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AP] |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유럽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메가 파이어(Mega Fire·초대형 산불)’가 일상이 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기후변화가 만든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산불의 규모와 강도를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와 산업 전반까지 마비시키면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N, 유로뉴스 등에 따르면 유럽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기온이 상승하는 대륙으로 꼽힌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한 평균 기온 상승 폭은 약 2.5도로, 지구 평균 상승 폭인 약 1.4도를 크게 웃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급격한 기후 변화가 ‘채찍 효과(Whiplash Effect)’를 일으키며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산불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채찍 효과는 극심한 폭우와 극심한 가뭄이 짧은 기간 반복되는 이상기후를 뜻한다. 겨울철 비를 맞고 무성하게 자란 초목이 여름철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을 거치며 한꺼번에 말라붙고, 이것이 대형 산불의 연료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산불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지면 ‘화재폭풍(Firestorm)’ 현상이 발생한다. 산불이 내뿜는 막대한 열이 강한 상승기류와 강풍을 만들고, 이 바람이 다시 불길을 키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번개와 돌풍을 동반하는 화재적란운(Pyrocumulonimbus)까지 형성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8일 프랑스 보르도 지롱드 지역에서는 화재적란운이 관측됐다. AP통신은 “보통 북미와 호주의 극단적인 대형 산불에서만 관측됐던 현상”이라며 “프랑스에선 처음 보고됐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유럽 산불은 소방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빅토르 레스코 데 디오스 스페인 레이다대학교 산림과학 및 지구변화 교수는 WSJ에 “이번에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를 위협한 메가 파이어가 방출한 에너지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29개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피해 규모도 역대 최대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
CNN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이미 16만 헥타르 이상이 불에 타 사상 최대 피해를 기록했고, 스페인에서도 15만 헥타르 이상이 소실됐다. 로이터통신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만 30만 명 이상이 대피한 것으로 집계했다.
튀르키예에서도 에게해 연안 남서부 무을라주를 중심으로 산불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리스 휴양지 크레타섬에서는 진화 작업에 투입된 소방관 최소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산불은 이제 자연재해를 넘어 경제를 뒤흔드는 재난으로 번지고 있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지역에서는 산불 대피령으로 약 4만 개 기업이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프랑스 경제부는 약 13만 명의 노동자가 정상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추산했다.
패트릭 세갱 보르도 상공회의소 회장은 “마치 코로나19 때처럼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며 “우리 기업들에겐 경제적 재앙”이라고 말했다.
보르도를 찾는 연간 관광객은 약 650만 명에 달하지만, 성수기 예약은 지난해보다 4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소비 둔화와 기후변화, 미국의 관세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던 와인 산업도 이번 산불로 추가 타격을 입었다.
프랑스 남서부에 생산시설을 둔 방산·항공업계도 대응에 나섰다. 다쏘항공은 핵심 장비를 다른 지역으로 옮겼고, 에어버스 애틀랜틱도 당국 요청에 따라 직원들을 대피시켰다.
롤랑 레스퀴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이미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지역이 경제적 벼락을 맞았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피해 기업들이 실업수당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긴급 지원에 나섰으며, 추가 지원 대책도 마련할 계획이다. 산림 복구 비용만 최대 3억 유로(약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기후 전문가들은 메가 파이어가 일시적인 재난이 아니라 기후변화가 만든 새로운 재해 양상이라고 경고한다. 유럽연합(EU) 당국은 산불 피해 면적이 올해 역대 최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으며, 산불 시즌도 예년보다 길어져 11월 초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레스코 데 디오스 교수 역시 “상황이 어디까지 악화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며 “하나의 산불 또는 여러 산불이 합쳐져 수십 만 헥타르, 심지어 100만 헥타르 규모까지 번지는 일도 충분히 가능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