어로만 노래를 써도 그래미 후보가 될 수 있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BTS가 개척한 길 뒤로 아시안 팝이라는 카펫이 깔려서 후배들이 편하게 갈 수 있는 실리적인 길이 열린 면도 있다“고 봤다. 이규탁 교수 역시 “아시안 팝 카테고리가 K-팝 가수는 물론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가수든 어떤 식으로 주목과 인정을 받으며 상을 받을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봤다.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보이콧 이후 하비 메이슨 주니어(Harvey Mason Jr.) 레코딩 아카데미 CEO 역시 이 지점을 짚었다. “아시아 음악을 분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아티스트를 인정하기 위한 것”이라며 “본상 후보 자격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래미 공식 홈페이지에선 방탄소년단 무대 퍼포먼스 영상 두 편이 삭제됐다.

방탄소년단 [빅히트뮤직 제공]


“받아도 찝찝한 외통수”…‘명분’과 ‘실리’ 잡은 프레임 전환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기를 바란다.”

‘아시안 팝’ 부문 신설 이후 방탄소년단은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 그래미 ‘출품 거부’ 의사를 짧고 정중하게 밝혔다. 방탄소년단은 ‘그래미를 보이콧한다’고 표현한 적은 없지만, 이미 전 세계가 이들을 ‘행동하는 아티스트’로 보고 있다.

사실 그간 K-팝은 소위 ‘메인 스트림’으로 불리는 영미 팝 음악시장의 문턱을 넘기 위해 많은 전략을 선택했다. 영어 싱글을 발표해 가장 보수적 매체 중 하나인 미국 라디오를 공략했다. 그 결과 실제로 방탄소년단과 멤버들이 미국 빌보드 ‘핫100’ 1위에 오르는 성공 서사를 썼다. 지금도 방탄소년단 이외에 ‘핫100’ 차트 1위에 오른 K-팝 그룹은 전무하다. 게다가 지난 몇 년 사이 K-팝 시스템을 이식한 캣츠아이, 디어 앨리스가 등장하고 있다.

방탄소년단 역시 끊임없이 팝 음악시장의 문을 두드려왔다. 전원 한국인 멤버로 구성, 2013년 데뷔한 이후 불과 4년 만에 해외 시상이 먼저 알아봤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6년 연속 이 부문이 폐지될 때까지 ‘빌보드 뮤직 어워드’ 톱소셜 아티시트 분야에서 수상했다. 동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 시장에서 거대한 팬덤을 만든 ‘개척자’였다.

K-팝 영토 확장은 물론 빌보드 1위나 그래미 수상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다. 이는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태생적 몸부림에 가까웠고, K-팝은 세계 1위 시장을 맞춰 진화해 왔다.

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의 캣츠아이 [AP/연합]


방탄소년단은 2019년 시상자로 출발해 2020년엔 합동공연을 준비했고, 2021~2023년까지 3년 연속 후보에 올랐으나 번번이 그래미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쳤다. 정규 5집 ‘아리랑’으로 복귀한 현재, 그래미의 새 규정을 우회적으로 언급하며 ‘보이콧’을 시사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방탄소년단의 결정이 ‘명분’과 ‘영리한 전략’이 어우러진 고난도 프레임 전환이라고 분석한다.

이규탁 교수는 “아시안 팝 카테고리가 만들어진 순간, 방탄소년단은 상을 받아도 ‘본상이 아닌 특별전 상’처럼 돼 의미가 퇴색되고, 상을 못 받으면 못 받은 대로 찝찝한 상황에 갇히게 된다”며 “출품 거부는 굉장히 좋은 전략이었다. 논의의 중심을 ‘BTS의 그래미 수상 여부’에서 ‘시상의 의미’로 전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방탄소년단과 팬덤 아미, K-팝 업계의 오랜 관심은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수상 여부였다. 이들 그룹이 그래미에 입성하던 때부터 방탄소년단과 그래미는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자의반 타의반’ 방탄소년단의 최종 목표처럼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 교수는 이 점을 짚으며 “그래미라는 상에 매여있던 압박감에서 걸어 나와 상의 의미를 되짚는 논쟁을 주도했다”고 봤다. 실제로 영미 팝음악계에서도 방탄소년단의 보이콧을 다루며 다시 그래미의 보수성과 아시안 팝 부문 신설의 논란을 먼저 분석한다.

임희윤 평론가는 “4년 만에 들고 나온 ‘아리랑’ 앨범의 본상 수상 가능성이 적은 상황에서 아시안 팝 부문 신설이라는 그래미의 안일함을 언급하며 레이스를 이탈한 전략”이라고 봤다.

방탄소년단(BTS)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공연하는 모습 [연합뉴스 제공]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인 지나 코다는 자신의 SNS에 “‘베스트 아시안 팝 퍼포먼스’ 부문은 새롭게 만들어진 카테고리이고 첫 시도부터 완벽할 수 없다”라며 “여러 면에서 이 부문은 애초에 방탄소년단을 위한 카테고리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방탄소년단의 보이콧으로 인해 그래미의 노력이 상처 입었다는 심정도 토로했다. 그는 “이 상은 아시아계 아티스트의 문화적 대변(Representation)을 깊이 고민하는 음악 전문가 집단에 의해 결정된다“며 ”그동안 그래미 내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아시아계 아티스트들의 가시성을 높이기 위해 수년간 많은 사람이 노력한 결과이자,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진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도리어 우리는 가장 거대한 아시아 아티스트 중 한 팀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고 적었다.

방탄소년단의 비출품 선언은 그래미를 향한 거부가 아니라, 그래미가 음악을 분류하고 인정하는 방식을 향한 질문이다. 음악적 다양성이 ‘별도의 범주’를 만드는 것으로 완성되는지, 같은 무대에서 경쟁과 평가를 받을 때 실현되는지, 세계 음악을 평가하는 기준이 ‘미국 혹은 서구’ 중심이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이미 움트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30년간 세계 시장을 걸어온 K-팝의 다양성과 대표성에 대한 정의와 논의 역시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이규탁 교수는 “2010년대 후반 이후 그래미의 권위는 예전같지 않다. 방탄소년단의 비출품 선언 이후 그래미에 대한 비판이 커진 것은 위상이 무너진 그래미의 현재를 보여준다“며 ”이번 사건은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이 가진 영향력과 그래미로 대표되는 미국 음악 산업의 영향력이 감소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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